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재계와 문화계에서는 올해 칸 영화제에 직접 참석한 이 부회장이 한국 문화 콘텐츠에서 맡아온 역할을 다시금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영화 '헤어질결심', '브로커'의 크레디트에 ‘제작 총괄’로 이름을 올리고 적극 지원했다. 칸 영화제 시상식 레이스에도 대규모의 홍보지원에 나서는 등 두 작품의 수상을 위해 공을 들였다.
박찬욱 감독은 감독상 수상소감에서 “영화를 만드는 데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은 CJ와 이 부회장, 정서경 각본가를 비롯한 많은 식구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이 지원한 한국 영화가 국제영화제에서 우수성을 인정받은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19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2020년 아카데미 4관왕 등을 수상한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 2019년 작) 역시 이 부회장이 제작총괄을 맡았다.
이 부회장은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 도전을 위해 △대규모 프로모션 △봉 감독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홍보활동 △저명인사 초청 상영회 추진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4관왕 수상은 한국영화산업의 높은 제작역량을 증명하며 글로벌 콘텐츠업계에서 한국이 주목받는 계기를 만들었다.
물론 이전에도 국내외에서 뛰어난 흥행성적을 내거나 작품성이 훌륭하다고 인정받은 작품은 여럿 있었다. 하지만 흥행과 작품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것은 '기생충'이 처음이었다.
이 부회장은 국내 문화산업의 대모로 한국 콘텐츠산업이 성장하는 데 주춧돌을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부회장은 영화와 드라마, 음악, 공연, 방송 등 국내 콘텐츠업계에 꾸준한 투자를 이어가며 애정을 쏟았다. 필요하다면 해외 관계자들을 상대로 직접 콘텐츠 홍보에 나서는 등 발로 뛰는 모습도 보여줬다.
문화산업에 관심이 많았던 이 부회장은 이병철 삼성그룹 명예회장의 '문화보국'이라는 가치를 이해한 사람이었다. 이 부회장은 CJ그룹의 문화사업을 일궈내는 동안 국내 영화산업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1995년 삼성전자 미국법인 이사로 재직하던 당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사 드림웍스에 3억 달러의 투자를 주도했다. CJ그룹이 영화사업의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또한 이 부회장은 1998년 서울 광진구 강변테크노마트에 영화관 CJCGV 1호점을 내며 멀티플렉스 시대를 열었다. 멀티플렉스의 등장은 국내 영화계의 폭발적 성장을 이끈 원동력이 됐다.
1997년에는 CJ엔터테인먼트(현 CJENM 영화사업본부)를 설립해 본격적으로 영화배급사업을 시작했다. CJENM은 현재까지 영화제작·투자·배급 등에 약 2조 원을 투자해 한국영화의 전성기를 이끄는 주역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CJ엔터테인먼트는 1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해운대(2009년 개봉)’ 이후 2010년까지 미국, 중국, 일본에서 직접배급사업을 시작하는 등 한국영화의 해외 진출에도 선봉장 역할을 맡았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2013년 개봉)’는 전 세계 167개 국이라는 해외판매 신기록을 세우며 한국영화의 세계화를 이끌었다.
물론 승승장구하던 이 부회장에게 어려움도 있었다.
2013년 박근혜 정부시절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찍혀 사퇴압력을 받기도 했다. 영화 ‘광해’, ‘변호인’ TV프로그램 ‘여의도 텔레토비’ 등 정치적으로 편향된 콘텐츠를 제작했다는 ‘괘씸죄’였다.
그 결과 이 부회장은 2014년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쫓기듯 미국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회장은 미국 헐리우드에서 한국영화계를 위해 물밑에서 노력했다. 국내 콘텐츠가 해외에서 성과를 낸 데에는 이 부회장의 인맥이 큰 보탬이 됐다.
이 부회장이 2020년 '기생충'의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에서 제작팀의 자발적 예우로 수상소감을 발표한 것은 이 부회장의 공로를 나타내는 상징적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CJ그룹은 30일 앞으로 5년 동안 20조 원 규모로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투자계획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이재현 회장이 발표한 4대 성장엔진 가운데 하나인 컬처분야에 가장 많은 12조 원이 배정됐다.
CJ그룹은 세계시장을 겨냥한 ‘웰메이드 콘텐츠’ 제작 및 역량 확보에 힘쓰겠다고 밝힌 만큼 앞으로 이 부회장의 발걸음이 더욱 바빠질 것으로 보인다. 신재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