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이 대 중국 반도체 추가 제재를 하기엔 이미 시기가 늦어 효과를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사진은 중국 광동성 선전시에 위치한 화웨이의 플래그십 판매점에 '메이트60' 시리즈를 보기 위해 몰린 인파.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산업 견제를 위한 추가 제제를 고려하고 있지만 그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의 반도체 기업들이 트럼프 정부부터 이어진 규제에 미리 대응하는 차원에서 첨단 미세공정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장비 등을 미리 갖춰 두었다는 점이 그 근거로 꼽힌다.
미국의 추가 제재로 자국산 제품만 사용하자는 ‘기술 민족주의’가 형성되면서 중국 기업 사이에 협력이 강화되면 고객사를 확보하기가 한결 수월해질 것이라는 시각도 제기된다.
16일(현지시각) 홍콩언론 아시아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반도체 분석가 스콧 포스터는 미국의 대중국 추가 제재 추진 움직임을 두고 ‘너무 뒤늦은 조치’라는 분석을 내놨다.
미국의 추가 제재안이 이미 시기를 놓쳐 목표한 만큼의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 의회와 상무부는 중국 화웨이가 SMIC의 7나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미세공정을 통해 생산한 모바일 AP인 ‘기린9000s’를 최신 스마트폰 ‘메이트60프로’에 탑재했다고 알려지면서 대중국 반도체 제제 수위를 강화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미국의 반도체 전문 컨설팅업체인 세미애널리스틱의 수석 연구원 딜런 파텔은 “중국 당국의 반도체 굴기를 막기 위해 전공정(웨이퍼에서 칩을 만드는 단계)에 필요한 장비를 포함해서 화학물질 및 패키징(조립) 등 대다수 장비와 기술의 대중국 수출을 제한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아시안타임스는 이런 목소리를 놓고 “아무리 제재를 강화한다고 해서 화웨이와 SMIC가 첨단 미세공정 반도체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할까?”라며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바라봤다.
그런 관측의 근거로 중국이 미국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시작된 반도체 제제에 꾸준히 대응책을 마련했다는 점을 들었다.
중국 기업들이 첨단 공정에 필요한 반도체 생산 장비를 미리 준비하고 장비 운용 인력을 확보해 두었다는 것이다.
미국은 트럼프 정부 시절인 2019년 하반기부터 자체 설계한 반도체가 미국의 안보설비에 탑재될 것을 우려한다는 명분으로 화웨이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첨단 미세공정 반도체를 생산하는데 필수인 EUV(극자외선) 노광장비가 중국에 수출되는 것을 통제하고 기술 인력의 중국 기업 취업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
▲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제재가 중국 기업들의 기술 민족주의를 부추긴다고는 시각도 나온다. 사진은 지난 2022년 11월14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에서 마주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연합뉴스> |
그러나 중국 기업들은 장비와 인력 문제 등에 선제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파악된다.
SMIC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대만 TSMC의 전현직 인력을 꾸준히 스카웃하면서 기술 격차를 줄이는데 대규모 투자를 이어왔다.
2017년에는 TSMC와 삼성전자에서 오랜 기간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DUV(심자외선) 멀티패터닝 등 핵심 기술을 보유한 대만인 량멍쑹(양몽송)을 최고경영자(CEO)로 영입했다. 멀티패터닝을 웨이퍼에 회로를 두 번 이상 새겨 반도체의 정밀도를 높이는 기술을 말한다.
SMIC의 7나노 공정에서 제조돼 화웨이 스마트폰에 탑재된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또한 DUV 장비를 활용해 멀티패터닝을 통해 생산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TSMC로부터 핵심 인력을 영입하고 그동안 확보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첨단 미세공정 반도체를 개발하는데 성공한 셈이다.
아시아타임스는 “화웨이의 메이트60프로로 입증된 것처럼 SMIC의 엔지니어들은 중국이 미리 사들인 반도체 장비들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잘 알고있다”며 “SMIC를 포함해서 미국의 제재에 대비해 온 중국 기업들은 향후 2~3년 동안 반도체 양산에 큰 차질을 빚지 않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다만 멀티패터닝 공정은 다수의 작업을 반복하는 것이 불가피해 비용 측면에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SMIC가 7나노 공정에 사용한 장비는 기존에 구매해 둔 ASML의 DUV 일 가능성이 높지만 ASML의 기술 지원이 미국 제재로 중단되고 소모품 수출 또한 제한되면서 중장기적 경쟁력은 미지수라는 것이다.
또 미국의 제재가 중국의 ‘기술 민족주의’를 자극해 오히려 초미세공정 반도체 개발을 촉진했다는 시각도 있다.
IT전문지 톰스하드웨어의 16일자 보도를 보면 쉬즈진 화웨이 순환회장은 “외국 제품보다 성능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중국산 반도체를 사용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외국 기업과 기술 격차를 줄이는 것을 돕기 위해 다소의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적극적으로 협력을 추구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는 외국산 첨단 부품을 활용해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지 않더라도 중국의 막대한 내수시장 점유율만 높인다면 반도체 기술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으로 읽힌다.
중국 정부 또한 최근 3천억 위안(약 54조8263억 원)에 육박하는 반도체 지원 펀드를 조성하는 움직임을 보이며 반도체 굴기(진흥)에 힘을 쏟는 모양새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규제는 중국 기업들 사이의 ‘기술 민족주의’만 자극하면서 목표했던 효과는 거두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고개를 든다.
톰스하드웨어는 쉬즈진 회장이 “미국이 규제를 완화할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고 한 발언을 소개하며 화웨이가 앞으로도 중국 내 파운드리를 통한 자체 반도체 개발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