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배송 시장에서 철수하는 기업도 있지만 새 기회를 엿보고 뛰어드는 기업도 있다. 사진은 쿠팡 배송차량이 제주도 부속섬 우도를 달리는 모습. |
[비즈니스포스트] 누군가는 포기하지만 누군가는 기회를 본다. 새벽배송 시장 얘기다.
롯데그룹과 BGF 등 유통에서 잔뼈가 굵은 기업들조차 새벽배송 사업에서 줄줄이 손을 뗐다. 그만큼 이익을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빈자리를 노리는 기업들도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적자를 면하지 못하는 현실을 눈앞에서 목격하면서도 이들이 새벽배송 시장에 뛰어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27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최근 새벽배송 시장이 격변기에 접어들고 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의욕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출혈경쟁을 감당하지 못해 전략을 선회한 기업만 올해 4곳이나 된다.
밀키트 1위 기업인 프레시지가 26일 새벽배송을 중단했으며 GS리테일이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 GS프레시몰도 31일부터 새벽배송을 진행하지 않는다.
앞서 롯데그룹의 통합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롯데온, 신선식품 새벽배송을 전문으로 했던 BGF 자회사 헬로네이처도 4월에 새벽배송 사업에서 철수했다.
이런 움직임만 보면 새벽배송 시장이 옥석 가리기에 들어간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쿠팡과 마켓컬리, SSG닷컴-G마켓, 네이버 등 새벽배송 노하우가 많거나 자본력이 풍부한 기업을 중심으로 새벽배송 시장이 재편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시장에서 두 손을 들고 나간 기업보다 뛰어들겠다고 나서는 기업들이 많다는 점에서는 다른 시각도 분명히 존재한다. 새벽배송 시장이 이른바 대격변기를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G마켓은 새벽배송 서비스를 올해 3월부터 본격화했다. 현재 서울을 중심으로 경기도 일부 지역까지가 서비스 가능 권역이다.
4월에는 티몬, 이랜드리테일이 새벽배송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들의 서비스 가능 범위는 서울 전역과 수도권 일부, 아산시와 천안시 등 충청권 일부를 포함한다.
코스트코는 새벽배송 3개월차 새내기다. 지난 5월에 진입했다. ‘얼리모닝 딜리버리’라는 이름으로 새벽배송을 진행하고 있는데 최소 주문 금액을 5만 원으로 정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대부분의 새벽배송 기업들은 최소 주문 금액을 4만 원에 맞춰놓고 있다.
네이버 역시 새벽배송을 준비하고 있다. 5월에 일부 품목의 당일배송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조만간 새벽배송을 본격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규모를 더 키우는 회사도 있다.
이커머스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흑자를 내고 있는 기업으로 유명한 오아시스는 26일 경기도 의왕시에서 대규모 풀필먼트센터를 가동하기 시작하며 새벽배송 규모를 확대한다고 알렸다.
이들 기업의 특징은 오아시스를 제외하면 모두 외부 업체와 협력한다는 것이다.
G마켓은 유통물류 브랜드 '부릉'을 운영하는 물류기업 메쉬코리아와 손을 잡았으며 티몬과 이랜드리테일도 풀필먼트 전문기업 팀프레시와 협력한다. 코스트코와 네이버는 모두 CJ대한통운과 협업하고 있다.
G마켓 관계자는 “새벽배송을 진행하는 이유는 다양한 서비스를 원하는 고객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며 “서비스를 내재화하지 않고 외부 업체에 일종의 ‘아웃소싱’을 하면서 리스크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새벽배송에 나선 것이다”고 말했다.
티몬 관계자도 “새벽배송에서 적자를 내는 기업들이 많지만 우리는 그들과 사업모델이 다르다”며 “외부 업체에 새벽배송을 대행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투자비용을 적게 들이면서도 판매자들이 티몬에 입점하게끔 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새벽배송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쿠팡과 마켓컬리는 모두 서비스를 내재화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물류센터 설치부터 시작해 인력 고용과 배송까지 모두 직접 담당하는 방식이다.
물론 여기에는 충분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때까지는 적자를 감수해야 한다는 리스크가 존재한다. 두 회사가 모두 천문학적 적자를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의미한 수준의 총거래액을 확보해야만 손익분기점을 넘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제 막 새벽배송을 시작하는 기업들로서는 이런 리스크를 감당하기 힘들다. 막대한 투자를 하면 이익으로 돌아온다고 장담하기도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 물류기업과의 협업은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 새벽배송 물류 운영을 놓고 어떻게 해야 흑자를 낼 수 있는지 해답을 알고 있는 회사는 없는 상황이다. 사진은 SSG닷컴의 물류센터 내부 모습. |
새벽배송에서 어떻게 해야 흑자를 낼 수 있는지 아직 명확한 정답이 없다는 점도 많은 후발주자들이 시장에 뛰어드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후발주자라도 획기적인 방안을 찾아낼 수 있다면 단숨에 선두권으로 뛰어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새벽배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충분한 주문량이다. 하지만 주문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방법론은 아직까지 나와 있지 않다.
쿠팡은 여전히 많은 물류센터를 노동집약적으로 운영한다. 자동화 설비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쿠팡이 자체 개발한 소프트웨어가 인력들의 이동 동선을 최적화해 고객의 주문을 처리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반면 SSG닷컴이 운영하는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 네오003은 아시아에서 가장 자동화된 첨단 설비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최첨단 시설을 자랑한다. 주문에서 배송까지 이어지는 과정의 80%를 자동화 시설이 처리할 정도다.
그러나 두 회사 모두 아직 이익은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자동화와 노동력의 결합이 어느 수준에서 가장 효과적인지를 놓고서는 어떤 기업도 정답을 찾지 못했다는 얘기다.
다른 이커머스기업과 비교해 매출 규모가 절대적으로 작은 오아시스가 충분한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흑자를 낼 수 있는 것만 봐도 규모의 경제, 자동화만이 새벽배송의 경쟁력이라고 단언하기 힘들다.
전문 물류기업들이 최적화한 물류 운용을 위해 기술을 업그레이드하고 있는 만큼 이들에게 사업을 위탁해 초기 리스크는 줄이면서 향후 기술 발전에 따른 성과를 함께 나눌 수 있도록 비즈니스모델을 만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이커머스기업과 전문 물류기업의 협업이 지속가능한 모델인지를 놓고서는 여전히 의구심이 나온다.
이커머스기업이 지던 리스크를 외부에 넘기는 꼴이다 보니 새벽배송을 대행하는 업체들의 상황이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티몬, 이랜드리테일과 새벽배송에서 협업하는 팀프레시만 봐도 2020년에는 매출 397억 원, 영업손실 110억 원을 봤지만 2021년에는 매출 901억 원, 영업손실 224억 원으로 매출과 동시에 적자도 커졌다.
이는 새벽배송에 주력하는 많은 이커머스기업의 모습과 닮아 있는 것으로 이커머스기업이 지고 있던 비용부담이 전문 물류기업에 그대로 전가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