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법정관리의 위기상황에 몰린 데는 경영진의 잘못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두 회사는 모두 업계에 대한 경험이 전무했던 오너일가가 갑작스럽게 경영을 맡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진해운은 조수호 회장이 2006년 사망하면서 부인 최은영 회장이 경영권을 물려받았다. 현대상선도 정몽헌 회장이 2003년 세상을 뜬 뒤 현정은 회장이 이끌었다.
이런 상황에서 두 회장을 견제하고 감시해야 할 사외이사들이 제 역할을 소홀히 했다는 목소리가 높다.
◆ 한진해운 현대상선 이사회, 6년 넘게 반대 없어
24일 한진해운의 사업보고서 등에 따르면 2010년부터 올해 1분기까지 모두 174건의 의안이 한진해운 이사회에서 처리됐다. 6년 동안 55차례나 열린 이사회에서 반대의견을 낸 사외이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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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
현대상선도 마찬가지다. 현대상선은 2010년부터 올해 1분기까지 모두 218건의 의안이 이사회에서 처리됐는데 반대의견이 단 하나도 없었다.
두 회사 모두에서 사외이사들이 거수기 역할만 한 셈이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해운업이 호황을 맞은 2000년대 중반 해외선주들과 비싼 가격에 장기용선계약을 맺었다.
그 뒤 해운업이 장기침체로 접어들면서 운임이 급락하자 비싼 용선료가 경영난의 직접적 원인이 됐다.
그러나 두 회사가 장기용선계약을 맺는 동안 사외이사들은 아무런 견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두 회사가 무리한 사업확장과 투자를 진행할 때도 사외이사들은 계속 찬성의견만 내놨다.
현대상선이 2010년 현대건설 인수전에 뛰어들 때도 사외이사들은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당시 현대상선은 현대건설 인수자금에 대한 부담으로 주가가 급락하기도 했다.
현정은 회장이 2012년 현대상선을 앞세워 서울 남산 반얀트리호텔을 인수할 때도 사외이사들은 찬성표만 던졌다.
한진해운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최은영 회장이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했지만 아무런 견제가 없었다.
한진해운은 여러 차례 신규 컨테이너선 확보자금 차입의 건, 컨테이너선 건조자금 조달의 건, 벌크선 건조자금 조달의 건 등을 안건으로 올렸고 모두 전원 찬성으로 통과됐다.
◆ 사외이사 자격은 적절했나
두 회사의 사외이사진에 적절하지 못한 인물이 포함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진해운의 사외이사는 모두 4명이다.
공용표 전 대구지방국세청장, 이경호 인하대 교수, 정우영 변호사, 노형종 전 한국수출입은행 해외진출컨설팅센터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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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 |
이 가운데 노형종 이사는 올해 사외이사로 새로 선임될 당시 논란을 빚었다.
노 이사는 최근까지 KSF선박금융에서 감사를 지냈다. KSF선박금융은 선박투자회사(펀드)로부터 업무를 위탁받아 해운사와 조선소, 금융기관 등 당사자들 간의 계약을 수행하는 선박운용회사다. 한진해운과 계약을 맺은 펀드도 운용한다.
경제개혁연대는 당시 “한진해운과 거래관계가 있는 노형종 KSF선박금융 감사를 후보로 선임한 것은 정책금융 책임성 차원에서 문제가 된다”며 “노형종 사외이사 후보는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대상선 사외이사는 모두 4명으로 전준수 서강대 석좌교수, 허선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 김흥걸 사단법인 DMZ문화포럼 이사장, 에릭 싱 치 입(Eric sing chi ip) 허치슨포트홀딩스 사장 등이다.
특히 에릭 싱 치 입 이사는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린 지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정작 이사회에 모습을 보인 적이 거의 없다. 그는 2005년부터 2010년까지 매년 1~2차례 이사회에 참석하다가 2011년부터 아예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는 현대상선의 중요한 전략적 제휴사인 홍콩 허치슨그룹 계열사를 이끌고 있다. 이 때문에 현대상선이 전략적 필요성을 고려해 사외이사로 선임한 것으로 보인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국내 대기업의 사외이사들이 감독과 견제기능을 충분히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오히려 정부나 감독기관에 대한 로비 통로 혹은 외부 비판에 대한 바람막이 역할을 수행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사외이사들이 기업 경영의 견제역할을 하기는 애초부터 역부족이라는 시각도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조직에 상근하는 감사와 달리 사외이사에게 제공되는 정보가 너무 제한적이어서 안건에 대해 꼼꼼하고 세밀하게 분석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며 “한국기업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경영진에게 정보를 요청하는 등 추가적으로 질문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