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성동 국민의힘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7월26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대정부질문 도중 문자대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권성동 국민의힘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와 윤석열 대통령 사이 주고받은 메시지가 정치권을 발칵 뒤집어놨다.
권 원내대표가 머리를 숙이며 수습에 나섰으나 흔들리는 당내 입지를 회복하기 위해 일부러 대화를 노출했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과거부터 정치인들이 전략적으로 휴대전화 화면 등을 노출시켜 국면 전환을 꾀한 사례가 여럿 있기 때문이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27일 국회에서 기자들을 만나 윤석열 대통령과 문자 메시지 대화 내용이 보도된 데 대해 "사적 문자 내용이 저의 부주의로 유출·공개돼 국민 여러분께 심려 끼쳐드린 점 당원과 국민 여러분에게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서 대정부 질문이 진행 중이던 전날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권 원내대표가 윤 대통령과 텔레그램 메시지를 주고받는 장면이 언론 카메라에 포착됐다.
권 원내대표는 자신의 부주의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기자들이 망원렌즈로 의원들의 휴대전화 화면을 계속 지켜보고 있다가 사진을 찍는다는 것을 권 원내대표가 모를 리 없는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주고받은 메시지가 공개된 것이 진짜 실수냐는 물음이 나온다.
일반적으로 국회 본회의장 좌석은 초선 의원들이 맨 앞줄에 앉으며 선수가 쌓일수록 뒷줄로 배치된다. 권 원내대표의 자리는 맨 뒷줄로 기자들이 있는 2층 방청석 바로 아래쪽이었다.
더구나 권 원내대표의 휴대전화 화면이 카메라에 잡혀 논란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권 원내대표는 2014년 국정감사 때 휴대전화로 비니키를 입은 여성사진을 보고 있는 모습이 포착돼 곤혹을 치른바 있다. 당시 권 원내대표는 "다른 의원의 질의 도중 환경노동위원회 관련 기사를 검색하다가 잘못 눌러져 공교롭게 비키니 여성 사진이 뜬 것"이라며 해명했다.
4선 의원인 권 원내대표가 '실수'로 이전과 같은 방식에 당했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이에 정치권 일각에선 권 원내대표가 의도적으로 휴대전화 화면을 노출시켰다는 주장이 나온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이날 BBS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 인터뷰에 출연해 "상당히 의도가 있다고 본다"며 "권성동 대행이 지금 당내에서 여러 가지로 공격을 받았기 때문에 대통령과 돈독한 관계를 과시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준석 대표 징계 이후 당의 지도체제는 권 원내대표의 직무대행 원톱체제로 굳어졌지만 권 원내대표는 대통령실 사적채용 논란 등에 휩싸이며 당 안팎에서 비판을 받았다.
이 때문에 권 원내대표를 향한 국민여론도 호의적이지 않다.
이날 데이터리서치가 내놓은 여론조사 결과에서 국민의힘 대표를 다시 뽑게 된다면 누구를 지지하겠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2.5%만이 권 원내대표를 선택했다. 이준석 대표(21.4%), 안철수 의원(21.0%) 뿐만 아니라 나경원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14.8%)에게도 밀렸다. 김기현 전 원내대표는 5.9%, 장제원 의원은 2.8%의 지지를 받았다. 자세한 내용은 데이터리서치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이준석 대표의 성상납 의혹 수사 결과에 따라 조기 전당대회가 열릴 가능성이 남아 있는 점도 권 원내대표가 전략적으로 문자를 노출시켰다는 분석에 힘을 싣는다.
차기 총선 공천권이 걸려있는 조기 전당대회가 치러지면 권 원내대표가 당대표에 출마하기 위해선 원내대표를 그만둬야 한다. 임기를 다하지 않는데 비판 여론이 나올 수 있는 만큼 윤심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려 명분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권 원내대표가 전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해명 글에는 '윤심'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에둘러 밝힌 것으로 읽히는 부분이 있다.
그는 페이스북에 '내부총질'이란 말에 대해 해명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당대표 직무대행까지 맡으며 원구성에 매진해온 저를 위로하면서 고마운 마음도 전하려 일부에서 회자되는 표현을 사용하신 것으로 생각한다"고 적었다.
권 원내대표가 윤석열 대통령과 오전 11시경 메시지를 주고받고 윤 대통령이 오후 1시쯤 마지막 답글을 달은 상황에서 권 원내내표가 뒤늦게 오후 4시 무렵 메시지를 작성하려 한 점도 주목을 받는다. 화면 노출을 위해 의도적으로 휴대폰을 이용했다는 의혹이 나오는 대목이다.
반면 권 원내대표의 '진짜' 실수라는 시선도 존재한다.
윤 대통령이 쓴 내부총질이라는 표현의 강도가 높은 만큼 공개됐을 때 파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두 사람 사이 주고 받은 메시지를 공개했을 때 윤 대통령의 신뢰를 해칠 수 있는 점도 무시할 수가 없다.
권 원내대표가 메시지 입력창에 '강기훈과 함께'라고 글을 쓰고 있었던 것을 미뤄볼 때 윤 대통령에게 보낼 메시지를 작성하다 깜빡 주변 경계를 하지 않았을 것이란 추측이 나온다.
하지만 과거에도 정치인이 전략적으로 휴대폰 화면을 노출했다는 의혹을 받는 일이 적지 않았다.
2016년 11월 당시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 겸 비대위원장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자신의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보다가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9월 보냈던 문자 내용이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됐다.
문자메시지에서 이정현 대표는 "장관님 정현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것 아시죠. 백번 이해하려고 해도 이렇게 반복해서 비서 운운하시니까 정말 속이 상합니다. 어르신이잖아요. 정현이가 죽을 때까지 존경하고 사랑하게 해주십시오"라며 "충성충성충성 장관님 사랑합니다. 충성"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이정현 대표가 야권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자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이정현 전 대표를 망신주고 압박하기 위해 일부러 노출시켰다는 분석이 나왔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주변 인사로부터 받은 메시지가 공개된 적도 있다. 2015년 10월 공천권을 둘러싼 청와대와 김 전 대표 사이 갈등이 잠시 소강국면에 접어들었을 때 비박계의 세결집 등 향후 전략을 담고 있는 글이 기자들의 카메라에 포착된 것이다. 이를 놓고 김 전 대표가 비박 세력을 결집해 친박계를 압박하려 한다는 해석이 나왔다.
김무성 전 대표는 휴대전화 외에도 2015년 1월 '정윤회 문건파동'과 관련한 내용이 적힌 수첩을 넘기는 모습이 찍히기도 했다. 김 전 대표는 의도된 장면이 아니라고 설명했지만 마찬가지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밖에 2020년 1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휘감독권의 적절한 행사를 위해 징계 관련 법령 찾아"라고 법무부 간부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장면이 포착된 적도 있다.
추미애 장관이 대검 참모진을 대거 한직으로 발령하는 인사를 내는 과정에서 윤석열 검찰총장과 갈등이 불거진 상황에서 추미애 장관이 윤석열 총장을 압박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노출시켰다는 분석이 존재한다. 김남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