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고 경쟁률을 기록하며 성공적으로 시장에 입성하는 기업도 있지만 상장 전부터 투자자들의 냉정한 평가에 직면한 기업들이 적지 않다.
▲ 쏘카가 몸값을 낮춰 코스피시장 상장을 강행한다. 올해 사전 흥행에 실패했으나 상장한 기업들 14곳 가운데 5개 기업이 공모가 대비 수익을 내고 있다.
기업이 IPO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가 예상보다 저조한 흥행 성적표를 받았을 경우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다. 상장을 철회하거나 몸값을 낮춰 상장을 강행하는 것이다.
22일 코스피시장 상장을 앞둔 쏘카는 후자를 택했다.
수요예측에서 100대 1에 미치지 못하는 경쟁률를 거둔 쏘카는 희망 공모가격(3만4천 원~4만5천 원)보다 한참 낮은 2만8천 원으로 공모가를 확정하고 상장을 진행하기로 했다. 상장 이후 실적개선이 가능할 것이란 자신감으로 읽힌다.
증권업계에서는 최근 IPO 시장이 ‘공모확정가 약세’ 흐름에 접어들었다고 보고 있다.
올해 국내외 증시 부진에 SK쉴더스, 원스토어, 현대오일뱅크, CJ올리브영 등 ‘IPO 대어’들의 잇따른 상장 철회 등으로 투자심리가 위축됐다. 자연스럽게 공모 규모도 작아지고 확정 공모가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만큼 ‘가성비 기업’을 가려내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IPO 거품을 걷어내고 투자대상을 찾아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최종경 흥국증권 연구원은 “2020년 역사적 고점 수익률을 기록한 뒤 장기적으로 조정세가 지속되고 있다”며 “2022년 공모주 펀드 설정액이 축소되고 공모확정가 약세로 접어들었는데 오히려 상대적으로 안정된 공모가에 기반한 수익률 반등을 활용할 좋은 기회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쏘카보다 앞서 상장한 기업들 중 사전 흥행에 실패해 쏘카처럼 몸값을 낮춰 상장한 기업들이 많다. 이들 가운데에 상장 후 주가가 오르는 사례도 없지 않다.
올해 기관 수요예측에서 흥행에 실패(수요예측 경쟁률 500대1 미만)했지만 상장한 기업들은 모두 14곳이다. 22일 상장하는 쏘카까지 포함하면 15곳이다.
이 기업들 가운데 19일 종가 기준으로 공모가 대비 수익을 내고 있는 기업은 대명에너지, 청담글로벌, 보로노이, 루닛, 에이프릴바이오(상장일 기준) 등 5곳이다.
19일 종가 기준 대명에너지는 공모가(1만5천 원) 대비 68.00%(1만200원) 높은 2만5200원에 장을 마쳤다. 청담글로벌도 공모가(6천 원)보다 64.50%(3870원) 높은 9870원에, 보로노이는 공모가(4만 원)보다 5.13%(2050원) 오른 4만2050원에 거래를 끝냈다.
루닛은 공모가(3만 원)보다 36.00%(1만800원) 상승한 4만800원에, 에이프릴바이오는 공모가(1만6천 원) 대비 47.19%(7550원) 높은 2만3550원에 장을 닫았다.
현재 공모가 대비 수익을 내고 있는 기업들 대부분은 주가 상승 모멘텀이 비교적 확실하다.
대명에너지는 최근 미국 인플레이션 완화법(IRA)의 수혜를 볼 것으로 기대되는 기업이다. 지난 11일에는 상한가를 기록하며 52주 신고가를 새로 쓰기도 했다.
인플레이션 완화법은 에너지 안보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향후 10년 동안 신재생에너지산업 등에 3690억 달러(약 480조 원)를 투자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부품을 주로 수입하는 미국의 풍력발전 시장이 커지면 한국 기업들에게는 호재로 작용한다.
국내 시장에서도 실적개선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됐다.
안주원 케이프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대명에너지처럼 EPC(설계·조달·시공)부터 발전소 운영까지 사업을 영위하는 경쟁사는 없는 상황이고 상장 이후 공모자금을 기반으로 해외진출도 준비하고 있다”며 "2022년은 실적감소가 예상되지만 2023년은 주요 프로젝트 완료 및 신규 수주 물량 실적 반영으로 매출과 영업이익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보로노이는 인공지능 기반 신약개발업체다. 최근 비소세포폐암 신약 'VRN07'(ORIC-114)의 마일스톤(단계적 기술료)을 수령했다는 소식에 주가가 오름세를 보였다. 수령한 금액은 500만 달러(약 65억 원) 정도다.
보로노이는 신약 후보물질을 전기임상 이전에 기술이전(License-Out)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2020년 10월 미국 나스닥에 상장한 오릭(ORIC)에 기술이전한 신약의 임상이 시작됨에 따라 마일스톤을 수령한 것이다.
보로노이는 최근 보건산업진흥원으로부터 ‘K-블록버스터 미국 진출 지원사업’ 대상에 선정돼 미국 보스턴에 자회사 ‘보로노이USA’를 설립하기도 했다.
김태희 KB증권 연구원은 “보로노이는 약물 설계에 강점이 있는 신약개발업체”라며 “대표 후보물질은 C797S를 포함한 이중 돌연변이 치료제 VRN11인데 임상 전이라 많은 정보가 공개되지는 않았으나 경쟁 약물 대비 우수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루닛은 의료 인공지능(AI) 기업인데 최근 국내 8개 병원에서 진행한 임상시험의 분석 과정에서 루닛의 ‘루닛 스코프’의 효과가 입증됐다는 소식에 주가가 상승했다.
비인두암 환자 36명에게 임상시험을 진행한 뒤 루닛 스코프를 적용해 환자들의 반응을 예측한 결과 치료 효과를 미리 예측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와 함께 루닛의 상반기 매출이 지난해 대비 40억 원 늘어난 54억 원을 기록한 점과 오는 9월9~13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2022년 유럽종양학회(ESMO)에서 루닛 스코프 관련 연구 성과를 담은 연구초록 5편을 발표하기로 한 점도 주가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에이프릴바이오는 최근 유한양행과 SAFA(Serum Albumin Fragment Associated) 플랫폼기술 기반 융합단밸질 기술라이선스 및 공동연구개발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향후 실적개선 기대감이 주가에 반영됐다.
SAFA 플랫폼기술은 자가면역질환 치료제로 활용할 수 있는 몸 안의 재조합 항체조각을 알부민(세포 기본 단백질)과 결합시켜 반감기를 늘려주는 역할을 한다.
두 기업은 앞으로도 SAFA 기술을 활용해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교류를 이어나가기로 했다. 이번 계약과 관련해 금액, 타깃물질 등은 임상 1상 임상시험계획(IND) 승인까지 공개되지 않는다.
에이프릴바이오는 최근 호주 연구윤리위원회에 자가염증질환 치료제 'APB-R3' 제1상 IND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담글로벌은 화장품·미용도구·건강기능식품 등의 판매를 위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이다. 지난해 6월 출범한 자체 해외 직구 플랫폼 바이슈코를 운영하고 있다. 김서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