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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

폭이 넓은 YS의 정치적 아들 [2016년]
조은진 기자 johnjini@businesspost.co.kr 2016-02-05 09:2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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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div align=center><table align="left"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style="width:320px"> <tbody> <tr> <td width='10'> </td> <td><img alt="[Who Is ?]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 class='lazyload' data-src="https://www.businesspost.co.kr/news/photo/201602/23230_34468_2830.jpg" /></td> <td width='10'> </td> </tr> <tr> <td class='view_r_caption align=' colspan='3'>▲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td> </tr> </tbody> </table></div> <br /><br /> <br /> 김무성은 1951년 9월20일 부산에서 태어났다.<br /> <br /> 중동고등학교를 거쳐 한양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br /> <br /> 동해제강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해 32세의 나이에 삼동산업의 전무가 됐다.<br /> <br /> 통일민주당의 창당 발기인으로 참여하면서 정계에 입문해 상도동계로 분류됐다. 대통령 선거대책본부 재정국장으로 활동했으며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창당된 이후 민주자유당 의사국장과 의원국장을 지냈다.<br /> <br />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행정실장과 대통령 민정수석 비서관을 역임했으며 내무부 차관으로 임명됐다.<br /> <br /> 신한국당 소속으로 부산 남구 을에서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5선 의원이 됐다.<br /> <br /> 한나라당 출범에 참여했고 새누리당에 이르기까지 원내대표와 사무총장, 최고위원 등 주요 요직을 거쳤다.<br /> <br /> 제18대 총선에서 친박으로 분류돼 공천에 탈락하자 무소속으로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한나라당에 복당했다.<br /> <br /> 2012년 총선에 불출마하고 박근혜 후보 선거캠프를 이끄는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다. 다음해 보궐선거에서 부산 영도구 국회의원에 당선돼 5선 의원이 됐다.<br /> <br /> 새누리당 대표를 맡다가 2016년 4월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 석권에 실패한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부산광역시 중구영도구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br /> <br /> 별명이 &lsquo;무대&rsquo;(무성대장)일 만큼 시원시원한 성격을 갖고 있지만 상당히 말실수가 잦다.<br /> <br />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br /> <br /> 정치권에서 선 굵은 정치인으로 통한다. 특히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랑과 신뢰는 각별했다. 2008년 총선 당시 김 전 대통령이 김무성의 선거사무실을 방문해 &ldquo;전국적 인물이 된 김 의원은 앞으로 대통령도 할 수 있는 사람&rdquo;이라며 김무성의 지지를 호소했다.<br /> <br /> 한때 대표적인 &#39;친박&#39;으로 분류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이던 시절 당 사무총장을 맡았고 2007년 대선 경선 때 &#39;친박계 좌장&#39;으로 불렸지만 2014년 전당대회를 앞두고 &ldquo;청와대에 할 말은 하겠다&rdquo;며 비박계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기도 했다.<br /> <br /> 2010년 정부의 세종시 수정 추진을 놓고 박근혜 대통령과 입장 차를 보이면서 한때 &lsquo;탈박&rsquo;의 길을 걸었다. 이때 김무성은 원내대표까지 오르면서 비박계 인사들과 두터운 신분을 쌓고 &#39;화합형 리더&#39;의 이미지를 얻었다.