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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부 띄우고 윤정부는 낮추고, 이념대결 수단된 독립운동가 홍범도

김홍준 기자 hjkim@businesspost.co.kr 2023-08-28 13:2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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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부 띄우고 윤정부는 낮추고, 이념대결 수단된 독립운동가 홍범도
▲ 2018년 3월1일 서울 노원구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독립전쟁 영웅 흉상 제막식에서 이종찬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위원장, 이준식 독립기념관장 등 독립운동가 후손들과 김완태 육군사관학교장을 비롯한 군 관계자, 사관생도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가장 왼쪽 흉상이 홍범도 장군. <육군사관학교>
[비즈니스포스트] 육군사관학교에 설치된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이 정치권에서 이념 대결로 점점 격화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홍범도 장군을 독립운동 영웅으로 추켜세웠으나 윤석열 정부는 공산당 가입 이력을 거론하며 냉담한 태도를 보인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홍범도 지우기' 행보까지 나타내면서 여당 일각에서조차 지나치다는 부정적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육군사관학교뿐 아니라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흉상 또한 필요하다면 이전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 대변인은 ‘국방부 앞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을 검토하고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을 받자 “국방부가 현재 검토하고 있으나 결정된 바는 없다”며 “홍범도 장군과 관련돼서 지난해부터 공산당 입당 또는 그와 관련된 활동이 지적되고 있어서 검토하는 것으로 이해해 달라”고 답했다. 

박근혜 정부 때 진수된 1800t급 잠수함 ‘홍범도함’의 이름을 바꿀지 질문에는 “해군에서 검토해야 할 사안으로 결정된 바는 없다”면서도 “검토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생각한다”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전 대변인은 다만 육군사관학교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은 육사가 지난해부터 자체적으로 기념물 재정비를 추진하는 것이라며 “흉상이 다른 곳으로 이전되더라도 독립군과 광복군의 역사를 국군의 뿌리에서 배제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국방부는 최근 서울 노원구 육군사관학교에 설치된 김좌진, 홍범도, 지청천, 이범석 독립군 장군과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이회영 선생의 흉상을 철거한 뒤 다른 곳으로 이전하겠단 방침을 마련했다.
 
문정부 띄우고 윤정부는 낮추고, 이념대결 수단된 독립운동가 홍범도
▲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이 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청사에서 정례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범도 장군을 포함한 독립운동가 5인의 흉상은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에 삼일절을 맞아 육군사관학교에 설치됐다. 흉상은 5.56㎜ 보통탄 5만 발 분량의 탄피 300㎏을 녹여서 만들었다.

홍범도 장군의 소련 공산당 가입 이력이 흉상 철거 배경이 된 것으로 파악된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25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공산주의 경력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며 흉상 철거 추진의 원인이 홍범도 장군의 소련 공산당 가입 이력임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홍 장군의 소련 공산당 가입이 남북 분단 이전일 뿐만 아니라 광복 이전인 1943년 카자흐스탄에서 타계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드러나며 광복이 되기도 전에 있었던 공산당 가입 전력을 문제 삼아 국군의 뿌리를 부정하는 것이 타당하냐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한민국의 뿌리가 임시정부에 있듯이 우리 국군의 뿌리도 대한독립군과 광복군에 있음을 부정하는 것인가”라며 “국권을 잃고 만주로, 연해주로, 중앙아시아로 떠돌며 풍찬노숙했던 항일무장독립운동 영웅들의 흉상이 오늘 대한민국에서도 이리저리 떠돌아야겠느냐”고 비판했다.

여권 내부에서조차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고개를 든다. 박정희 정권에서 건국훈장을 추서할 만큼 역대 보수 정부에서도 높게 평가한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배경에 윤석열 정부의 ‘문재인 정부 지우기’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김병민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28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나와 “문재인 정부에서 이뤄졌던 일들과 관련해 약간의 조정 과정을 육군사관학교에서 추진하는 게 아닌가 싶다”면서도 “개인적으로는 과유불급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홍범도 장군은 문재인 정부 시절 최고의 예우를 받으며 추모의 대상이 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21년 카자흐스탄에 안치된 홍 장군의 유해 한국 봉환을 주도하는 등 홍범도 장군 추모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인 바 있다. 유해 봉환 과정에서 대한민국 공군 전투기 6대가 엄호 비행을 하며 홍범도 장군을 맞이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문 전 대통령은 2021년 8월 15일 서울공항에서 열린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식에서 “우리에게 매우 의미 있는 귀환”이라며 “국민들 중에는 홍범도 장군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하는 분들도 간혹 있으니 기념사업회를 중심으로 항일독립운동에 앞장섰던 그분의 생애와 고귀한 뜻을 적극적으로 알리도록 노력해 달라”고 강조했다.

