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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정부 돈 빼먹는다는 시선이 더 힘들어요", 전세사기 피해자 하소연

김환 기자 claro@businesspost.co.kr 2023-04-24 14:5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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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정부 돈 빼먹는다는 시선이 더 힘들어요", 전세사기 피해자 하소연
▲ 금융감독원은 피해가 큰 인천지원에 '전세사기 피해 종합금융센터'를 열고 피해자들을 돕고 있다. 센터는 인천 예술회관역 2번 출구를 나와 바로 보이는 시티그룹 빌딩 19층에 있다. 평일 오전 9시부터 6시까지 운영된다.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정부 돈 안 줘도 됩니다. 사기친 사람들 처벌하고 환수해서 주세요. 피해자가 정부 돈 빼먹으려 한다는 소릴 들어야 할까요?”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보증금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에 보증금 반환은 포함되지 않았다. 국민들은 남의 보증금에 세금이 쓰이는지를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세입자인 그들은 이 상황이 힘들기만 하다.

24일 금융감독원 인천지원에 마련된 ‘전세사기 피해 종합금융센터’를 직접 찾은 A씨의 생각도 비슷했다. 그는 보증금 문제로 힘이 드는데 이를 국민 세금으로 해결하려 든다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들이 느껴져 뉴스 댓글을 보기 싫다고 했다.

센터 전화벨은 이날 끊일 줄을 몰랐다. 오전 내내 통화가 끝나기가 무섭게 벨이 울렸다.

센터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전세사기 피해 문의전화는 센터가 21일 문을 연 뒤 쭉 이어지고 있고 오늘은 내방객이 더욱 늘었다”며 “인천지원이 담당하지 않는 다른 지방에서도 전세사기 피해 전반과 관련한 질문이 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센터를 찾은 사람은 오전에만 A씨를 포함해 두 명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센터가 위치한 19층에 내린 그들은 모두 부동산 계약 서류를 한아름씩 들고 있었다.

A씨는 서류들을 품에 꼭 안고서는 전화로만 상담하는 건 아무래도 불안해서 직접 센터를 방문했다고 했다. 

그는 전세사기가 예견된 사태였지만 정부대책이 늦었다고 봤다. 경고음이 오래 전부터 들려왔다는 이야기다. A씨의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날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주택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사고는최근 들어 급증했다. 2018년에는 372건이었던 것이 올해는 1분기에만 분기 기준 최고치인 7974건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최근 전세사기 피해의 핵심인 다가구 주택 보증사고도 해마다 늘었다. 2017년 2건, 2018년 7건, 2019년 39건이었던 것이 2020년과 2021년 각각 55건, 58건으로 증가했다. 전세사기가 본격화한 2022년에는 6678건으로 뛰었고 올해는 1분기에만 3928건이었다.

그럼에도 정부의 대책은 미흡하다는 게 A씨의 생각이었다. 우선매수권과 저리대출이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실질적으로 돕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정부와 여당은 전날 임차인이 임차주택을 낙찰받을 때 우선매수권을 주고 관련 세금을 깎아주고 긴 시간에 걸쳐 낮은 금리로 자금을 대출해 주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A씨는 “날림으로 2017년 신축된 곳이라 하자가 많다”며 “보증금은 내버려두고라도 이런 집을 빚까지 내 가면서 사야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다른 많은 피해자들도 A씨와 같은 생각을 품고 있다. 집의 품질문제도 있지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마당에 빚을 또다시 내야 한다는 게 이유다.

전세사기 피해자 1300여 명이 있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는 전날 정부 발표가 나온 뒤 “악성 임대인과 고의 사기꾼에 책임을 묻는 내용은 없고 또 그저 빚을 지란 내용뿐이다”거나 “내 것 아닌 돈 바란 적 없고 능력 밖의 대출을 받고 싶지도 않다”와 같은 말들이 나왔다.

보증금 반환이 보장되지 않았다는 점도 피해자들이 정부 대책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이유다.

정부와 여당은 피해자들의 주거권부터 보장하겠다며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기관에서 우선매수권을 행사해 주택을 매입한 뒤 공공임대주택으로 제공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세금을 개인의 보증금 보장에는 쓸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야당이 주장하는 공공매입은 국가에서 피해 보증금을 혈세로 직접 대납하는 방식이다”며 “이는 막대한 국민세금이 투입되고 결국 그 부담이 국민에 전가되는 포퓰리즘이다”고 말했다.

이는 전세사기 피해자 전국 대책위원회의 의견과는 거리가 있다. 대책위는 정부 발표가 있은 뒤 입장문을 내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대책위는 “피해자들과 어떠한 의견수렴 없이 일방적 정부대책만 발표하는 것부터 매우 유감이다”며 “정부에서 내놓은 대책은 피해 구제 및 회복을 위해 일부 진전은 있지만 아직 한참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물론 모든 피해자들이 보증금을 세금으로 보전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지닌 것은 아니다. A씨가 그랬고 오픈 채팅방에서도 비슷한 의견을 내놓은 사람들이 있었다.

A씨는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건은 알지만 사기꾼들을 잡아 범죄로 얻은 이익을 추징해 피해자들에 돌려줘야 한다”며 “세금으로 보증금을 메워주는 것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나는 반대한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이 저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고 원칙 문제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대책위 내부에서도 이와 관련해서는 의견이 갈리는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국민들의 시선과 관련해서는 피해자 대다수가 힘들다는 인식을 공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주요 포탈 사이트의 전세사기 피해 구제 방안 발표 뉴스의 댓글창은 피해자들에 매우 가혹하기 때문이다.

“사기를 당해도 단체로 당해야 대접받는다”거나 “친구가 돈 빌려가도 세금으로 보전해 주느냐”는 등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조롱하는 어조의 댓글들이 많다.

A씨도 이와 관련해 “뉴스 댓글만 보면 스트레스를 받고 보지 않으려 노력한다”며 “왜 국민들이 의견을 내는지 알겠지만 기본적으로 우리도 그저 세입자일 뿐이다”고 말했다.

오픈채팅방의 반응도 비슷하다. 한 피해자는 “근저당 설정이 없는 무융자 다세대 주택에 계약을 해도 조직적 전세사기로 경찰조사를 받고 있다”며 “현 상황은 피해자가 어리석거나 욕심으로 인한 피해가 아니라는 점을 국민들에 꼭 알려달라”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26일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전세사기·깡통전세 특별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연다. 여당과 야당은 27일에 전세사기 관련 법안을 상정할 계획을 세워뒀다. 김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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