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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터널' 스틸이미지. |
이준석 선장은 세월호 참사 당시 배에 물이 차오르는데도 학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하고 정작 자신은 배에서 탈출했다.
단원고의 두 교사는 비교적 탈출이 쉬운 선실 5층에 있었지만 학생들과 함께 하기 위해 4층으로 내려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어쩌면 삶이란 지뢰밭을 걷는 것일 수 있다. 생명을 위협받는 극한의 상황은 언제 어디서 닥칠지 알기 어렵다. 또 그런 순간이 되면 누군가는 오직 나만 살기 위해 내빼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제 목숨을 돌보지 않고 희생정신을 발휘하기도 한다.
재난영화 두 편이 스크린에서 관객들과 만난다.
‘부산행’은 개봉 3주차에도 1천만 관객 돌파를 향해 거침없는 흥행세를 이어가고 있다. ‘터널’은 10일 정식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올 여름 극장가에서 유난히 대작경쟁이 치열한데 이 가운데 재난영화가 두편이나 되는 셈이다.
재난영화는 이른바 블록버스터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단골메뉴다. 천재지변부터 외계인의 공습에 이르기까지 평온한 일상을 뒤흔드는 사건이라면 모두 이 범주에 들 수 있겠다.
과거 재난영화의 흥행공식은 어찌보면 단순하다. 대략 ‘일상-전조-재난-사투-?’의 패턴이다. 결말이 물음표인 것은 대개 주인공(결과적으로 영웅)이 사투 끝에 살아남아 가족 혹은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고 일상을 되찾아가는 결말이 있는가 하면, 희생을 당해 비극을 맞는 드문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리즈’ 시절 미모 때문에 그의 희생과 사랑이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냈던 ‘타이타닉’ 같은 영화가 후자의 경우다.
1972년 로널드 님 감독의 ‘포세이돈 어드벤처’는 헐리우드 재난영화의 효시로 꼽힌다. 그뒤 CG 등 기술력이 향상되면서 무수히 쏟아졌지만 서사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재난의 내용이나 규모, 표현력 등에서 변주가 일어나는 정도다.
한국영화에서 재난영화는 헐리우드에 비하면 한참 뒤처졌던 것이 사실이다. 과거 대형화재를 다룬 ‘싸이렌’이나 ‘리베라메’ 같은 영화도 나왔지만 관객들의 호응을 받지 못했다.
한국형 재난영화의 가능성을 열어젖힌 것은 윤제균 감독의 ‘해운대’일 것이다. 개봉 당시 한국형 재난 블록버스터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1천만 관객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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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부산행'의 한 장면. |
한국영화계에서 볼만한 재난영화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 그만큼 영화제작의 볼륨이 커졌다는 뜻이다. 실감나는 영상을 구현하자면 기본적으로 제작비가 많이 든다. 극장을 찾는 관객들도 대작 위주로 갈수록 쏠리다보니 재난영화가 제작사들의 구미를 당길 수밖에 없다.
일단 볼거리가 풍성하고 긴박한 상황 속에서 눈을 뗄 수 없는 긴장감이 영화에 대한 집중도를 높인다. 그 안에서 펼쳐지는 치졸하거나 영웅적인 면모 같은 다양한 인간군상들을 만나는 것도 흥미롭다. 뻔한 휴먼드라마인 것을 알면서 감동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 부산행의 대박 행진을 보면 이 정도로는 관객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힘들어진 듯하다.
부산행은 좀비라는 소재적 신선함, 열차라는 폐쇄적이고 속도감 있는 시공간 설정을 더해 재난영화의 흥행공식을 영리하게 변주했다. 사실상 인물 설정이나 전개가 뻔하다는 지적을 뛰어넘어 진일보한 셈이다.
하정우씨 주연의 ‘터널’이 부산행의 바통을 이어받아 또 다른 한국형 재난영화의 흥행공식을 써낼지 주목된다. 평범한 자동차 회사원이 딸 생일에 케이크를 사서 집으로 돌아가던 중 붕괴된 터널에 갇혀 고립돼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다.
‘끝까지 간다’로 재능을 인정받은 김성훈 감독의 신작이다. 터널은 부산행에 비해 좀 더 현실에 밀착한 재난영화로 관객들에게 또 다른 긴장감을 선사할 것으로 보인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