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상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D램개발실장 부사장이 차세대 고대역폭 메모리 경쟁력 확보의 중책을 맡고 있다. <삼성전자>
[비즈니스포스트] 삼성전자가 차세대 '고대역폭 메모리(HBM)' 개발에 속도를 높이며 시장점유율 확대를 꾀하고 있다.
황상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D램개발실장 부사장은 미래먹거리로서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차세대 HBM 경쟁력 확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됐다.
18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황 부사장은 첨단패키지사업팀(AVP)과 함께 6세대 HBM인 HBM4를 경쟁업체인 SK하이닉스보다 앞서 양산하는 것을 목표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HBM은 램을 여러 층으로 쌓아올린 형태의 메모리로 기존 D램과 비교해 높은 대역폭, 고용량, 낮은 전력 소비 등의 장점을 고루 갖춰 인공지능 서버처럼 대규모 데이터를 처리해야 하는 분야에서 활용범위가 넓어지고있다.
HBM은 1세대(HBM)-2세대(HBM2)-3세대(HBM2E)-4세대(HBM3)-5세대(HBM3E)-6세대(HBM4) 순으로 발전하고 있다.
황상준 부사장은 최근 삼성전자 뉴스룸 기고문을 통해 “2025년 양산을 목표로 HBM4를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경쟁사인 SK하이닉스보다 1년 빠르게 생산에 들어가는 것이다.
HBM4는 이전 세대 HBM과 비교해 성능이 크게 발전하는 만큼 활용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업계 한 관계자는 “HBM4는 아직 국제반도체표준규격(JEDEC 규격)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현재로선 HBM3E보다 두 배 가까이 되는 수준으로 성능이 대폭 개선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 황상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D램개발실장 부사장.
황 부사장은 HBM4를 SK하이닉스보다 앞서 양산해 HBM 시장에서의 역전을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보다 HBM 기술력에서 앞서 있다는 평가가 우세한데 이를 바탕으로 점유율에서도 우위를 보이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HBM 시장점유율에서 SK하이닉스(50%)에 밀려 2위(40%)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삼성전자는 HBM에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며 추격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SK하이닉스에 4세대 고대역폭메모리 HBM3의 세계 최초 양산 및 개발이라는 타이틀을 내주는 등 기술경쟁에서 밀리는 모습이다.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보다 한 발 늦게 인공지능 반도체 최강자인 엔비디아의 HBM3 공급망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엔비디아는 글로벌 인공지능 반도체시장에서 90%가 넘는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어 반드시 고객사로 끌어들여야 하는 기업으로 꼽힌다.
SK하이닉스는 지난 6월 엔비디아에 HBM3를 납품한다고 밝혔지만 삼성전자는 9월에야 엔비디아와 HBM3 공급하기로 잠정 합의한 것으로 시장에 알려졌다.
HBM3는 HBM 제품군 가운데 현재 주류인 만큼 삼성전자가 HBM3 공급에서 한발 뒤처지고 있다는 사실은 전체 HBM 시장에서 주도권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SK하이닉스의 우위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는 지난 8월 삼성전자보다 앞서 HBM3의 다음 세대 HBM인 HBM3E의 개발완료 소식을 밝혔다.
이민희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가 차세대 메모리에서 SK하이닉스에 밀리는 면이 있다”며 “이러한 경향성은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삼성전자는 6세대 HBM4부터는 역전을 노려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HBM4에 있어 SK하이닉스와 달리 반도체를 생산하는 파운드리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
반도체업계에서는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엔비디아의 HBM이 탑재되는 AI반도체 생산을 수주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엔비디아는 삼성전자에 △AI반도체 생산 △메모리 제작 △첨단패키징을 함께 주문할 수 있다.
이렇게 엔비디아로부터 턴키 수주를 하게 되면 황 사장은 첨단패키징사업팀과의 시너지를 낼 수 있다. 황 사장은 기고문에서 “첨단 맞춤형 턴키 패키징 서비스도 제공하여 AI·HPC(고성능컴퓨팅) 시대에 최고의 솔루션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첨단패키징은 반도체설계가 복잡해지고 고도화될수록 중요성이 커지고 있어 성능이 대폭이 높아질 HBM4에서 턴키 수주전략이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HBM4는 성능개선을 위해 1024비트 메모리 인터페이스가 2048비트로 확대되는 등 이전 세대보다 설계가 대폭 고도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 전문매체 아난드테크는 “HBM4로 넘어가면 기존 HBM의 상호 연결밀도가 두 배로 늘어날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시스템반도체 제조업체, 메모리 제조업체, 패키징 기업 사이의 더욱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 ▲ 인공지능반도체의 간략한 구조도(반도체업계 정보 취합).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황상준 부사장이 HBM4 선행개발에 성공하면 삼성전자는 턴키 수주전략을 앞세워 엔비디아를 주요 고객사로 확보할 수 있고 차세대 메모리사업이 경쟁사에 뒤지는 상황을 뒤집는데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
황 부사장에 부여된 HBM4 개발과제의 성패가 향후 삼성전자 차세대메모리 사업의 대외적 위상과도 이어질 수 있는 셈이다.
황 부사장은 올해 7월 D램개발실장 부사장으로 새로 임명됐다. D램개발실장 교체를 두고 HBM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 기존 D램 개발담당 임원들에 대한 문책성 인사였다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삼성전자가 D램을 비롯한 메모리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2위 기업인 SK하이닉스는 HBM 등 차세대 메모리를 앞세워 빠르게 점유율 격차를 좁히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옴디아에 따르면 올해 2분기 SK하이닉스는 D램 시장점유율이 삼성전자(38.2%)에 뒤이은 31.9%였는데 SK하이닉스가 D램 시장에서 30% 넘는 점유율을 기록한 것은 2013년 이후 약 10년만에 처음이다.
이는 삼성전자가 구형 메모리반도체(레거시)를 중심으로 공격적 감산정책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SK하이닉스가 차세대 메모리인 HBM과 DDR5를 중심으로 시장점유율을 높인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전자는 향후 1위 메모리반도체 기업으로서의 위상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HBM4를 비롯한 차세대 메모리반도체에 힘을 쏟아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전자업계 한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삼성전자는 첨단 메모리, 파운드리, 패키지 기술력을 모두 갖추고 있어 제품성능과 생산효율성 면에서 큰 장점을 갖춘 만큼 HBM 고객사들을 빠르게 넓혀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바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