<br /> <br /> 당 일각에서 &#39;보수우파&#39;를 자처하는 김무성의 강한 보수성향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김무성은 앞서 제주해군기지 반대 활동가들을 &#39;종북세력&#39; &#39;김정일의 꼭두각시&#39; 등으로 지칭해 구설수에 올랐다.<br /> <br /> 경제관 역시 정통보수에 가까워 경제민주화 추세와 거리가 있다는 분석이다.<br /> <br /> 회의나 강연에서 수치를 제시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김무성은 비서실에 &ldquo;주요 현안에 대한 발언 자료를 준비할 때 반드시 통계를 첨부하라&rdquo;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어 워싱턴의 한국전쟁 참전기념비를 찾아 &ldquo;6.25전쟁 때 미군이 참전해 3만6940명이 전사하고 9만2134명이 부상하고 8157명이 실종 상태라며 메모지를 보지 않고 줄줄이 외워 말하는 식이다.<br /> <br /> 김무성의 별명은 &lsquo;무대&rsquo;(무성대장)다. 통 큰 보스라는 의미를 함축한 별명이다. 시원한 성격 때문에 말을 거침없이 내뱉어 말실수가 잦다. 이를 놓고 김무성의 하나의 스타일로 해석하는 시선이 있는 반면 반복되는 말실수는 그의 자질문제라는 비판도 존재한다.<br /> <br />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br /> <br /> 1976년 동해제강 전무이사를 지낸 뒤 1982년 삼동산업 대표이사를 역임했다.<br /> <br /> 1985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민주화추진협의회에 참여해 특별위원회 부위원장에 선임됐다.<br /> <br /> 1987년 통일민주당 제13대 대통령 선거대책본부 재정국장으로 활동했으며 통일민주당 총무국장, 기획조정실 차장, 국회행정실장을 역임했다.<br /> <br />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출범하자 김영삼 전 대통령을 따라 민자당에 합류해 의사국장, 의원국장을 지냈다.<br /> <br /> 1993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행정실장, 대통령 민정수석 비서관을 맡았고 1994년 제48대 내무부 차관이 됐다.<br /> <br /> 1996년 5월 신한국당 소속으로 부산 남구을에서 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br /> <br /> 한나라당 출범에 참여했으며 당내에서 원내 수석부총무와 한나라당 총재 비서실장을 담당했다.<br /> <br /> 2004년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위원장이 됐으며 2005년 민주화추진협의회 회장이 됐다.<br /> <br /> 2005년 한나라당 사무총장에 선출됐고 2007년 11월 한나라당 최고위원회 위원이 됐다.<br /> <br /> 2008년 18대 총선 공천에서 친박계에 대한 &lsquo;보복공천&rsquo;이 이뤄지자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무소속으로 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7월 복당했다.<br /> <br /> 2010년 5월부터 1년간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지냈다.<br /> <br /> 2012년 제19대 총선에 불출마하고 박근혜 후보 선거 캠프를 이끄는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다. 같은해 한나라당의 당명이 새누리당으로 바뀌었다.<br /> <br /> 2013년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어 5선 의원이 됐다.<br /> <br /> 2014년 7월14일 제3차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대표로 선출됐다.<br /> <br /> 2016년 4월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자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20대 총선에서 부산광역시 중구영도구에서 의원으로 당선됐다.<br /> <br /> ◆ 학력<br /> <br /> 1964년 부산화랑국민학교를 졸업했다.<br /> <br /> 1967년 경남중학교를 졸업하고 1970년 중동고등학교를 졸업했다.<br /> <br /> 1975년 한양대학교 경영학과를 학사로 졸업했다.<br /> <br /> 1999년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 최고위정책과정을 수료했다.