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왼쪽)과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모두 지배구조 개편에 실패한 범현대가 '오너3세' 경영인이다. |
[비즈니스포스트] 현대백화점그룹의 계열사 현대그린푸드가 곧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다.
범현대가 ‘오너3세’가 이끄는 회사 가운데 지주회사 체제를 만드는 곳은 현대그린푸드가 처음이다.
범현대가 소속 여러 재벌그룹이 추진해온 지배구조 개편의 역사를 보면 ‘오너2세’는 대부분 지주사 전환에 성공했지만 ‘오너3세’는 대부분 실패한 점이 특징이다.
27일 현대백화점그룹에 따르면 현대그린푸드는 3월1일자로 현대지에프홀딩스(존속회사)와 현대그린푸드(신설회사)로 나뉜다.
이에 앞서 현대그린푸드는 2월10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지주회사로 전환하기 위한 인적분할 안건을 승인받았다.
현대그린푸드는
정지선 회장의 동생인
정교선 현대백화점그룹 부회장이 최대주주(23.8%)로 있는 회사다. 정 회장의 지분도 12.7% 존재하지만 사실상 동생 몫의 회사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현대그린푸드의 지주회사 전환을 바라보는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의 마음은 복잡할 것으로 보인다.
애초 계획대로라면 정 회장 자신이 최대주주로 있는 현대백화점도 3월1일에 현대백화점홀딩스, 현대백화점으로 쪼개져야 하지만 모두 없던 일이 됐기 때문이다.
현대백화점은 현대그린푸드와 같은 날 임시주주총회를 열었지만 국민연금의 반대 탓에 인적분할 안건이 부결됐다.
현대백화점그룹의 양대 축인 현대백화점과 현대그린푸드의 지주회사 체제 전환 시도는 결과적으로 절반의 성공인 모양새가 됐다.
사실 범현대가 오너3세 경영인 가운데
정지선 회장만 지주회사 체제 전환에 실패한 것은 아니다.
그의 사촌 형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도 2018년 3월 지배구조 개편안을 밝히며 지주회사로 가고자 했지만 좌절한 적이 있다.
현대차그룹은 2018년 3월28일 지배구조 개편 계획을 발표하며 현대모비스를 투자 및 핵심부품사업부문과 모듈 및 AS부품사업부문으로 인적분할하고 모듈 및 AS부품사업부문을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정의선 회장은 현대모비스-현대글로비스 합병회사 지분을 기아차에 매각한 뒤 마련한 자금으로 현대모비스 존속법인 지분을 인수해 지주회사를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이러한 현대차그룹의 계획은 행동주의를 표방하는 헷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와 국내 시민단체 참여연대 등의 반대에 부딪혔다.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계획이 총수 일가에만 유리하게 짜여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결국 현대차그룹은 그해 5월 지배구조 개편안을 철회했다.
당시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은 ‘구조개편안에 대해 말씀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입장자료를 통해 “이번 방안을 추진하면서 여러 주주분들 및 시장과 소통이 많이 부족했음도 절감했다”며 “현대차그룹은 더욱 심기일전하는 마음으로 여러 의견과 평가들을 전향적으로 수렴해 사업 경쟁력과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지배구조 개편방안을 보완하여 개선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5년 가까이 흐른 현재까지도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은 진척되지 않고 있다.
이렇게 보면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직계 자녀쪽으로 내려온 범현대가 재벌그룹 가운데 오너3세가 이끄는 회사에서는 유일하게 현대그린푸드만 성공적으로 지주회사 전환을 이룬 셈이 됐다.
반면 범현대가 오너2세들은 비교적 손쉽게 지배구조 개편에 성공했다.
▲ (왼쪽부터) 정몽준 HD현대 최대주주, 정몽규 HDC그룹 회장, 정몽원 HL그룹 회장 등 범현대가 '오너2세' 경영인들은 불과 수 년 전에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
HD현대(옛 현대중공업그룹)가 대표적이다.
HD현대는
정주영 창업주의 다섯 번째 아들인
정몽준 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회사로 2016년까지만 하더라도 지주회사 체제가 아니었다.
2016년 11월 현대중공업은 회사를 모두 6개로 쪼개는 지배구조 개편 계획을 밝혔고 이듬해 2월 말 열린 임시주주총회에서 인적분할 안건을 승인받아 지주회사 체제 전환에 성공했다.
정몽준 당시 현대중공업 최대주주는 이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회사 지배력을 확실하게 높이는데 성공했다.
인적분할 전만 하더라도
정몽준 최대주주가 보유하고 있던 현대중공업 주식은 10.15%였지만 지배구조 개편 이후 정 최대주주는 현대중공업그룹의 지주회사 지분을 25.8%까지 확대했다.
HDC그룹(옛 현대산업개발그룹)도 마찬가지다.
HDC그룹은
정주영 창업주의 동생인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에게 넘겨진 기업으로 현재 정세영 명예회장의 아들인
정몽규 HDC그룹 회장 겸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이끌고 있다.
HDC그룹 역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지 오래 되지 않았다.
현대산업개발은 2017년 12월 지주회사 전환 추진을 공식화한 뒤 2018년 5월 현대산업개발 건설사업부문을 인적분할해 HDC현대산업개발을 새로 만들고 존속회사인 HDC를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로 전환했다.
이 행보도 사실상 오너일가의 지배력 확대에 초점을 두고 이뤄진 일이었다.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기 전만 하더라도
정몽규 회장이 보유한 현대산업개발 지분율은 13%에 불과했지만 지배구조를 개편한 뒤 정 회장의 지주회사 지분율은 30%를 넘어섰다.
HD현대나 HDC그룹보다 앞서 일찌감치 지주회사를 만든 HL그룹(옛 한라그룹)도 오너2세 시대에 성공적으로 지주회사 체제 전환에 성공한 케이스다.
HL그룹은
정주영 창업주의 바로 아래 동생인 정인영 명예회장이 맡아왔던 회사로 2000년대부터는 그의 둘째 아들인
정몽원 회장이 이끌고 있다.
한라그룹은 2014년 4월 만도를 한라홀딩스와 만도로 분할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으며 이듬해인 2015년 7월 한라홀딩스를 중심으로 한 수직형 지배구조를 완성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정몽원 회장은 기존 7%대에 불과했던 한라홀딩스 지분율을 23%대까지 끌어올렸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인적분할을 통해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것과 관련한 사회적 시각이 부정적이지는 않았다”며 “하지만 최근 사회적 눈높이가 높아지고 있는 추세라는 점을 감안할 때 앞으로 지주회사로 전환하려는 기업들은 고민이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