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재 기자 piekielny@businesspost.co.kr2022-05-03 15:4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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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회장이 2일 서울 광화문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1분기 국내 주요 은행들은 높은 예대마진(예금상품과 대출상품의 금리 차이에서 나오는 이익)에 힘입어 사상 최대 실적 행진을 또 다시 이어갔다.
이런 흐름은 올해 내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에서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주요 시중은행의 순이자마진(NIM)이 계속 높아지면서 4대 금융지주 모두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을 또 다시 새로 쓸 것으로 보고 있다.
4대 금융지주는 올해 초 코로나19 상황에서도 호실적에 따른 대규모 성과급을 지급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는데 내년 초에도 똑같은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시중은행의 높은 이자는 서민경제의 부담으로 직결되는 만큼 정치권도 이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도 정치권에서는 은행의 높은 예대마진을 향한 강도 높은 비판이 이어졌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예대마진 공시제도 공약도 나왔다.
국내를 대표하는 금융소비자 단체인 금융소비자연맹은 높은 예대마진과 관련한 현재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비즈니스포스트는 새 정부 출범을 일주일가량 앞둔 2일 서울 광화문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실에서 조연행 회장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조 회장은 은행의 높은 예대마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근본적 해결책으로 자율경쟁시장 시스템 구축을 꼽았다.
현재 불필요한 정부 규제가 은행들의 자율경쟁을 막고 대출시장을 왜곡하고 있는데 이에 따라 은행들이 가만히 앉아서 가장 편한 예대마진 방식으로 돈을 벌고 있다는 것이다.
조 회장은 “정부에서 대출시장을 강력하게 조이다 보니까 정작 돈이 필요한 소비자는 자금을 구하지 못해 안달이 난다”며 “이 상황에서 은행은 금리를 낮추기보다 오히려 높은 이자로 돈을 버는 후진적 구조가 오랜 기간 이어지면서 은행의 높은 예대마진이 고착됐다”고 진단했다.
그는 “은행들은 여전히 새로운 선진기법의 투자 노하우나 투자 방식을 도입해 수익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손쉬운 예대마진에 수익의 대부분을 의존하고 있다”며 “자율경쟁이 되면 은행이 자연스레 금리 경쟁을 하면서 높은 예대마진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조 회장은 “자율경쟁을 위해 규제 가운데 풀어야 할 것은 풀어야 한다”며 “자율경쟁을 위해 모든 규제를 풀 순 없지만 금융회사를 통해 집값을 잡겠다는 생각은 오히려 금융소비자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바라봤다.
자율경쟁이 국내 금융시장 전체의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예로는 카카오뱅크를 들었다.
▲ 광화문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실 문패. <비즈니스포스트>
조 회장은 “카카오뱅크를 써봤는데 앉은 자리에서 뚝딱 대출이 이뤄지더라. 기존 은행만 있었다면 상상할 수 없는 변화”라며 “카카오뱅크 같은 메기 한두 마리만 있어도 이렇게 변하는데 자율경쟁 시스템이 갖춰지면 소비자 후생이 더욱 크게 늘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소비자연맹은 금융소비자에게 합리적 은행 선택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매년 국내 은행을 대상으로 ‘좋은 은행’ 순위를 발표한다.
지난해에는 카카오뱅크가 출범 5년 만에 대형 시중은행들을 제치고 처음으로 1위에 올랐는데 결국 소비자의 효용을 높인 은행이 좋은 은행이라는 점이 입증됐다고 볼 수 있다.
조 회장은 높은 예대마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고 시장의 자율성을 회복해야 하지만 이것이 무조건적 규제 완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소비자 보호 측면에서는 오히려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며 실효성 있는 예대마진 공시제도 도입도 강조했다.
