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텔이 건설 계획을 발표한 독일 반도체공장 조감도. |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정부와 유럽연합(EU)이 각각 현지 반도체 생산공장 유치를 위해 글로벌 반도체기업들에 내걸던 무리한 대규모 보조금 경쟁을 중단하고 협력을 강화하는 데 뜻을 모았다.
미국과 유럽에서 반도체공장 건설로 받을 수 있는 인센티브가 줄어든다면 자연히 인텔과 TSMC 등 반도체기업들의 투자 경쟁도 위축돼 삼성전자가 부담을 덜게 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백악관은 홈페이지에 공식 발표를 내고 미국 정부와 유럽연합 고위 관계자들이 현지시각으로 16일 프랑스 파리에서 무역 및 기술과 관련한 현안을 논의한다고 밝혔다.
이날 회의에서는 반도체를 포함한 첨단기술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고 반도체 공급망 안정화에 힘을 합칠 수 있는 방안이 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최근 6개월 동안 유럽연합과 지속적으로 무역 및 기술과 관련한 논의를 진행해온 데 좋은 성과가 있었다고 밝혔다.
자세한 내용은 파리에서 열리는 회동이 끝난 뒤 발표될 것으로 예상된다.
백악관은 특히 유럽연합 관계자들과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반도체 공급차질 문제와 관련해 효과적 해결 방안을 마련하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고 밝혔다.
반도체 생태계 구축을 위한 투자 등과 관련해 대서양을 넘나드는 폭넓은 공감대를 구축하는 데 성과를 낼 것이라는 의미다.
백악관은 특히 “미국과 유럽연합은 단순한 보조금 경쟁을 유발하는 반도체 투자 정책을 활용하지 않게 될 것”이라며 “그러면서도 안정적 공급망을 구축할 수 있는 협력 방안을 찾겠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와 유럽이 반도체기업을 대상으로 투자 보조금 지급에 무리한 경쟁을 중단하기로 한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바이든 정부는 지난해부터 미국 내 반도체공장을 건설하는 기업에 모두 520억 달러(약 67조 원)에 이르는 보조금을 지원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유럽연합도 미국의 보조금 공세에 대응해 500억 유로(약 67조 원)에 이르는 인센티브 지원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단계다.
인텔과 삼성전자, TSMC 등 세계 주요 시스템반도체기업의 현지 공장 유치를 위해 제공되는 막대한 지원금은 결국 미국 정부와 유럽연합에 모두 큰 재정적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반도체 공급차질 사태를 예방하고 중국의 반도체산업 성장을 견제하려는 목적으로 세계 주요 반도체기업들의 공장 투자를 유치하는 데 사활을 걸 수밖에 없었다.
이번 협약을 통해 반도체공장 투자 지원에 출혈경쟁을 그만두겠다는 데 미국과 유럽연합이 합의한다면 양측 모두 재정 부담을 크게 낮추는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 삼성전자(왼쪽)와 대만 TSMC 파운드리공장. |
미국이나 유럽에서 투자 지원금을 노려 대규모 반도체공장 건설 계획을 내놓은 인텔과 삼성전자, TSMC 등 기업들은 이런 변화가 달갑지 않을 수밖에 없다.
반도체기업들이 각국 정부 및 관련 당국의 지원을 기대하고 잇따라 반도체공장에 수십 조 원에 이르는 투자 계획을 확정했는데 앞으로 보조금 규모가 크게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도 미국 텍사스주에 건설 계획을 밝힌 약 20조 원 규모의 반도체 파운드리공장 건설과 운영 과정에서 예상보다 적은 수준의 정부 인센티브를 받는 데 그칠 수 있다.
그러나 경쟁사인 인텔과 TSMC가 삼성전자보다 훨씬 더 공격적 수준의 투자 계획을 내놓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오히려 삼성전자에 ‘전화위복’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인텔은 미국에 20조 원을 들여 새 파운드리공장을 건설하는 데 이어 유럽에는 모두 110조 원가량을 투자해 반도체 생산공장 여러 곳과 연구개발센터를 신설한다는 계획을 최근 발표했다.
TSMC도 미국 파운드리공장 건설 계획을 확정한 데 이어 독일에 반도체공장 투자 계획을 논의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유럽에서 제공하기로 한 반도체 보조금이 모두 줄어든다면 인텔과 TSMC는 이중으로 타격을 받게 되는 셈이다.
보조금 축소는 결국 반도체공장 투자에 드는 비용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이는 반도체기업들의 투자 속도가 지연되거나 기존에 내놓았던 여러 건의 투자 계획을 모두 축소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삼성전자가 인텔이나 TSMC보다 상대적으로 보수적 시설 투자 기조를 앞세웠던 만큼 미국과 유럽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보조금 축소 기조에 비교적 악영향을 덜 받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SMIC 등 중국 반도체기업을 상대로 반도체장비 공급을 제한하는 등 견제를 강화하는 데도 힘을 합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삼성전자가 이를 통해 중국과 잠재적 경쟁 가능성을 어느 정도 피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백악관 관계자는 “유럽연합과 회동 뒤 발표할 내용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며 “이외에도 다양한 국가들과 반도체산업에 관련된 대화를 이어가는 데 우선순위를 두겠다”고 말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