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대부분의 증권사, 언론의 전망과 달리 2023년에도 반도체 설비투자를 2022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이어가고 인위적인 감산도 진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막대한 적자를 감수하고서라도 경쟁사와 생산량, 기술격차를 벌릴 수 있는 적기라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와 같은 결정은 초격차 달성을 위한 이 회장의 결단으로 읽힌다. 삼성전자는 과거에도 반도체 불황기에 치킨게임(상대방이 망할 때까지 초저가로 제품을 공급하는 전략)을 주도했고 이를 통해 글로벌 1위로 도약했다.
▲ (왼쪽부터)피터 베닝크 ASML CEO,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마틴 반 덴 브링크 ASML CTO(최고기술책임자)가 2022년 6월14일 네덜란드 ASML 본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
또 올해는 삼성전자가 부족했던 반도체 패키징(후공정)이나 차량용 반도체 사업 강화를 위해 인수합병(M&A)도 가시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업계에선 삼성전자 인수합병 후보기업으로 차량용 반도체업체 1~3위 기업인 NXP, 독일 인피니온, 스위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나 미국 자동차 반도체 전문기업 온세미컨덕터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회장이 지난해 12월 올리버 집세 BMW그룹 회장과 만나 차량용 반도체와 관련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는 말도 나온다.
또 최근 공정 미세화가 한계에 이르면서 부각되고 있는 반도체 패키징 기업을 인수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넓은 글로벌 인맥을 활용해 동맹군 확보에도 주력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월1일 퀄컴, 구글과 손잡고 확장현실(XR)기기를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애플의 증강현실(AR)기기 개발에 대응하는 움직임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확장현실기기를 제조를 담당하고 퀄컴은 이에 맞는 반도체를 설계하고 구글은 서비스를 구축해 안드로이드 진형의 힘을 모으겠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모바일 프로세서(AP) 차세대 엑시노스 개발을 위해 AMD, 구글과 협력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구글 안드로이드에 최적화된 AP 개발을 위해 엑시노스 설계에 구글을 참여시키고 그래픽처리장치(GPU)는 AMD가 담당하는 등 각 기업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식이다.
또 퀄컴, ASML 등 삼성전자와 중요한 협력사 최고경영자(CEO)들과도 스킨십을 강화하고 있다.
이 회장은 최근 여러 차례 네덜란드를 방문해 피터 베닝크 ASML CEO와 만나 반도체 장비 공급을 요청했고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는 크리스티아누 아몬 퀄컴 CEO를 윤석열 대통령에게 직접 소개시켜주며 민간 외교관 역할을 맡기도 햇다.
일각에서는 이 회장의 사내이사 복귀설도 거론되고 있다.
회장에 오른 만큼 사내이사 복귀를 통해 삼성전자의 책임경영을 본격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2019년 10월 말 사내이사 임기를 마친 뒤 재선임 절차를 진행하지 않았다.
현재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모두 사내이사에 이름을 올리고 있어 국내 4대 그룹 총수 가운데 이 회장만이 미등기 임원이다.
다만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재판이 남아있는 만큼 사법 리스크가 사라지지 않아 이 회장의 사내이사 복귀가 아직은 이르다는 시각도 있다. 이 회장은 3일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공판에 출석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