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바이오사이언스 등 여러 바이오기업이 최근 코로나19 관련 연구에 '슈도바이러스'를 활용하고 있다. |
[비즈니스포스트] ‘슈도바이러스(pseudovirus)’. 코로나19 확산으로 바이러스라는 단어가 흔히 언급되는 요즘에도 대중에겐 낯선 용어다.
하지만 SK바이오사이언스를 비롯한 백신·바이오기업 쪽에서는 오히려 코로나19를 계기로 슈도바이러스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슈도바이러스는 위험한 코로나19 연구를 비교적 안전하게 진행할 수 있게 해주는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19일 특허청에 따르면 SK바이오사이언스는 지난해 10월 ‘사스-코로나바이러스-2의 슈도바이러스 또는 이의 제조 방법’이라는 특허를 출원했다.
슈도바이러스는 다른 말로 '유사 바이러스'라고도 한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슈도바이러스를 ‘스스로 복제할 수 없고 따라서 병원성이 없도록 변이가 가해진 키메릭 바이러스’라고 정의했다.
쉽게 말해 기존 바이러스와 비슷하지만 감염위험이 없기 때문에 실제 바이러스를 대신해 실험에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은 ‘코로나19 과학 리포트 2’를 통해 “살아있는 바이러스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생물안전 3등급 연구시설이 필요하지만 슈도바이러스는 생물안전 2등급 시설에서도 실험이 가능하다”며 “또 슈도바이러스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여러 구성물질 가운데 세포 진입에 관여하는 스파이크 단백질만을 가지고 있어 바이러스의 감염 능력만을 선택적으로 측정하는 데 유리하다”고 말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의 특허도 이와 비슷한 취지를 담고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가 개발한 슈도바이러스는 재조합된 코로나19 바이러스 스파이크 단백질을 포함해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같거나 거의 유사한 면역원성을 나타냄으로써 중화항체가(특정 바이러스를 중화할 수 있는 항체의 양) 측정 등 치료제·백신의 효능을 분석하는 데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것으로 기재됐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이외에 다른 바이러스에도 적용 가능하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다만 특허청은 ‘사스-코로나바이러스-2의 슈도바이러스 또는 이의 제조 방법’에 대한 특허신청을 거절했다. ‘발명의 설명은 통상의 지식을 가진 사람이 이 발명을 쉽게 실시할 수 있을 정도로 기재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후 SK바이오사이언스는 특허 거절에 대한 의견서 또는 보정서를 제출기일까지 내지 않았고 결국 올해 6월 특허 거절이 결정됐다.
세계적으로 보면 슈도바이러스는 1960년대에 동물 감염병인 수포성구내염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처음 개발됐다. 이후 에이즈, 에볼라 등 다양한 질병 분야에서 슈도바이러스가 활용되기 시작했다.
감염성 높은 코로나19가 확산하자 백신, 치료제를 개발하는 연구자들이 슈도바이러스에 눈을 돌린 것은 당연한 일이다.
생명과학 매체 더사이언티스트는 “현재 팬데믹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매우 전염성이 높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결핵, 에볼라 같은 질병을 연구할 때와 동일한 생물안전 가이드라인을 요구하고 있다”며 “과학계는 기존 도구(슈도바이러스)를 코로나19 연구에 창의적으로 적용해 대응했다”고 보도했다.
슈도바이러스는 국내에서도 지속적으로 연구됐으나 본격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역시 코로나19였다. 네이버 뉴스를 기준으로 슈도바이러스라는 용어는 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하던 2020년 7월 처음 등장했다.
현재 SK바이오사이언스 이외에도 셀트리온, 제넥신, 셀리드, 휴마시스 등 다양한 바이오기업과 진단기업이 코로나19 관련 연구에 슈도바이러스를 활용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제약바이오기업들은 규제당국에서도 슈도바이러스 활용 범위를 더욱 넓혀주기를 원하고 있다.
국내 코로나19 백신 개발 기업들은 7월 국가신약개발재단 산하 코로나19 치료제·백신·신약개발사업단이 개최한 간담회에 참석해 백신 중화항체가를 평가할 때 슈도바이러스를 사용하는 방안을 찾아달라고 요청했다.
현재 한국은 감염자들로부터 분리된 생바이러스를 이용한 중화항체가 분석만을 인정하고 있다. 다만 이는 국립보건연구원, 국제백신연구소 등 전문시설에서만 가능한 일이라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