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미국에서 시행된 반도체 지원 법안이 실질적으로 미국 반도체산업 발전과 경쟁력 강화 등 목표에 기여하는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증권사 골드만삭스의 전망이 나왔다.
삼성전자와 같은 해외 반도체기업이 미국 정부의 지원을 계기로 시설 투자 기조를 크게 바꾸거나 생산 거점 다변화에 속도를 내는 일도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 미국 반도체 지원법이 미국 반도체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사진은 삼성전자 미국 오스틴 반도체 파운드리공장 내부. |
경제전문지 포천은 7일 “바이든 정부에서 내세운 270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지원 법안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성과지만 실제로 그다지 큰 반향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8월 초 서명한 반도체 지원 법안은 반도체기업들의 미국 내 공장 투자에 700억 달러(약 97조 원) 규모 지원금과 세제혜택 등을 제공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반도체기업들의 기술 연구개발 투자에는 2천억 달러(약 277조 원)에 이르는 예산이 쓰인다.
바이든 정부는 해당 법안을 통해 미국에 반도체 공급망을 확보함으로써 중국과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 승기를 잡으려 하고 있는데 실제 성과를 두고 여전히 의문이 나오고 있다.
포천에 따르면 골드만삭스는 보고서를 내고 “반도체 지원 법안은 매우 실망스러운 효과를 내는 데 그칠 수 있다”며 “지원 규모가 업계 판도를 바꿔내기 충분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미국 정부가 막대한 세금을 들여 반도체기업들의 현지 생산투자를 유도하고 있지만 이는 반도체기업들이 기존에 벌이던 투자 규모와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에 그친다는 것이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반도체 지원법에 따라 제공되는 인센티브는 내년 글로벌 반도체 시설 투자 총액의 3% 수준에 불과할 것으로 추정된다.
더구나 반도체공장을 신설하고 가동하기까지 수 년의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정부 지원 효과가 나타나는 시기도 매우 늦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반도체기업들이 앞으로 수 년 동안 진행할 시설 투자 계획에 미국 정부의 지원이 큰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은 낮다는 의미다.
삼성전자와 TSMC 등 글로벌 주요 반도체기업은 미국 반도체 지원법에 따른 수혜를 기대하고 현지에 대규모 반도체공장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SK하이닉스도 투자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이들 기업이 한국이나 대만이 아닌 미국에서 반도체공장을 운영할 때 드는 비용과 사업 운영 효율성 등을 고려한다면 이를 계기로 시설 투자 기조에 큰 변화가 나타나기는 어렵다.
결국 삼성전자와 같은 기업이 반도체 생산 거점 다변화에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기에는 미국 정부의 금전적 지원이 턱없이 부족한 수준으로 파악된다.
다만 미국 정부에서 반도체 지원법을 처음 추진한 계기가 지난해까지 이어진 글로벌 반도체 공급부족 사태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바이든 정부는 반도체 공급부족 사태 원인이 아시아 국가들에 반도체 수입을 지나치게 의존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미국 내 자체 공급망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해당 법안이 중국과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 미국에 승리를 안겨주고 세계 반도체시장 판도에 변화를 주기는 쉽지 않지만 미국에서 반도체 자급체제를 구축하는 일에는 충분한 효과를 낼 수 있다.
골드만삭스는 중국과 대만, 한국 등 주요 반도체 생산국 사이에서 지정학적 갈등이 본격화된다면 반도체 지원법 시행에 따른 긍정적 성과가 돋보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공급망이 불안정한 상황에 놓였을 때 미국이 이전처럼 손을 놓고 지켜보는 대신 미국 내 반도체공장을 통해 적극적으로 수급을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는 “반도체 지원법은 미국이 소수의 국가에 반도체를 의존하는 상황을 벗어나도록 해 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며 “법안의 효과는 결국 위기 상황에서만 빛을 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상무부는 현지시각으로 6일 반도체 지원법과 관련한 브리핑에서 “반도체 지원법 통과는 미국에 일자리를 창출하고 첨단 기술 생태계를 강화하는 효과도 낼 것”이라며 “이를 통해 국가 안보와 경쟁력을 지켜내겠다”고 밝혔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