<br /> <br /> 2003년 부경대학교에서 명예정치학 박사와 2006년 한양대학교 명예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br /> <br /> 2015년 동국대학교와 한국해양대학교에서 각각 명예정치학과 명예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br /> <br /> ◆ 가족관계<br /> <br /> 김용주 전남방직주식회사 창업주가 부친이다. 김용주 창업주는 민주당 원내총무와 초대 주일공사를 지냈다.<br /> <br /> 4남1녀 가운데 3남으로 자랐다.<br /> <br /> 친누나 김문희 용문학원 재단 이사장은 현대증권과 현대상선의 주주다. 학교법인인 용문학원 재단은 서울 성북구 용문중학교와 용문고등학교를 운영하고 있다.<br /> <br /> 김창성 전 전남방직주식회사 회장 및 한국경영자총협회 명예회장이 형이다.<br /> <br /> 현영원 전 현대상선 회장이 매형이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외조카로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이 조카사위다.<br /> <br /> 부인 최양옥씨와 사이에 1남2녀를 뒀다. 장남 김종민씨는 고윤이라는 가명을 써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lt;아이리스2&gt;, &lt;호텔 킹&gt; 등에 출연했다.<br /> <br /> 최치환 전 경향신문 사장이 장인이다. 그는 박정희 정권에서 국회의원을 지냈고 그 뒤 삼성그룹 고문을 맡기도 했다.<br /> <br /> ◆ 상훈<br /> <br /> 1996년 황조근정훈장을 수여받았다.<br /> <br /> 2007년 코리아 베스트드레서 스완어워즈 정치부문에서 수상했다.<br /> <br /> 2011년 코리아정책상과 대한민국을 빛낸 21세기 한국인상을 받았다.<br /> <br /> 2014년 대한민국 의정대상과 대한민국 유권자 대상을 받았다.<br /> <br /> ◆ 상훈<br /> <br /> 1996년 황조근정훈장을 수여받았다.<br /> <br /> 2007년 코리아 베스트드레서 스완어워즈 정치부문에서 수상했다.<br /> <br /> 2011년 코리아정책상과 대한민국을 빛낸 21세기 한국인상을 받았다.<br /> <br /> 2014년 대한민국 의정대상과 대한민국 유권자 대상을 받았다.<br /> <br />
어록
<br /> <br /> &ldquo;독일은 출산율이 1.34명까지 내려가서 이민자들을 대거 받았다. 그랬더니 터키에서 몇 년 만에 400만 명이 몰려와 문을 닫았다. 우리는 조선족이 있어 문화쇼크를 줄일 수 있다. 조선족을 대거 받아들여야 한다.&rdquo; (2016/01/30 저출산 대책특위 회의 겸 당정 협의회에서)<br /> <br /> &ldquo;권력 주변에 수준낮은 사람들은 완장을 차려 한다. 그들은 완장을 차고 권력자 이미지를 손상시킨다. 역대 정권마다 있었던 일인데 그게 대통령한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rdquo; (2016/01/26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br /> <br /> &ldquo;시민의 소중한 세금을 시장들이 개인적인 인기를 얻기 위해 남용하는 포퓰리즘이야 말로 악마의 속삭임이자 달콤한 독약이다.&rdquo; (2016/01/25 이재명 성남시장의 청년배당 정책과 박원순 서울시장의 청년지원금 정책에 대해)<br /> <br /> &ldquo;진박 논란은 그만큼 정치수준이 낮다는 것.&rdquo; &ldquo;너무 쉽게 국회의원에 당선된 분들이 충실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는 게 사실이다.&rdquo; (2016/01/18 2016 신년회견에서 대구경북의 &lsquo;진박&rsquo;(진실한 사람+친박) 후보 논란에 대해)<br /> <br /> &ldquo;난 박근혜 대통령 선거 총책임자였다. 나를 &lsquo;비박&rsquo;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옳지 않다.&rdquo; (2016/01/18 2016 신년회견에서)<br /> <br /> &quot;&#39;안철수 신당&#39;의 등장은 표면적으로는 야당(野黨) 분열이지만 여당(與黨)에 대한 경고의 의미도 담고 있다&quot; &quot;(다만) 신당이 지금의 야당처럼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게 되면 결국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할 것&quot; (15/01/04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br /> <br /> &ldquo;국민 앞에 석고대죄하는 마음 자세로 인사회를 시작한다.&rdquo;며 &ldquo;지난해 여러 개혁과제를 추진했지만 국민 눈높이의 성과를 내지 못했고 국민이 목마르게 기다리는 노동개혁 5개 법안과 경제활성화법안들을 처리하지 못했다.&rdquo; &ldquo;입법 미비로 오늘(1월 1일)부터 선거구 무효라는 초유의 비상상황에 직면하게 돼 죄인 된 심정으로 국민께 사과드린.다&rdquo; (2016/01/01 새누리당 신년인사회에서)<br /> <br /> &ldquo;오픈프라이머리를 흔들려는 세력들이 자꾸 말을 만들어내고 있다.