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마이크론이 고사양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경쟁사보다 유리한 위치에 놓이고 있다. 마이크론의 GDDR6X 규격 D램 안내. |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마이크론이 그래픽카드 및 자율주행차 등에 쓰이는 고사양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독주체제를 강화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경쟁사를 앞서나가고 있다.
마이크론은 미국 반도체 지원법 시행으로 차세대 메모리반도체 기술 연구개발과 생산 확대에 모두 막대한 정부 지원을 받게 돼 기술 우위를 유지하고 시장 지배력을 높이기에 더욱 유리해졌다.
25일 마이크론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엔비디아가 선보인 최신 그래픽카드 ‘RTX40’ 시리즈의 기술 혁신은 마이크론에서 개발한 2세대 ‘GDDR6X’ 규격 D램을 기반으로 구현됐다.
마이크론은 미국 현지시각으로 21일 엔비디아에서 RTX4090 및 RTX4080를 정식으로 발표하자 설명자료를 내고 2세대 GDDR6X 메모리반도체의 세부 사양과 기술적 특성 등을 상세하게 밝혔다.
RTX40 시리즈의 그래픽 처리와 인공지능 연산 성능이 이전작보다 크게 개선된 것은 1초당 최대 24Gb(기가비트)의 데이터 전송 속도를 지원하는 마이크론의 GDDR6X D램 덕분이라는 것이다.
엔비디아 역시 RTX4090 및 RTX4080 그래픽카드에 마이크론의 고사양 D램을 탑재했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이를 성능 경쟁력에 중요한 요소로 앞세웠다.
GDDR6X D램은 현재 세계 메모리반도체기업들 가운데 유일하게 마이크론만 개발해 양산하고 있는 가장 앞선 규격의 메모리반도체다. 경쟁사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한 단계 낮은 GDDR6 규격 D램 기술만을 보유하고 있다.
기존에는 그래픽카드에만 주로 쓰이던 GDDR 규격의 고사양 D램은 최근 그래픽반도체를 활용하는 신산업 발전에 따라 인공지능, 자율주행, 확장현실 등 분야에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단기간에 많은 양의 데이터를 처리해야 하는 분야에서 일반 규격의 D램을 활용하면 속도가 크게 저하될 수밖에 없어 대량의 데이터 처리를 지원하는 GDDR 메모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마이크론이 이런 상황에서 GDDR6X D램을 앞세워 고사양 메모리반도체 수요를 선점하는 데 성과를 낸다면 관련된 시장 성장에 따른 수혜를 사실상 독점해 시장 지배력을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경쟁사인 마이크론과 고사양 메모리 기술 격차를 좁히기 위해 기술 개발에 주력하며 글로벌 고객사 기반을 확대하는 데도 힘쓰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는 7월에 1초당 최대 24Gb의 데이터 전송 속도를 지원하는 GDDR6 D램을 개발했다고 밝히면서 마이크론의 GDDR6X 메모리의 성능을 추격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양산이 아닌 샘플 생산 단계에 불과해 고객사 확보까지 다소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마이크론이 한국 경쟁사들보다 차세대 메모리 연구개발 및 생산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놓이고 있는 점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추격이 쉽지 않은 이유로 꼽힌다.
미국 정부가 최근 반도체 지원법을 시행하면서 마이크론이 반도체 생산 투자와 기술 개발에 모두 막대한 정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최대 수혜기업으로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 마이크론 GDDR6X D램을 활용하는 슈퍼컴퓨터 시스템 이미지. <마이크론> |
반도체 지원법의 총 예산은 모두 500억 달러(약 71조 원)에 이르는데 이 가운데 280억 달러는 반도체 시설 투자 보조금, 110억 달러는 반도체 연구개발 지원 예산으로 활용된다.
마이크론은 반도체 지원법 시행이 결정되자마자 미국에 대규모 메모리반도체공장 및 연구개발센터를 신설한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바이든 정부와 적극적으로 접촉을 확대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가 반도체 지원 법안을 추진한 궁극적 목표는 반도체 자급체제 구축과 기술 주도권 확보로 꼽힌다. 이 때문에 반도체공장 건설 및 연구개발에 모두 막대한 지원금을 들이는 것이다.
특히 연구개발 분야에서 미국 시스템반도체기업들이 압도적 격차로 세계 선두를 달리는 것과 달리 메모리반도체 분야는 마이크론과 한국 경쟁사들의 기술 차이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결국 반도체 지원법에 포함된 연구개발 지원금이 대부분 마이크론을 대상으로 기술 발전을 돕는 데 쓰이고 이는 결국 GDDR D램 등 고사양 메모리 개발에 활용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GDDR 메모리 기술은 앞으로 인공지능과 자율주행차 등 미국이 세계 기술 패권을 차지하려 하는 신산업 분야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메모리반도체 기술력에서 마이크론과 맞경쟁하는 일은 갈수록 불리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더구나 마이크론이 미국에서 메모리반도체 생산공장을 짓는 데도 지원금을 받는다면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도 한국 경쟁사보다 우위에 놓일 공산이 크다.
전 세계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 업황은 최소한 내년까지 악화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인플레이션과 세계 경제성장률 하락으로 전자제품 수요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수익성이 높고 수요 기반이 탄탄한 GDDR D램 등 고사양 메모리의 경쟁력을 높이는 일은 반도체사업의 실적을 방어하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고사양 D램의 성장 전망과 실적 기여도, 미국 마이크론과 경쟁 등을 의식해 적극적으로 연구개발 역량을 강화하는 데 당분간 힘을 실을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는 공식 뉴스룸을 통해 “GDDR D램의 연간 수요 증가율은 당분간 두자릿수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데이터센터와 자율주행, 전기차 등 분야로 활용이 확대되고 있는 만큼 수요 대응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