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CATL 노동자들이 폐배터리 재활용 공장에서 차량에 부착된 배터리를 추출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CATL은 배터리 재활용 기술 등을 활용해 비용을 줄여 가격을 낮춘 제품들을 공급해 점유율을 늘린다. < CATL > |
[비즈니스포스트] 중국 전기차 배터리 업계에서 공급 과잉에 따른 가격 인하 경쟁이 벌어져 하위 업체들이 시장에서 사실상 퇴출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CATL과 BYD 등 상위 기업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며 한국 배터리 제조사가 반사이익을 볼 수 있지만 중장기 관점에서는 중국과 더욱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2일 중국 이차이글로벌 보도에 따르면 중국에서 일부 중소 배터리 업체들이 사업을 중단하고 시장에서 이탈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중국 내 배터리 제조업체 수는 2020년 기준 72곳에 이르고 있었는데 2023년에는 52개까지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CATL과 BYD 등 상위 기업이 배터리 가격을 공격적으로 낮춰 공급하는 ‘치킨게임’을 주도해 중소 업체들을 몰아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형 업체들은 규모의 경제 효과로 원가를 낮추기 유리하고 가격 인하에 따른 손실도 어느 정도 감내할 수 있지만 중소형 제조사들은 상대적으로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기차 전문지 CNEV포스트에 따르면 CATL과 BYD는 2023년 한 해 동안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평균 가격을 Wh(와트시)당 0.8~0.9위안에서 0.6위안까지 낮춘 것으로 집계됐다.
올해는 가격 경쟁이 더욱 격화되며 평균 단가가 0.3위안까지 내려갈 것이라는 전망도 이어졌다.
중국 배터리 제조사 관계자는 이차이글로벌을 통해 “지금까지는 중소 배터리 기업들이 폐업하는 일이 많았지만 곧 규모가 비교적 큰 배터리 기업마저도 문을 닫게 되는 사례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CATL과 BYD가 주도하는 배터리 가격 인하 경쟁이 업계 전반을 소수 기업 중심으로 재편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의미다.
▲ 중국 BYD는 자체 개발한 LFP 배터리인 블레이드 배터리를 제조해 자사 전기차는 물론 테슬라 등 완성차 업체들에 공급한다. 사진은 블레이드 배터리 제조 공정. < BYD > |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 상위권에 자리잡은 CATL과 BYD의 지배력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변화는 자연히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삼성SDI 등 한국 배터리 3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선 중국 배터리 시장이 소수 기업 중심으로 안정화되는 것은 단기적으로 치열한 가격 경쟁 가능성을 낮춘다는 점에서 한국 배터리 제조사에 긍정적이다.
한국 배터리 업체들은 그동안 중국 업체들이 벌이는 가격 인하 대결에 압박을 느껴 배터리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노력에 더욱 힘을 실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중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이런 추세는 CATL과 BYD가 중국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성장세를 더욱 가속화하는 결과로 이어져 더욱 녹록지 않은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CATL과 BYD가 중국 내수시장에서 확실한 2강 체제로 자리매김한다면 외형 성장을 통해 배터리 생산 물량을 늘리고 규모의 경제 효과로 원가도 더욱 낮출 수 있어 시장 지배력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차이글로벌에 따르면 2023년 두 회사의 중국 내 전기차 배터리 합산 점유율은 이미 약 70%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중국 내수시장이 안정화되면 CATL과 BYD가 본격적으로 해외 진출에 속도를 내며 한국 배터리3사의 주요 시장인 미국과 유럽으로 보폭을 확대할 가능성도 유력하다.
증권사 UBS는 2023년부터 2027년까지 중국 배터리 기업들의 유럽 시장 점유율이 30%에서 50%로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같은 기간 한국 기업들의 점유율은 60%에서 40%까지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배터리업계의 한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를 통해 “상위 업체를 중심으로 배터리 시장이 재편(consolidation)될 시기가 가까워지는 것 같다”며 중국이 수 년 안에 배터리와 전기차 시장에서 막강한 지배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 경쟁사들이 줄어들수록 한국 배터리 업체들의 기술적 우위가 더욱 돋보이게 될 가능성도 있다며 중국의 공세를 방어할 여력도 충분히 확보하게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