&rdquo; &ldquo;저는 정치생명을 걸고 오픈프라이머리를 관철시키겠다. 이것이 우리 정치개혁의 결정판이다.&rdquo; (2015/08/20 오픈프라이머리와 관련해)<br /> <br /> &ldquo;나라를 위해서 표를 생각하지 않고 노동시장 개혁을 추진하겠다.&rdquo; &ldquo;공무원연금 개혁은 완성했고 이제 노동개혁 부문을 우리가 중점 개혁 목표로 잡아 추진해야 한다.&rdquo; (2015/07/18 &lsquo;이승만 전 대통령 50주기 추모식&rsquo;에서)<br /> <br /> &ldquo;당청은 한몸일 수밖에 없고 이 정권은 박근혜정권이자 새누리당 정권&rdquo; &ldquo;당은 대통령이 하는 일을 뒷받침하고 베이스가 돼야 한다. 다만 과거처럼 대통령이 한마디한다고 해서 모든 걸 다 따라가는 상황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rdquo; &ldquo;안 만나다가도 일이 생기면 만나 상의해 협조하는 것이 당정처이다. 의견이 좀 다르다고 회의를 안 한다고 하면 잘못된 일이다.&rdquo; (2015/06/03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초청 학생 대상 특강에서)<br /> <br /> &ldquo;대통령께서 공무원연금 개혁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온다고 했는데 저는 이 문제만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터질 듯이 답답하다.&rdquo; &ldquo;어찌해서 하나마나한 맹탕 개혁, 졸속, 비열한 거래 등 이런 말로 매도당하면서 이렇게 온통 오물을 뒤집어써야 하는지 참 기가 막힌 심정이다.&rdquo; (2015/05/14 노인복지 정책모임인 &lsquo;퓨처라이프 포럼&rsquo;에서)<br /> <br /> &ldquo;전 세계적으로 핵실험을 2~3번 하면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게 돼 있다. 문제 발언이긴 하지만 현재도 북한에서 우리 남쪽을 향해 핵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rdquo; &ldquo;사드는 고고도 미사일이다. 그래서 북한에서 만약 쏘아 올렸을 때 약 150km 상공에서 쏴서 요격할 수 있는 방어체제를 갖춰야 한다는 것은 기본상식&rdquo;(2015/03/24 부산 해양대학교에서 열린 &lsquo;청춘무대 김무성 토크쇼&rsquo;에서 사드 배치 문제에 관해)<br /> <br /> &ldquo;당시 소장이던 박 전 대통령이 5.16혁명을 일으키지 않았으면 대한민국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해 보라.&rdquo; &quot;박정희 전 대통령은 우리나라가 적화통일될 가능성이 있음을 알고 무능하고 부패한 우리 정치권을 뒤집어엎어 혁명을 했다.&quot; &quot;물론 우리 국민이 좀 억압을 당한 것은 잘못된 일이지만 우리 경제가 북한경제를 따라잡아서 오늘날 이러한 결과가 나왔다.&quot; (2014/02/04 서울에서 열린 전국포럼연합 주체 토론회 강연에서)<br /> <br /> &ldquo;자녀 하나 낳은 분들 반성하셔야 한다.&rdquo; &ldquo;우리 모두 이상화, 김연아 같은 딸을 낳아야 한다.&rdquo; (2014/02/12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2013년 출산율이 1.18명으로 하락한 점을 언급하며)<br /> <br /> &ldquo;교육부의 엄격한 검정을 거쳐 통과된 역사교과서를 전교조의 테러에 의해 채택되지 않는 나라는 자유대한민국으로 볼 수 없다.&rdquo; (2014/01/06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보수성향 시민사회단체 합동 신년회에서)<br /> <br /> &quot;임을 위한 행진곡은 저 자신도 과거 민주화 투쟁 시절 하루에도 몇 번씩 불렀던 민주화 투쟁 주제가였다.&quot; &quot;5.18 기념 행사용 별도의 노래를 만들기 위한 예산을 책정했다는데 아까운 예산을 낭비하지 말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 주제곡으로 선정해 유가족과 광주 시민들이 원하는 대로 해줘야 한다.&quot; (2013/05/08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국가보훈처의 &lsquo;임을 위한 행진곡&rsquo; 5&bull;18기념식 주제곡 선정 배제 논란에 대해)<br /> <br /> &ldquo;종북주의자 30여 명의 반대 데모 때문에 중요 국책사업이 중단되고 있고, 현재 강정마을에서 공사를 제지하는 세력은 사실상 북한 김정일 정권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는 종북세력이 대부분이다.&rdquo; &ldquo;이들이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것은 결국 북한에 불리한 것은 하지 말자는 종북적 행태다.