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만 TSMC가 독일 반도체공장 설립 계획을 대폭 늦추며 사실상 백지화한 것으로 분석된다. TSMC 반도체 파운드리공장. |
[비즈니스포스트] 대만 TSMC가 독일에 건설을 추진하고 있던 반도체 파운드리공장 투자 계획을 대폭 늦췄다. 자동차용 반도체 분야에서 당분간 수요를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이 반도체 지원법을 통해 삼성전자와 TSMC, 인텔 등 기업의 현지 공장 건설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려 하지만 인프라와 비용 등 측면에서 분명한 약점을 안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21일 대만 경제일보 보도에 따르면 TSMC의 유럽 반도체공장 건설과 관련한 논의는 최소한 2025년까지 구체화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TSMC는 독일 드레스덴에 유럽 첫 반도체공장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두고 현지 당국 관계자들과 꾸준한 논의를 이어 왔다. 2024년 착공을 시작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됐다.
그러나 경제일보에 따르면 TSMC는 이러한 계획을 2년 정도 늦추기로 결정하면서 투자 일정을 일단 백지화한 것으로 파악된다.
자동차용 반도체시장에서 당분간 공급 부족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아졌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로 지목된다.
유럽연합은 코로나19 사태 여파로 전 세계에 대규모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가 발생하자 반도체 지원 법안을 통해 유럽 국가에 반도체 공급망을 자체적으로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자동차가 독일 등 유럽 주요 국가의 핵심 산업에 해당하는 만큼 반도체 공급 차질이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하려는 목적이다.
TSMC도 유럽연합의 적극적 지원 의지에 화답해 독일 반도체공장 건설 계획을 구체화했다. 해당 공장에는 주로 자동차용 반도체를 생산하는 설비를 들이는 방안이 유력했다.
그러나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이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해소되면서 TSMC가 투자 효과를 거두기 다소 어려워질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분석된다.
TSMC가 최근 미국에 들이는 파운드리공장 투자 규모를 기존 120억 달러에서 400억 달러로 늘린 데 이어 일본에 설립하는 반도체공장을 늘리기로 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
시설 투자에 들이는 비용 부담이 커진 것은 물론 유럽 고객사들이 필요로 하는 반도체를 미국이나 일본 공장에서 충분히 생산해 공급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경제일보는 전문가 분석을 인용해 이러한 사업 구조가 TSMC의 미국과 일본 공장 가동률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TSMC의 반도체공장 투자에 큰 기대를 걸고 있던 유럽연합은 미국 정부의 반도체 지원법에 대응해 내놓은 지원 정책의 성과를 거두기 더욱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됐다.
유럽 반도체 지원법은 바이든 정부의 유사한 정책에 맞춰 삼성전자와 인텔, TSMC 등 글로벌 주요 기업의 현지 생산투자를 유치하겠다는 목표를 두고 법제화 절차가 이뤄지고 있다.
인텔이 이미 독일과 이탈리아 등 국가에 투자 계획을 확정한 만큼 TSMC의 자동차용 반도체 생산공장 설립을 확정짓는 일은 중요한 정책적 성과에 해당한다.
TSMC의 독일 반도체공장 설립 백지화는 유럽의 근본적 약점을 보여주는 근거에 해당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럽에 반도체 생산을 위한 인프라 등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다급하게 투자 유치에 나서다 보니 TSMC와 같은 기업도 보수적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경제일보에 따르면 유럽의 반도체 공급망 구축 목표에 치명적 약점은 인력과 전력 및 수자원 부족, 높은 세율 등이 꼽힌다.
반도체기업이 현지 공장을 설립한다고 해도 충분한 인프라가 조성되어있지 않거나 공장에서 근무할 인력을 조달하기 어렵다면 생산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이 반도체 지원법을 통해 보조금과 세제혜택 등을 제공할 가능성이 크지만 기본 세율이 높은 만큼 이는 앞으로 공장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계속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경제일보는 “유럽의 세금 부담은 TSMC 입장에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기요금이 급증하고 있는 점도 리스크로 꼽히고 있다”고 보도했다.
삼성전자도 유럽 반도체공장 설립 가능성을 꾸준히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세금 부담과 인프라 부족 등 TSMC가 고려하는 문제는 삼성전자에도 투자를 망설이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