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이 호남고속철도 공사에 대한 건설업체 담합을 주도하고 최대 과징금을 부과받고도 먼저 자진신고를 했다는 이유로 과징금과 검찰고발을 면제받았다.
담합행위를 해도 자진신고를 1순위로 하면 죄를 사면해주는 리니언시 제도를 둘러싸고 논란이 다시 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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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 |
28일 공정위원회에 따르면 삼성물산은 호남고속철도 공사에 대한 담합을 주도해 28개 건설사 가운데 835억88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지만 전액 면제받게 됐다.
이번 담합에 대한 전체 과징금 규모는 4천355억 원으로 삼성물산이 가장 많다.
삼성물산은 2009년 6월과 2010년 3월 서울시내 카페 등에서 두 차례에 걸쳐 담합을 주도했다. 삼성물산은 1-2공구를 선점하고 SK건설과 2009년 11월 투찰가격을 합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뒤늦게 입찰 참여의사를 밝힌 경남기업에 들러리를 서게 하고 투찰가격을 정해 통보했다. 결국 삼성물산은 투찰률 0.07%라는 간소한 차이로 낙찰을 받았다.
그러나 삼성물산은 공정위가 조사에 들어간 지난 4월 1순위로 자진신고를 했다. 이에 따라 삼성물산은 검찰고발과 과징금 100%를 면제받게 됐다.
담합을 주도한 기업이 자진신고를 해 감면혜택을 받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한국가스공사가 발주한 2조 원대의 ‘주배관 공사’를 놓고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경찰은 지난 5월 이 공사 과정에서 담합이 벌어졌다는 혐의를 발견하고 수사에 들어갔다.
경찰조사 결과 건설사들은 두산중공업 주도 아래 제비뽑기로 공구별로 낙찰받을 회사와 입찰가격을 결정하고 특정업체가 낙찰받을 차례가 되면 나머지 업체들이 약간 높은 액수를 써내는 방법으로 담합을 했다.
경찰수사가 벌어지자 담합을 주도한 두산중공업은 공정위에 담합사실을 자진신고했다. 이에 따라 두산은 앞으로 과징금 감면혜택 등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다른 업체들도 거의 같은 시점에 공정위에 자신신고했으나 두산중공업에 비해 증거자료 제출이 미흡해 두산중공업만 리니언시 제도의 혜택을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담합을 주도한 기업이 먼저 자진신고를 하고 사면을 받는 일이 거듭 벌어지자 리니언시 제도가 오히려 대기업들이 부당이익을 챙기는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리니언시 제도는 담합을 효과적으로 적발하기 위한 제도다. 대개 담합행위는 교묘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내부고발이 없으면 증거를 수집하거나 적발하기가 어렵다는 현실을 감안해 도입됐다.
그러나 기업들은 이 제도를 악용하고 있다. 담합을 주도하는 대기업이나 선두업체들이 먼저 신고를 해 면제를 받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주범이 무죄를 선고받는 것과 같은 셈이다. 시장점유율이 높을수록 부당이익도 늘어 피해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2001~2013년 사이 공정위에 적발된 담합사건 중 절반 이상이 국내 20대 그룹과 관련이 있었으며 이들은 리니언시로 면제받았다.
또 공정위 조사가 임박하거나 시작한 뒤 신고하는 경우가 많아 제도의 취지가 흐려졌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공정위 발표에 따르면 2012년 리니언시를 적용한 12건의 담합사례 중 10건이 공정위가 조사를 시작한 후 신고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리니언시 제도를 좀 더 실효성 있게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높아지고 있다.
학계는 시장점유율 연동 감면제를 제안한다. 이는 기업이 담합을 자진신고 했을 때 감면비율을 시장점유율에 반비례하게 적용하자는 것이다. 이 제도는 부당이익의 정도에 따라 감면 수준을 적용할 수 있어 소비자의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다.
강기정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6월 공정위가 담합행위 조사를 시작한 뒤에 최초로 신고해도 과징금의 50%를 내게 하는 취지의 법률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현행법은 최초 신고자이면 공정거래위원회 조사시점과 상관없이 과징금을 100% 면제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