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왼쪽)와 대만 TSMC 반도체 파운드리공장. |
[비즈니스포스트]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2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반도체 공급부족 사태가 반도체장비 생산 차질로 이어져 고사양 반도체 공급부족을 이끄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삼성전자도 반도체장비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경쟁사인 TSMC가 고객사들의 반도체 수요에 대응하지 못하는 틈을 타 수주 물량을 빼앗아올 수 있는 기회를 노릴 수 있다.
10일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고사양 반도체 수요가 공급의 약 20%를 웃도는 심각한 공급부족 사태가 2024년 또는 그 이후까지 장기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동안 이어진 반도체 공급차질 문제가 반도체 장비업체들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고성능 컴퓨터와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등 첨단 산업에 사용되는 고사양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기업이 삼성전자와 대만 TSMC뿐이라는 점도 중요한 이유로 제시했다.
삼성전자와 TSMC가 반도체 장비 확보에 차질을 겪어 계획대로 반도체 생산라인 투자를 진행하지 못 한다면 고사양 반도체 공급부족은 확정적으로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TSMC는 이미 일부 고객사들에게 2024년까지 목표한 대로 반도체 생산량을 늘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내용을 전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장비를 주문한 뒤 실제로 반입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최장 2~3년까지 늘어나 고객사 주문에 대응할 수 있는 시기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도체 장비기업들이 장비 생산에 쓰이는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을 때까지는 지금과 같은 반도체 공급부족 사태가 해결되지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 반복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 역시 TSMC와 마찬가지로 반도체 장비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미세공정 파운드리 생산라인 투자 계획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파운드리 1위 기업인 TSMC의 생산 차질로 고사양 반도체 공급부족 사태가 장기화되는 일은 오히려 삼성전자에 반사이익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
삼성전자가 그동안 5나노 이하 미세공정 파운드리 고객사를 확보하는 데 다소 고전해 왔지만 TSMC의 생산 능력이 제한되면 고객사들은 삼성전자를 대안으로 찾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퀄컴과 엔비디아 등 주요 반도체 설계기업은 삼성전자의 최신 미세공정 파운드리 수율 문제를 이유로 반도체 생산 물량을 대부분 TSMC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고사양 반도체 생산차질 사태가 2024년 이후까지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반도체 설계기업들은 TSMC의 생산 안정화를 기다리기보다 삼성전자를 통해 반도체 위탁생산을 진행하려 할 공산이 크다.
삼성전자가 그동안 미세공정 파운드리 분야에서 사실상 독주하고 있던 TSMC의 반도체 수주 물량을 대거 빼앗아 오고 반도체 생산 단가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열리는 셈이다.
▲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기업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공정 장비 이미지. |
반도체 조사기관 SEMI에 따르면 올해 반도체 제조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장비 수요는 모두 180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장비업체들이 예상하고 있는 올해 매출 규모는 수요의 절반 수준인 1070억 달러에 그친다. 반도체기업들이 그만큼 생산 투자 계획을 대폭 축소하거나 늦춰야만 한다는 의미다.
반도체장비 공급 부족이 파운드리시장에서 강력한 잠재적 경쟁자로 꼽히는 인텔의 본격적 사업 진출을 늦출 수 있다는 점도 삼성전자에 긍정적으로 분석된다.
삼성전자가 TSMC와 함께 고사양 반도체 공급부족 국면에서 확실한 과점체제를 구축하면서 파운드리 수요 강세에 따른 수혜를 오래도록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미세공정 기술 측면에서 TSMC를 앞서나가고 있는 효과를 온전히 누리기 어려워졌다는 점은 장비 공급차질 사태에 따른 악재로 남을 수 있다.
삼성전자는 3나노 미세공정 반도체 양산을 상반기부터 시작한다는 목표를 두고 있다. 올해 말로 양산 계획을 잡아둔 TSMC와 비교해 빠른 속도로 기술 발전에 성과를 낸 셈이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장비 수급에 어려움을 겪어 3나노 파운드리 생산라인을 빠르게 확대하지 못 한다면 기술 우위가 고객사 반도체 생산 물량 수주에 큰 효과를 내지 못 할 가능성도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근 네덜란드로 출장을 떠난 이유도 이런 상황을 고려해 삼성전자에 가장 중요한 반도체장비 협력사인 ASML과 장비 공급 협상에 힘을 싣기 위한 목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ASML 관계자는 월스트리트저널을 통해 “반도체장비 수요는 현재 우리의 대응 능력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고객사들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찾겠다”고 말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