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미국 바이든 정부에서 추진하는 520억 달러(약 67조 원) 규모의 반도체 지원법안 시행이 상원과 하원의원들 사이 의견 차이로 기약 없이 늦어지고 있다.
인텔과 TSMC, 삼성전자 등 반도체기업들은 미국 정부의 지원을 기대하고 현지에 대규모 공장 투자를 시작했는데 법안 통과 지연으로 투자전략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이다.
12일 테크레이더 등 외국언론 보도에 따르면 팻 겔싱어 인텔 CEO는 최근 ‘인텔비전2022’ 행사를 통해 반도체 파운드리사업 중장기 투자 계획과 기술 발전 성과를 소개했다.
겔싱어 CEO는 이 자리에서 “미국 상원과 하원의회에서 반도체 지원법안을 완성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며 “제발 그 빌어먹을(freakin’) 일을 마무리해 달라”고 말했다.
바이든 정부에서 2021년 초부터 추진해 온 지원법안이 아직도 미국 의회에 계류되어 있는 상황을 거친 표현으로 비판한 셈이다.
미국 반도체공장을 신설하는 기업에 모두 520억 달러의 대규모 지원금을 제공하는 해당 법안은 상원 및 하원의회를 통과한 서로 다른 미국 내 첨단산업 지원법안에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상원과 하원에서 이를 하나의 법안으로 만들어 통과시키는 것을 두고 하원의원이 의견차를 보이고 있어 법안들이 장기간 계류 상태에 놓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지나 레이몬도 상무부장관 등 정부 인사가 공식석상에서 의회를 향해 법안 통과에 속도를 내 달라고 여러 차례 요구했지만 아직 큰 진전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인텔은 지원 법안 통과를 기대하고 최근 오하이오주에 20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파운드리공장 신설 계획을 내놓았는데 지원 여부가 불확실해지면서 다급한 상황에 놓이고 있다.
미국 정부 지원을 기대하고 잇따라 미국 내 파운드리 공장 투자를 발표한 삼성전자와 대만 TSMC의 처지도 인텔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삼성전자는 이미 미국 텍사스주에 공장 투자계획을 확정하고 20조 원 이상의 비용을 들이기로 했는데 미국 정부의 지원이 확정되지 않는다면 예산 책정 등 계획 수립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 삼성전자의 텍사스주 오스틴 반도체 파운드리공장. |
미국 파운드리공장 건설은 엔비디아와 퀄컴, AMD 등 미국 내 주요 고객사의 반도체 위탁생산 수주에 핵심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에 매우 중요하다.
TSMC도 애플을 포함한 여러 미국 반도체기업을 고객사로 두고 있어 미국 내 공장 건설에 높은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반도체 지원법안 통과가 기약 없이 미뤄지는 상황이 장기화되고 법안 내용이 바뀔 가능성도 커진다면 미래 사업 계획에 불확실성을 안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인텔과 달리 삼성전자와 TSMC는 외국기업인 만큼 반도체 지원법안이 의회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다소 소외될 수 있다는 관측도 고개를 들고 있다.
투자 여력이 충분한 해외 반도체기업을 돕는 대신 미국 반도체기업이 자체적으로 기술력을 구축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 지원 비중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미국 내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 의회에서 계류되고 있는 반도체 지원법안의 구체적 내용과 시행 시기에 따라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투자 계획도 달라질 가능성이 충분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백악관 연설에서 의회를 향해 반도체 지원법안 통과를 재차 촉구하며 인텔과 삼성전자, TSMC의 미국 공장 투자계획을 언급했다.
삼성전자나 TSMC와 같은 해외 반도체기업도 이미 미국에서 첨단 반도체를 생산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며 지원 법안 통과의 중요성을 강조한 셈이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은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해외에 반도체 공급을 의존하는 일과 관련한 뼈아픈 교훈을 얻었다”며 “미국 기업이 반도체를 개발하고 생산하는 일은 국가 안보와 기술 발전에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