&rdquo; (2011/07/27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사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반대에 대해)<br /> <br /> &quot;내가 사랑하고 헌신했던 한나라당이 여기까지 온 데 비통한 심정을 금치 못한다. 오늘 나는 마음은 한나라당에 두고 몸만 당을 떠난다.&rdquo; &ldquo;이런 무원칙한 공천을 일삼은 세력이 한나라당을 망치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게 반드시 선거에서 이기고 돌아와 한나라당을 국민의 사랑을 받는 당으로 다시 만들겠다.&quot; (2008/03/14 기자회견에서 &lsquo;한나라당 공천 청와대 개입&rsquo; 논란과 관련해)<br /> <br /> ◆ 평가<br /> <br /> 정치권에서 선 굵은 정치인으로 통한다. 특히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랑과 신뢰는 각별했다. 2008년 총선 당시 김 전 대통령이 김무성의 선거사무실을 방문해 &ldquo;전국적 인물이 된 김 의원은 앞으로 대통령도 할 수 있는 사람&rdquo;이라며 김무성의 지지를 호소했다.<br /> <br /> 한때 대표적인 &#39;친박&#39;으로 분류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이던 시절 당 사무총장을 맡았고 2007년 대선 경선 때 &#39;친박계 좌장&#39;으로 불렸지만 2014년 전당대회를 앞두고 &ldquo;청와대에 할 말은 하겠다&rdquo;며 비박계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기도 했다.<br /> <br /> 2010년 정부의 세종시 수정 추진을 놓고 박근혜 대통령과 입장 차를 보이면서 한때 &lsquo;탈박&rsquo;의 길을 걸었다. 이때 김무성은 원내대표까지 오르면서 비박계 인사들과 두터운 신분을 쌓고 &#39;화합형 리더&#39;의 이미지를 얻었다.<br /> <br /> 당 일각에서 &#39;보수우파&#39;를 자처하는 김무성의 강한 보수성향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김무성은 앞서 제주해군기지 반대 활동가들을 &#39;종북세력&#39; &#39;김정일의 꼭두각시&#39; 등으로 지칭해 구설수에 올랐다.<br /> <br /> 경제관 역시 정통보수에 가까워 경제민주화 추세와 거리가 있다는 분석이다.<br /> <br /> 회의나 강연에서 수치를 제시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김무성은 비서실에 &ldquo;주요 현안에 대한 발언 자료를 준비할 때 반드시 통계를 첨부하라&rdquo;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어 워싱턴의 한국전쟁 참전기념비를 찾아 &ldquo;6.25전쟁 때 미군이 참전해 3만6940명이 전사하고 9만2134명이 부상하고 8157명이 실종 상태라며 메모지를 보지 않고 줄줄이 외워 말하는 식이다.<br /> <br /> 김무성의 별명은 &lsquo;무대&rsquo;(무성대장)다. 통 큰 보스라는 의미를 함축한 별명이다. 시원한 성격 때문에 말을 거침없이 내뱉어 말실수가 잦다. 이를 놓고 김무성의 하나의 스타일로 해석하는 시선이 있는 반면 반복되는 말실수는 그의 자질문제라는 비판도 존재한다.<br /> <br /> ◆ 기타<br /> <br /> 1985년에 민족문제연구소의 이사로 재직했다. 그러나 이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문제를 연구한 임종국의 유지를 기리는 민족문제연구소와 다른 곳이다. 후자는 1991년 반민족문제연구소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어 후에 같은 이름으로 개명했다.<br /> <br /> 2013년 9월부터 12월까지 좌편향 역사교과서를 바로잡자는 취지의 새누리당 내 국회의원모임 &#39;근현대사 역사교실&#39;을 개설해 직접 강연에 나섰다. 김무성은 강연에서 역사교육체제가 좌편향돼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br /> <br /> &quot;임을 위한 행진곡은 과거 민주화 투쟁시절 하루에도 몇 번씩 불렀던 주제가였다&quot;라며 자신의 민주화 투쟁경력을 자랑했다.<br /> <br />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국회의&lsquo; 화환 문화&rsquo;를 지적했다. 그는 2015년 10월 한 행사에서 축사에 앞서 &ldquo;의원회에 가면 하루에도 한 대여섯 개씩 세미나가 열리는데 국회의원이 하는 세미나에 화환이 왜 와야 되느냐. 저런 것들 다 필요없는 거다&rdquo;며 문밖 화환들을 손으로 가리켰다.<br /> <br /> 또다른 행사에서 화환 행렬을 보다 최경환 전 부총리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이름으로 보내진 화환을 가리키며 &ldquo;모두 국민 세금 아이가&rdquo;라고 해 주목받았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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