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마켓컬리 운영사 컬리의 기업공개와 관련해
김슬아 대표이사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김 대표는 고심 끝에 최적의 시기라고 판단한 때를 골라 컬리의 상장을 추진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최근 증시 상황은 시점 판단에 들인 노력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좋지 않다.
현재 상황대로라면 김 대표가 기대하는 기업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기업공개를 중단하자니 후폭풍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10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현재 추진되고 있는 컬리의 기업공개를 둘러싼 외부 환경이 급속도로 악화하고 있다.
컬리는 3월28일 한국거래소에 유가증권시장 상장예비심사 신청서를 내며 상장 작업을 본격화했다. 예비심사 결과는 이르면 5월 말에 나온다.
국내에 상장된 이커머스기업이 없다 보니 컬리의 기업가치를 산출하기 위한 비교 대상으로 해외 증시에 상장한 이커머스기업이 거론된다. 국내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는 쿠팡이 대표적이다.
쿠팡은 주가매출비율(PSR)을 기준으로 기업가치를 인정받아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할 수 있었다. 주가매출비율은 성장주 가치를 측정하는 대표적 지표로 주가를 주당 매출로 나눠 계산한다. 간단하게 시가총액을 매출로 나누면 된다.
2021년 3월만 해도 쿠팡은 주가매출비율을 최고 3.5배까지 인정받았다. 하지만 올해 주가가 급락하면서 주가매출비율도 맥을 못 추고 있다.
미국 현지시각 기준으로 9일 쿠팡 주가는 22.34%나 빠지며 10달러 선이 무너진 9.35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시가총액 164억7400만 달러를 지난해 매출 184억637만 달러로 나누면 주가매출비율은 약 0.9배에 불과하다.
쿠팡의 사례를 놓고 보면 컬리의 기업공개는 순탄하게 이뤄지기 힘들어 보인다.
컬리는 지난해 말 상장 전 투자유치(프리IPO)에서 2500억 원 규모의 투자금을 유치하며 기업가치 4조 원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쿠팡의 현재 주가매출비율을 기준으로 컬리의 기업가치를 산정해보면 컬리의 몸값은 1조4천억 원가량밖에 되지 않는다. 컬리는 지난해 연결기준으로 매출 1조5614억 원을 냈다.
이커머스업계의 성장성을 보여주는 지표인 총거래액을 사용해도 컬리가 인정받았던 기업가치 4조 원을 인정받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컬리는 지난해 총거래액 2조 원을 달성했다. 올해 목표로 하고 있는 총거래액은 3조 원 이상이다.
쿠팡은 지난해 총거래액 34조 원을 낸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와 비교해 시가총액은 21조 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컬리가 쿠팡과 비슷한 수준의 밸류에이션(적정가치)을 인정받는다 해도 시가총액은 1조8500억 원 수준에 그친다.
실제로 컬리의 기업가치를 4조 원으로 하는 것이 정당하냐는 의문은 증권가 안팎에서도 제기된다.
컬리의 상장예비심사 신청서 작성을 맡았던 상장 주관사 실무진이 프리IPO에서 컬리가 인정받은 기업가치 4조 원을 정당화하기 위해 진땀을 뺐다는 말도 나돈다.
김슬아 대표로서는 이런 상황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다.
미국 금융당국의 급격한 금리 인상 기조가 한동안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측면에서는 주식시장에서 기업가치를 높게 인정받기 힘들다. 본업 측면에서는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이 본격화하면 온라인 신선식품 배송을 주력으로 하는 컬리의 사업이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김 대표가 상장 추진을 중단하기도 힘든 상황으로 여겨진다.
김 대표가 그동안 컬리의 성장을 위해 추진했던 전략은 적자를 감수하면서 총거래액을 늘리는 전형적 ‘몸집 불리기’였다.
하지만 상장 추진을 철회한다면 이 전략을 수정하라는 압력이 거세질 수밖에 없다.
2021년 말 기준으로 컬리의 주요 투자자를 살펴보면 최대주주는 외국계 자본인 세콰이어캐피탈차이나(12.87%)이며 2대주주 역시 중국 투자회사인 힐하우스캐피탈(11.89%)이다.
러시아계 벤처캐피탈인 디지털스카이테크놀로지(10.17%)가 3대주주에 올라 있는 등 회사 지분의 절반 이상이 외국계 투자자본으로 구성돼 있다.
외국계 투자자본들은 특성상 컬리 상장으로 기업가치를 높게 인정받아 투자금을 회수하려는 전략을 쓸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컬리가 상장을 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게 되면 계획이 물거품이 돼 다른 전략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결국 컬리의 재무구조를 안정화해 ‘이익을 내는 회사’로 탈바꿈하려는 시도를 할 가능성이 있는데 이렇게 되면 그동안 보였던 높은 성장성은 일부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김 대표가 기업공개를 밀어붙여서 얻을 게 많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애초 김 대표는 컬리의 기업공개를 통해 기업가치 4조 원 이상을 받는 것을 목표로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상장을 무리하게 추진하면 기대했던 만큼의 몸값을 인정받기 힘들다. 계획한 수준의 투자자금 유치조차 불가능할 수 있다.
김종훈 컬리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컬리의 상장예비심사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예비심사 신청은 상장 추진을 위한 첫 걸음이다”며 “시장 상황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최적의 시점에 상장을 진행할 계획을 세웠다”고 말했다.
이를 감안하면 김 대표가 현 시점을 컬리의 기업공개에 부적합한 시기로 판단해 상장을 보류할 가능성도 없지 않아 보인다.
컬리 관계자는 “시장 상황은 항상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아직 상장예비심사 신청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로 우선 시장 상황을 지켜볼 것이다”고 말을 아꼈다.
김 대표는 컬리의 기업공개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사업을 적극적으로 확장해왔다.
오프라인 와인 수령 시범 서비스뿐만 아니라 테크 기반 물류사업의 확장 본격화, 해외여행 상품 첫 판매, 농업테크 기업 지분 투자 등 다양한 사업을 벌인 것 모두 컬리의 기업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시도였다.
하지만 김 대표가 맞닥뜨린 상장 환경은 너무나 비우호적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올해 기업공개를 추진하려던 회사들 가운데 일부는 최근 상장 철회를 결단했다.
SK쉴더스는 6일 “지난 수개월 동안 상장을 추진하면서 글로벌 거시경제의 불확실성이 심화해 투자 심리가 급격히 위축됐다”며 금융감독원에 상장 절차 철회 신고서를 제출했다. 국내 증시 상황 부진을 이유로 상장 추진을 철회한 기업이 올해만 4곳이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