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경성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이 25일 서울 영등포구 롯데마트맥스 영등포점에서 열린 유통현장 점검 및 유통업계 물가안정 관련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요즘 유통업계의 화두는 ‘물가 안정’입니다. 정부가 자주 들여다보니 유통업계도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일이기도 하죠.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강경성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이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한 대형마트에 방문해 주요 공산품 가격 동향을 점검하고 대형마트와 편의점업계 관계자들에게 물가 안정을 위한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경제부총리, 산업부 차관 등 정부 관계자들의 이런 행보는 올해 유독 잦습니다. 고금리와 고물가 상황이 지속되니 당연한 일일 테죠.
정부가 물가 안정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나쁘게 볼 일이 결코 아닙니다. 민생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면 물가를 관리하는 것은 어느 정부나 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따져볼 지점도 몇 가지 있습니다.
인건비와 물류비, 원부재료 가격 등이 전방위적으로 올랐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입니다. 실제 기업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더욱 크게 체감할 수밖에 없는 부담 요인이기도 하죠.
정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격 인상을 자제하라고 요청한다면 이를 요구받는 기업 입장에서는 어떤 생각이 들까요? ‘단순 요청이니 참고하겠다’는 반응보다는 ‘정부에서 말 하니 신경을 안 쓸 수 없네’라는 생각부터 하지 않을까요?
실제로 대형마트들은 정부의 잦은 물가 안정 동참 요구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대형마트의 한 관계자는 “정부 요청이 오면 당연히 가격 인상을 자제한다는 신호를 보내줘야 한다”며 “정부로서는 할 일은 하는 것이겠지만 기업 입장에서 답답한 점도 적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관계자 역시 “압박을 안 느낄 수 없지 않나”며 “가격 인상을 한다고 해서 혼날 시대는 아니지만 그래도 정부 말을 듣는 시늉을 해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토로했습니다.
정부가 시장경제에 개입하는 것을 두고 찬반이 나오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에 맡겨야 탈이 없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시장의 실패나 오류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립하는 것은 오래된 일입니다.
이 연장선에서 보면 정부의 가격 인상 자제 요청도 옹호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둘 다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격을 인상해야 할 분명한 필요성이 있어도 정부의 압박에 따라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그대로 또 다른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대형마트들은 정부의 압박에 어떻게 대응할까요? 앞서 말했듯 가격 인상 요인은 넘쳐나는데 가격을 올리지 못하면 결국 손해만 보고 있어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가격 안정 노력에 동참하는 모양새’를 갖추는 것이 정부의 압박에 대처하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입니다.
예컨대 이렇습니다.
평소에 사전계약이나 대량매입으로 확보해놓은 물량을 한 번에 대거 푼다면 평소 시세보다 싼 가격에 상품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40%, 50%, 60% 할인 등의 상품은 대부분 이렇게 시장에 나오는데 이런 행보를 더 자주 보여준다면 효과는 더 극대화합니다.
장을 보러 나온 고객들이 ‘오? 생각보다 싸네?’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이벤트를 자주 여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입니다.
소비자들의 체감 물가 상승률이 높은 식료품을 싸게 푼다면 더 좋습니다.
최근 한 대형마트에서는 1개당 4천 원꼴로 가격이 오른 애호박을 1천 원대 중반에 풀었습니다. 1인당 2개씩만 구매할 수 있도록 했는데 소비자 사이에서는 ‘요즘 보기 힘든 가격’이라는 반응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대형마트의 한 관계자는 “정부 압박에 따라 마진율을 실제 낮추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손해보는 장사까지 하지는 않을 것이다”며 “대신 정부를 향해 ‘우리가 이처럼 가격 안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신호를 자주 보내는 것으로 정부와 보조를 맞추는 모양새를 취할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정부 지원 사업인 농수산물 할인대전이나 수산 할인대전 등에 적극 동참하는 것도 대형마트가 정부에게 가격 안정 노력에 동참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중요 이벤트 가운데 하나라고 관계자들은 귀띔합니다.
정부의 노력(?)에 따라 물가가 안정된다면 소비자들에게는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인위적인 가격 조정 노력이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결국 시장 가격이라는 것은 자연스럽게 조정되기 마련입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다른 물가 상승분을 반영한 만큼은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다시 말하면 가격 인상 흐름을 일시적으로 틀어막는다고 할지라도 언젠가는 더 이상 인위적으로 막을 수 없는 때가 온다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시장에는 어쩌면 ‘물가 쇼크’가 올 수도 있겠죠.
다른 가격 인상 요인이 안정화하지 않는다면 더 큰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뜻인데 이와 관련해 정부는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는지도 궁금하네요.
또 다른 비판도 있습니다.
유통사들은 보통 제조사들이 만든 상품을 직매입해 일부 이윤을 붙여 판매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벌이죠. 유통사들이 가격을 인상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이런 부담을 제조사에게 떠넘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어 보입니다. 앞으로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