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PwC, 딜로이트안진, 삼정KPMG, EY한영회계법인 등 ‘빅4’ 회계법인들이 회계업계의 ‘도덕적 해이’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국내 회계시장에 빅4에 의해 과점되면서 회계 투명성이 오히려 떨어졌다는 것이다.
감사를 맡기는 기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갑을관계’가 도덕적 해이의 근본적인 뿌리인 만큼 이를 근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 4대 회계법인이 지배하는 회계시장의 민낯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4대 회계법인은 국내 회계시장에서 과점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국내 회계법인은 2015년 기준으로 137곳인데 2015회계연도(2015년 4월~2016년 3월)에 매출 2조4670억 원을 올렸다. 부문별 매출을 살펴보면 회계감사 8551억 원, 세무 7936억, 경영자문 6946억 원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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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종호 딜로이트안진 대표. |
그런데 4대 회계법인이 2015회계연도에 매출 1조2631억 원을 내 전체의 51.2%를 차지했다. 2014회계연도보다 2.1%포인트 줄었지만 여전히 50%를 넘어섰다. 매출비중을 부문별로 보면 회계감사 54.6%, 세무 37.3%, 경영자문 70.7%에 이른다.
외부감사 건수로 살펴봐도 전체 회계법인에서 수행한 개별제무제표 외부감사 2만2478건 가운데 4822건, 연결재무제표 외부감사 3191건 가운데 1449건을 4대 회계법인에서 맡았다.
4대 회계법인은 회계법인에 소속된 회계사 9821명 가운데 5035명도 확보하고 있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중소형 회계법인이 늘어나면서 4대 회계법인의 점유율도 조금씩 감소하고 있지만 여전히 비중이 큰 편”이라며 “규제나 업계 상황에 큰 변화가 없는 한 4대 회계법인의 과점구조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4대 회계법인이 시장을 독식하고 있는 동안 부실감사 논란에 대한 책임론도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국내 회계업계의 투명성이 뒷걸음질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회계법인은 감사에 따른 고객이나 제3자의 손해를 물어주기 위해 손해배상책임금을 쌓고 외부적으로도 한국공인회계사회에 손해배상기금을 적립하거나 손해배상책임보험에 들어야 한다.
국내 회계법인들은 3월 기준으로 손해배상책임을 준비하기 위해 1조3270억 원을 적립했는데 안진회계법인이 이 가운데 3264억 원을 차지했다. 삼정회계법인(3149억원), 삼일회계법인(2183억원), 한영회계법인(1889억원)이 뒤를 이었다.
4대 회계법인은 같은 기간에 회계법인을 대상으로 소송이 제기된 사건 84건 가운데 46건에 이름을 올렸다.
안진회계법인은 대우조선해양에서 분식회계를 한 것으로 추정되는 2010~2015년에 외부감사를 맡았다. 현재 안진회계법인은 국민연금 등 대우조선해양 주주들로부터 750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소송을 당했다.
삼일회계법인·삼정회계법인·한영회계법인은 지난해에 동양네트웍스를 부실감사했다는 이유로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로부터 중징계를 나란히 받기도 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은 올해 한국의 회계투명성 순위를 61개국 가운데 61위로 매겼다. 지난해 같은 기간 60위에서 한단계 떨어졌다.
최중경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은 최근 “회계는 거시경제 통계의 기초이며 금융자원 배분의 왜곡을 방지하고 산업구조조정의 정확한 타이밍을 포착하는 데 쓰인다”며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회계 투명성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 회계법인은 왜 ‘도덕적 해이’에 빠졌나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은 2013년에 외부감사인을 선임할 때 안진회계법인에서 이연법인세 부채 등의 회계처리를 대우조선해양에 유리한 방향으로 해준다는 점을 높이 평가해 감사회사로 선정했다.
금융감독원이 국내 상장법인 2002곳의 2015회계연도 재무제표를 대상으로 회계법인 108곳에서 낸 감사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1990곳(99.4%)이 ‘적정’ 의견을 받았다. 회계법인들이 ‘적정’ 의견을 남발하면서 분식회계를 사실상 거의 적발하지 않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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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경태 삼일PwC 대표. |
안경태 삼일회계법인 대표는 한진해운에서 4월에 자율협약을 신청하기 직전에 당시 한진해운의 대주주였던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에게 미공개 내부정보를 흘려 보유한 주식을 미리 팔도록 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대형 회계법인들은 감사기업에 수익을 의존하는 구조 때문에 이런 ‘도덕적 해이’에 빠진 것으로 평가된다.
회계사 수는 늘어나고 있지만 기업에서 받는 감사보수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회계법인이 ‘갑’의 위치에 서 있는 기업과 대주주의 눈치를 보거나 유착되기 쉽다는 것이다.
한국회계학회에 따르면 공인회계사 수는 2013년 기준으로 1만5945명인데 2001년 5354명에서 3배 가까이 늘었다. 그런데 공인회계사 1명 당 감사보수는 2013년 기준 2억2400만 원으로 2001년 3억5200만 원에서 1억 원 이상 줄었다.
회계법인이 부실감사를 하거나 부정을 저질렀을 때 금융당국에서 가하는 제재수위도 높지 않아 도덕적 해이가 되풀이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실감사를 한 회계법인은 등록취소, 업무정지나 제한, 최대 20억 원 규모의 과징금, 손해배상공동기급 적립 등의 제재를 받는다.
그러나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2년~2015년 8월까지 부실감사를 저지른 회계법인에게 내려진 제재 36건 가운데 등록취소나 1년 이내의 업무정지 등 중징계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삼정회계법인은 감사대상이었던 STX조선해양에서 2007~2012년 동안 2조3천억 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한 사실을 알아내지 못했는데도 손해배상공동기금 30%를 추가로 쌓고 STX조선해양에 대한 감사업무를 제한받는 수준의 제재만 받았다.
금융권 관계자는 “미국에서 2008년 엔론이 대규모 분식회계를 저지른 사실이 적발됐을 때 외부감사를 맡았던 회계법인 아서앤더슨은 결국 문을 닫았다”며 “국내 회계법인에 대해서도 부실감사 사실이 드러났을 때 제재 수위를 조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