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마트와 롯데마트 등 대부분의 상품을 직매입해 판매하는 대형마트들이 제조업체의 가격 인하로 단기적 부담을 안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사진은 28일 한 대형마트에서 고객이 상품을 고르는 모습.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라면과 과자, 식품업계의 가격 인하 흐름이 할인점업계에 단기적으로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대형마트 입장에서는 제조업체가 가격을 인하하기 전에 매입했던 재고를 싼 가격에 팔아야 하는 상황이 썩 달갑지만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28일 할인점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라면업계에서 시작된 제품 가격 인하 행렬이 식품업계, 제과업계로 빠르게 번지면서 할인점의 고민도 덩달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할인점은 통상 제조업체로부터 재고를 미리 직매입한 뒤 일정 마진을 더한 가격으로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사업 구조를 가지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11월에 발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대형마트의 거래방식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직매입(84.3%)이다. 특약매입(10.4%)과 위수탁(0.2%), 임대을(5.1%) 거래방식은 모두 직매입 비중과 비교하면 미미하다.
특약매입은 대규모 유통업자가 매입한 상품 가운데 판매하지 못한 상품을 반품할 수 있는 조건으로 상품을 외상 매입하고 상품을 판매한 뒤 판매수익을 공제한 상품 판매대금을 납품업자에게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임대을은 대규모 유통업자가 매장을 임차한 입점업자에게 상품매출에 연동되는 임차료를 받는 방식을 일컫는다.
직매입이 대형마트의 거래방식 가운데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은 곧 직매입에서 얼마나 많은 이윤을 내는지가 할인점 실적을 좌지우지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뜻과 같다.
이런 점에서 현재 라면·식품·제과업계의 출고가 인하 결정은 단기적으로 대형마트에 부담이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대형마트들이 라면·식품·제과업계에서 직매입한 상품은 출고가 인하가 이뤄지기 전 매입한 상품들이다.
각 할인점마다 재고를 언제 확보하는지를 영업비밀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에 정확한 재고 매입 시기를 확인하기는 힘들지만 통상 제품 변질 우려가 없는 상품은 1~2달 먼저 상품을 확보해놓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물로 제조업체의 상황에 따라 1~2주 만에 직매입한 재고를 소진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
이 재고에 일정 이윤을 붙여 판매하게 되면 대형마트로서는 손해 볼 것이 없는 장사가 된다.
하지만 현재 각 할인점들은 미리 확보해 놓은 재고를 놓고서 할인 판매를 검토해야 하는 입장인 것으로 파악된다. 싼 가격에 사들인 상품을 싸게 팔아야 한다는 얘기다.
정부가 소비자 부담을 줄이자는 명분에서 각 제조업체에 가격 인하를 압박해 출고가 인하가 이뤄졌는데 유통업체에서 재고 상황을 고려해 가격 인하 시기를 늦추기에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롯데마트는 이미 27일 농심의 가격 인하 결정 소식이 알려지자 소비자 부담을 줄이자는 취지에 동참하는 차원에서 출고가 인하 전 매입한 상품에 대해서도 7월1일부터 일괄적으로 가격을 기존보다 낮게 책정해 판매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물론 이런 결정이 내려진다고 해도 할인점업계가 입을 타격이 크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형마트가 통상 식품 카테고리에서 내는 매출 비중은 50~60%대로 파악되는데 이 가운데 라면과 과자, 냉장·냉동 부문이 차지하는 몫이 실적에 영향을 줄 만큼 크지는 않다는 것이 유통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할인점업계의 한 관계자는 “제조업체와 가격 인하 시기와 인하 폭 등을 놓고 협상하고 있다”며 “장기적 파트너로 오랜 기간 사업에서 협력해온 만큼 최적의 방안을 찾아 결정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27일 농심이 신라면과 새우깡 출고가를 인하하기로 한 뒤 라면업계뿐 아니라 제과업계의 가격 인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삼양식품이 7월1일부터 삼양라면과 짜짜로니 등 대표 제품 12개의 가격을 평균 4.7% 인하하겠다고 27일 밝힌데 이어 28일에는 오뚜기와 해태제과, 롯데웰푸드 등이 주요 제품의 가격 인하를 발표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8일 국제 밀 가격의 하락과 관련해 라면 가격도 시세를 반영해 가격을 내려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하며 사실상 라면업계에 가격 인하를 강하게 압박하자 제조업체들이 백기를 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