문 전 대통령은 2021년 홍범도 장군에게 1급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홍범도 장군은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62년 2급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받았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최근 문재인 정부의 건국 훈장 수여도 문제 삼은 바 있다. 현행 상훈법 4조는 ‘동일한 공적에 대해 훈장 또는 포장을 거듭 수여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정부 띄우고 윤정부는 낮추고, 이념대결 수단된 독립운동가 홍범도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8월1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포럼에 참석해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 장관은 16일 서울 중국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포럼에 참석해 “안중근 의사, 김구 선생은 별 5개의 대한민국장인데 여운형 선생·홍범도 장군은 별이 9개”라며 “상훈법상 (동일 공적) 중복서훈은 금지됐다. 명백히 절차를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공훈전자사료관에 따르면 두 건국훈장이 수여된 공적은 서로 달랐다.

홍범도 장군의 1962년 2급 건국훈장 수여는 만주에서 독립군을 지휘하며 김좌진 장군과 함께 ‘혁혁한 공적’을 올린 것 때문이었다. 2021년 1급 건국훈장은 항일무장투쟁의 상징으로서 국민통합과 민족정기 선양, 고려인의 민족정체성 형성, 한국과 카자흐스탄 간 우호 증진 기여를 공적으로 인정받아 받게 됐다.

홍범도 장군은 1868년 평양 출신으로 양반집에서 머슴살이하던 아버지에게서 태어났다. 이로 인해 1895년 을미의병 발생 시기까지 불우하고도 과격한 젊은 시절을 보내며 병사, 승려, 제지소 일꾼, 포수 등을 전전했다.

을미의병 발생 직후에는 강원도에서 김수협과 14명 규모의 의병을 일으켰다. 북상하던 유인석의 의병대와 연계해 일본군과 3차례의 전투를 진행했으나 을미의병의 기세가 줄어들자 의병을 해체하고 귀향해 포수 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홍범도 장군은 1907년 정미의병 때 의병을 다시 결성했다. 함경남도 갑산 일대의 포수들을 모아 600~700명 규모의 의병을 조직한 뒤 함경도와 강원도를 무대로 유격전을 벌였다.

경술국치 이후 국내 무장독립운동 환경이 어려워지자 1911년 연해주로 망명했다. 이 시기 홍범도 장군은 소련 공산당과 손을 잡고 일본을 향한 대항 전선을 펼칠 것으로 알려졌다.

그 뒤로는 연해주를 주요 거점으로 삼아 함경북도로 수차례 진출했다. 능력을 인정받아 봉오동 일대에서 무장독립운동 단체들이 연합해서 결성한 대한북로군의 북로 제1군 사령부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것도 이 시점이다. 홍범도 장군은 1920년 6월 봉오동 전투에서 이겼으며 4개월 뒤 일어난 청산리 전투에도 참여해 활약했다.

그 뒤 일본군의 독립군 토벌전, 만주 군벌의 견제 등으로 인해 독립군 활동이 어려워지자 소련 땅으로 이동했다. 홍 장군은 소련에 입국할 때 제출한 입국신고서에 직업은 ‘의병’, 목적과 희망은 ‘고려 독립’이라고 기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범도는 소련 이주 뒤에는 연해주의 한인 지역사회 지도자가 됐으며 1927년엔 소련 공산당에 정식으로 입당했다. 이오시프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 이주 때는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로 강제 이주돼 고려극장 수위장, 정미소 노동자로 일하다 1943년 사망했다.

홍범도 장군은 공산당 이력에도 불구하고 역대 보수 정권에서도 그 공적을 인정받았다.

박정희 정부는 1962년 홍 장군이 만주에서 독립군을 지휘하며 혁혁한 공적을 올렸다며 2급 건국훈장을 추서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90년 한국-소련 수교 때 홍 장군 유해 국내 봉환을 시도했으나 홍 장군의 고향이 위치한 북한의 반대, 카자흐스탄 현지 고려인 사회의 반발에 막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또한 ‘역사 바로세우기’를 내세우며 홍 장군 유해 봉환을 카자흐스탄에 요청했으나 실패했다. 박근혜 정부는 2016년 해군의 1800t급 최신 잠수함을 ‘홍범도함’이라 명명했다. 김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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