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에너지경제 재무연구소(IEEFA)에서 21일 발간한 '한국 전력 시장의 삼중고' 보고서 표지. < IEEFA > |
[비즈니스포스트]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지정학적 불안 요인에 따른 전력 비용 부담에 노출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전력이 높은 부채비율로 채권 발행을 통한 재원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기형적인 전력 시장의 구조 개편이 시급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주목된다.
미국 에너지경제 재무연구소(IEEFA)는 21일 ‘한국 전력 시장의 삼중고’라는 제목으로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번 보고서는 한국의 높은 화석연료 발전 의존도가 에너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주로 분석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지 않은 시나리오와 현재 상황을 비교 분석한 결과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한국은 22조 원이 넘는 추가비용을 부담해야 했던 것으로 분석했다.
김채원 IEEFA 연구원은 “한국은 빠른 에너지 전환을 통해 액화천연가스(LNG) 비중을 G20 평균 수준으로 낮추는 등 탈탄소화를 가속화하지 않아 1인당 약 43만 원에 달하는 추가 부담을 지게 됐다”고 강조했다.
전쟁 발발로 높아진 LNG 가격에 직격타를 받은 것이다. 한국전력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22년 11월 기준 LNG 가격은 199만 원을 넘겨 2021년 11월 99만원보다 두 배 이상 올랐다.
LNG를 포함한 한국 화석연료 발전 의존도는 65.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52.2%보다 높아 영향이 더 크게 나타났던 것으로 분석됐다.
IEEFA는 이에 향후 화석연료와 관련된 지정학적 불안요소가 다시 나타난다면 전력 공급이 다시 불안정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원은 “전기요금 제도 정상화 및 전력시장 개편을 서둘러 신속한 에너지 전환을 통해 비용절감과 혁신을 달성해야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전은 재생에너지 전환 일환으로 2022년부터 2024년까지 녹색채권을 38억 달러(약 5조4천억 원) 발행했다. 녹색채권은 재생에너지 확보, 탄소감축에 쓰인다는 목적을 명시하고 해외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발행한다.
문제는 한전이 발행한 채권을 재생에너지 확보가 아닌 화석연료 부채 해소에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전 2023년 녹색채권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녹색채권 수익 16억 달러 가운데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프로젝트, 인프라 구축 등에 쓰인 것은 8억1천만 달러에 불과했다.
고동현 기후솔루션 기후금융팀장은 “한전은 석탄과 천연가스에 의존한 전력 구매로 2년 동안 50조 원에 가까운 손실을 기록했다”며 “이 때문에 국내에서도 채권 발행을 확대해왔던 상황을 생각하면 녹색채권도 대부분 화석연료 채무 상환에 쓰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IEEFA는 결국 한전 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력시장 개편을 통한 갱쟁력 확보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022년 12월 기준 한전 소매전기 판매 매출 단가는 연내 11.1% 증가하는 동안 한전이 발전사에서 전기를 사올 때 지불하는 도매전력가격은 87.4% 급등했다. 한전이 계속 손실을 볼 수밖에 없는 기형적 구조인 셈이다.
한편 한전은 21일 연료비조정단가를 기존과 같은 1킬로와트시(kWh)당 5원으로 유지한다고 발표했다.
▲ 서울시 마포구에 설치된 전력량계. <연합뉴스> |
연료비조정단가는 2021년 정부가 도입한 연료비연동제에 따른 것으로 직전 3개월 동안 유연탄, LNG 등 연료비 변동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전기요금에 반영된다. 연동제에 따른다면 2.5원으로 인하해야 했으나 한전 측은 부채 부담으로 불가피하게 5원을 유지했다.
김 연구원은 “일각에서는 이번 동결이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나온 정치적 결정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며 “한전이 연료비조정분을 반영하기 위해서는 산업통상자원부와 기획재정부 승인이 필요하고 5원이라는 상하한선이 존재해 사실상 유명무실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영국은 에너지 조달이 어려워진 2022년부터 2023년까지 전력 소매가격 상한을 59% 높였다. 올해 들어 상황이 완화되자 국민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올해 2분기 상한을 12% 낮췄다.
영국 하원의회 도서관 자료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인하되는 국민 전력요금은 1킬로와트시당 10펜스(약 169원) 가량이 될 것으로 추정됐다. 에너지 조달 현황에 따라 전력시장을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셈이다.
김 연구원은 “한국은 인위적으로 연료 가격과 비용 비율을 낮춰 허위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며 “이런 비효율이 한전 부채를 증가시켰고 정부 발행 채권 등 임시방편을 계속 찾게 만드는 도덕적 해이를 불러 일으켰다”고 강조했다.
이어 “신재생 에너지 발전 비용이 화석연료 발전 비용과 같거나 낮아지는 시점은 기술 발달에 힘입어 2025~2027년 정도로 다가왔다”며 “한국이 화석연료 위주 발전을 고집한다면 그 기회비용은 고스란히 전기요금에 반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