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조선사들이 시중은행들에서 선수금환급보증(RG)을 보수적으로 발급하면서 경영정상화 작업이 더뎌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사들은 정상적인 수주작업을 위해 RG발급이 꼭 필요하지만 시중은행들은 조선업계의 불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몰라 신규 RG발급을 꺼리고 있다.
금융당국은 시중은행들에 조선사들의 어려운 상황을 이해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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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권오갑 현대중공업 사장,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 박대영 삼성중공업 사장. |
현대중공업의 주채권은행인 KEB하나은행은 13일 오후 시중은행 여신담당자들을 만나 조선사의 RG 발행에 함께 해달라고 요청했다.
RG는 조선사가 선주로부터 수주한 배를 제때 건조하지 못하거나 파산했을 경우 조선사가 선주로부터 받은 선수금을 은행이 대신 물어주는 지급보증을 말한다.
선주들은 통상 조선사에 발급된 RG를 확인한 뒤 본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RG발급이 적기에 이뤄지지 않을 경우 조선사들은 수주에 차질을 빚게 된다.
한영수 삼성증권 연구원은 “은행들이 RG 발행을 꺼려하면서 조선사들이 진행하고 있던 수주 프로젝트들도 최종 계약으로 연결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태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현대중공업이 5월 말에 SKE&S로부터 수주한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2척은 주요은행이 RG발급을 한달 가까이 거부하면서 수주가 무산될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현대중공업은 주채권은행인 하나은행과 수출입은행이 각각 1척씩 RG를 발급해준 덕분에 힘겹게 신규수주를 했다.
성동조선해양도 6월에 그리스 선사로부터 정유운반선 4척을 수주했지만 지금까지 보증을 받지 못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최근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사들이 신규수주를 조금이나마 재개하고 있는 분위기에 시중은행들이 RG발급을 꺼려 찬물을 끼얹을까 우려하고 있다.
박세창 금융감독원 은행담당 부행장은 6월 말 은행 여신담당 부행장들과 만나 “채권은행들이 조선사들에 대한 자금회수에 들어가 기업들이 유동성 위기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며 ‘비 올 때 우산을 뺏지 말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은행들은 수주잔량의 감소 탓에 조선사들의 매출급감이 우려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RG발급을 신중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인다.
은행의 한 관계자는 “채권단의 관리를 받고 있는 조선사들의 경우 추가 부실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신규수주에 문제가 없는지 살피다 보면 RG발급에 더뎌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은행으로부터 RG를 발급받는 것이 계속 난항을 겪을 경우 조선사들은 자구계획안에 담긴 비상계획을 앞당겨 실시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될 가능성이 커질 수도 있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은 올해 수주가 목표치를 밑돌 경우 지구안의 비상계획을 이행하기로 했다. 비상계획에는 현재 조선사들이 추진하고 있는 사업구조·인력 구조조정보다 강도가 높은 방안들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되면 현재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는 조선사들이 더욱 높은 수준의 노조반발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커 경영정상화에 속도를 내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