조 회장은 “예대마진 공시는 소비자 정보 차원에서 당연히 이뤄져야 하는 가장 기본적 사안”이라며 “단순히 가산금리 항목을 공시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 눈높이에서 정확히 은행별 금리를 비교할 수 있는 수준으로 도입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은행들이 예대마진을 공개하고 있는데 정작 소비자는 내용이 어려워 상품 선택에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다”며 “이번 기회에 각자 신용조건에서 어느 상품이 가장 적합하고 유리한지 손쉽게 알 수 있도록 예대마진 공시제도를 종합적으로 손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금리가 워낙 복잡한 구조로 산출돼 소비자 편의성을 높이기 쉽지 않다는 지적을 놓고는 “정부와 은행이 자기가 직접 돈을 빌린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면 소비자 친화적 시스템 구현이 충분히 가능하다”며 “새로 도입되는 예대마진 공시제도가 이전처럼 실효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고 바라봤다.
윤석열 당선인이 약속한 예대마진 공시제도 공약은 은행의 예대마진을 투명하게 공개해 금융당국이 필요시 금리 적정성을 검토하고 담합요소를 없애 금융소비자 효용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윤석열정부에 바라는 점으로는 소비자를 중시하는 금융정책을 꼽았다.
▲ 4대 시중은행 로고.
국내 금융시장은 관치금융에 길들여져 지난 70년 동안 은행 등 공급자 중심으로 판이 짜여졌는데 이런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조 회장은 “예를 들어 1년이 366일인 윤년이 있는데 과거 은행들은 윤년에도 하루 대출이자를 따질 때 1년을 365일로 잡고 계산해 더 많은 이자를 받았다”며 “금융소비자연맹이 오랜 기간 싸워 이와 관련한 표준약관을 바꾼 적이 있는데 여전히 금융시장에는 이처럼 잘 보이지 않지만 소비자한테 불리한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 기득권에서 벗어난 새로운 인물이 금융제도의 개혁을 이끌 필요가 있다고 바라봤다.
조 회장은 “과거 기득권을 누렸던 인사가 다시 정책을 만든다면 새 시대에 맞는 새 생각이 나오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윤석열정부 첫 경제부총리와 청와대 경제수석을 기획재정부 출신이 차지했는데 금융위원장 등 남은 인선은 좀 더 참신하고 개혁적 사고를 지닌 인사들로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금융소비자연맹은 2001년 보험소비자연맹으로 출범한 뒤 2011년 금융소비자연맹으로 확대 개편한 국내 최초 금융소비자 시민단체다.
지난 20년 동안 금융소비자를 대변하는 목소리를 꾸준히 내며 카드사 정보유출 손해배상, 생명보험사 자살보험금 청구소송 등 소비자 공동소송에 앞장서 최종 승소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조 회장은 금융소비자연맹의 앞으로 목표로 집단소송제, 징벌적 손해배상제, 입증책임의 전환 등 소비자권익 3법의 조속한 제정을 꼽았다.
조 회장은 “20년 동안 금융사를 상대로 싸워보니 소송에서 이겨도 결국 금융사한테 면죄부를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며 “소비자 전체가 다 피해자인데 소송에 참여한 일부만 보상받고 금융사는 그들만 보상해주면 채무가 없어지는 상황이 되풀이됐다”고 말했다.
그는 “진정으로 소비자를 위한 소송이 되려면 모든 피해자들이 같이 보상을 받는 집단소송제도가 꼭 도입돼야 한다”며 “소비자권익 3법이 도입되면 궁극적으로 공급자의 상품서비스 경쟁력도 높여 국가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조 회장은 1961년 태어나 중앙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보험학 석사 및 박사과정을 마쳤다.
보험회사에서 16년 동안 상품개발자로 일하다가 2000년대 초 보험소비자연맹 창립멤버로 참여했고 사무국장, 부회장, 상임대표 등을 거쳐 2017년 회장에 올랐다. 금융소비자연맹 최초의 내부 출신 회장으로 지난해 4월 3년 임기로 연임에 성공했다.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