|
|
|
▲ (왼쪽부터)권오갑 현대중공업 사장,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 박대영 삼성중공업 사장. |
정부의 조선업 경쟁력 강화방안 발표를 앞두고 조선업계가 어수선하다.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의 대형 3사체제가 유지될지, 대우조선해양을 제외한 양사체제로 재편될지 조선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조선업 구조조정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일본정부의 조선업 구조조정은 대표적 실패사례로 꼽혔지만 최근 세계적으로 극심한 수주가뭄이 지속되면서 이를 다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일본 조선업, 오랜 침체 끝에 부활 조짐
21일 업계에 따르면 20일 경주에서 열린 ‘제25회 세계조선소대표자회의’에서 조선소 대표들이 공급과잉을 해결해야 한다며 한목소리를 내면서 정부주도로 과감하게 덩치를 줄였던 일본의 조선업 구조조정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무라야마 시게루 가와사키중공업 회장(일본조선협회장)은 대표자회의 기조연설에서 “일본은 과거 두차례의 구조조정 이후 수요가 회복단계에 접어들었을 때도 제한된 인력과 시설을 유지하며 조선소를 효율적으로 운영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일본의 조선업 구조조정은 실패한 것으로 평가받아 왔는데 무라야마 회장이 효율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무라야마 회장의 발언은 최근 일본 조선소들이 오랜 침체를 지나 서서히 경쟁력을 회복하고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 조선업은 1970년대 줄곧 1위를 유지해오다 2000년대 3위까지 내려앉았다. 그러나 최근 곳곳에서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영국의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에 따르면 세계 20위 안에 든 일본 조선소가 지난해 말 5곳에서 8월 말 기준으로 6곳으로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같은 기간 한국 조선소는 7곳에서 5곳으로 줄었다.
일본 조선소들은 일본정부의 엔저정책으로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면서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이들은 그동안 부가가치가 낮은 벌크선을 주로 건조했던 데서 벗어나 최근 고부가가치 선박인 대형 유조선, 대형 컨테이너선 건조에도 나서고 있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산업재편을 모두 마무리한 일본 조선사들이 전세계적인 업황 침체를 틈타 효율성과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다시 부활하고 있다”며 “그동안 약점으로 지적됐던 고부가가치 선박 관련 기술개발에도 주력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일본 조선소들은 조선소 간 협력도 강화하며 경쟁력을 키우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마바리조선, 미쓰비시중공업, 오시마조선, 나무라조선 등 4개 조선소는 상선부문에서 제휴를 위한 협상을 벌이고 있다. 미쓰비시중공업이 보유한 기술력과 낮은 가격으로 배를 만드는 3사의 역량을 조합해 한국 조선소에 맞서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 조선소의 부활이 엔저와 자국 발주물량 증가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무현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엔화 약세가 이어지면서 일시적으로 가격경쟁력이 높아져 일본의 수주가 늘었던 것”이라며 “일본 조선업은 2차 오일쇼크 이후 설계인력을 모두 정리해버리는 실수를 저질러 지금은 설계인력이 거의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진단했다.
일본 조선소들의 자국 수주 비중은 50% 안팎이다. 반면 국내 조선소들의 자국 수주 비중은 10% 수준에 그친다.
◆ 일본, 두차례 고강도 구조조정 통해 경쟁력 상실
일본정부는 1970년대와 1980년대 두차례에 걸친 대규모 구조조정을 통해 조선산업의 몸집을 절반 이하로 줄였다.
5천 톤 이상의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조선소는 61개에서 26개로 줄었다. 선박 건조능력도 980만CGT에서 460만CGT로 떨어졌으며 조선업 종사자도 자연스레 감소했다. 1976년 일본 조선업 종사자 수는 14만 명에 이르렀으나 현재는 5만 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
|
|
▲ 선박 건조중인 현대중공업 도크.<뉴시스> |
일본은 1970년대까지 세계 조선시장 1위였지만 구조조정을 거친 뒤 점유율이 20%대로 떨어지면서 한국에 1위 자리를 빼앗겼다. 그 뒤 일본은 중국에도 밀리며 세계 3위권으로 추락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정부 주도로 획일적인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선박 경쟁력을 잃었다는 지적을 받는다. 대형 컨테이너선이나 대형 유조선 대신 부가가치가 낮은 벌크선 위주로 산업이 재편됐고 인위적 인력 감축으로 연구개발과 설계 인력도 대규모로 줄었기 때문이다.
당시 도쿄대를 비롯해 일본 대학 내 조선학과가 모두 사라졌다는 점에서 일본정부의 구조조정 강도를 알 수 있다.
박무현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일본의 구조조정은 처참한 실패였다’라는 보고서를 통해 “도크의 절반을 닫아버리는 조선합리화 정책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핵심 설계 인력들이 한국 조선업으로 대거 이동하게 됐다”며 “그 결과 한국이 세계 조선업의 선두로 올라서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핵심 설계인력의 부족으로 선박의 다양한 진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한계도 점점 드러나고 있다”며 “한국은 일본의 잘못된 구조조정 정책을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부의 조선업 경쟁력 강화방안은 31일 발표된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