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채널Who] "우리의 경쟁 상대는 다른 음료수가 아니라 물이다.” 1980년대 로베르토 고이주에타 코카콜라 전 회장이 한 말이다.
그는 “우리는 음료수시장에서는 점유율이 40%지만 전체 물시장에서는 고작 3%에 불과하다. 우린 아직 한참 멀었다"고도 했다.
당시 이 말을 들은 당시 사람들은 이를 그냥 구호로 여겨 고이주에타 회장의 공격적 영업마인드를 본받자는 정도로 받아들였다.
아무래도 콜라는 콜라고 물은 물이니까
고이주에타 회장이 코카콜라의 황금기를 이끄는 동안 코카콜라는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코카콜라가 넘볼 수 있는 영역에는 한계가 있었다.
특히 설탕과 탄산음료가 성인병의 범인으로 지목되기 시작하자 탄산음료시장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코카콜라를 비롯한 음료기업들은 탄산음료보다는 생수와 차, 건강음료 분야로 관심을 돌리게 된다.
그런데 최근 소비자들이 그 옛날 콜라가 처음 등장했을 때처럼 콜라를 물 마시듯 마시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TV나 인터넷 동영상서비스를 보면 ‘물 대신 콜라를 마셔도 괜찮은가?’라는 질문을 놓고 전문가들이 진지하게 의견을 제시하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설탕 대신 대체감미료를 사용해 칼로리를 0에 가깝게 낮춘 이른바 ‘제로칼로리 탄산음료’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원래 제로칼로리 탄산음료는 주로 당뇨병이나 비만환자를 겨냥한 틈새시장 음료였다. 시간이 흘러 대체감미료 기술이 좋아지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일반소비자들도 제로칼로리 탄산음료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코로나19 시기를 맞아 탄산음료시장의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와 식품업계 통계자료를 종합하면 2020년 국내 탄산음료시장 4.7% 성장하는 동안 제로칼로리 탄산음료시장은 7.4% 성장했다.
국내 제로칼로리 탄산음료시장을 이끌어 가는 회사는 LG생활건강과 롯데칠성음료가 있다.
LG생활건강은 화장품 기업이지만 사업다각화를 위해 2019년 코카콜라의 한국 보틀링 파트너인 코카콜라음료를 인수했다. 이후 글로벌 1위 탄산음료 브랜드 코카콜라의 높은 시장지배력을 기반으로 지속성장했다.
보틀링이란 본사로부터 음료원액을 받아 음료로 가공해 유통 및 판매하는 것을 말한다. LG생활건강 음료사업부문은 2021년 매출 1조5919억 원, 영업이익은 2047억 원을 내며 2020년보다 매출은 5.2%, 영업이익은 6.2% 늘었다.
여기에는 2017년 말 출시한 코카콜라 제로슈거의 성장도 한몫을 했다.
2020년 국내 탄산음료시장 점유율을 보면 코카콜라가 23.2%로 1위였으며 칠성사이다 17.5%, 펩시 7.0% 였다. 코카콜라 제로슈거는 전체 점유율 2.8%를 차지하며 7위에 올라섰다.
LG생활건강은 2022년 미국에서 인기를 끌며 우주맛 코카콜라로 불린 '코카콜라 스타라이트'의 한국버전인 '코카콜라 스타더스트 제로'를 출시하면서 시장지배력을 더 높여간다는 계획도 세워뒀다.
경쟁자인 롯데칠성음료는 코카콜라의 라이벌 펩시의 보틀링사업을 하고 있으며 주요 제품은 칠성사이다, 펩시, 밀키스 등이다.
과거 제로칼로리 탄산음료시장의 가능성을 낮게 보고 관련제품을 단종시켰으나 2020년 LG생활건강이 승승장구하는 동안 오히려 실적 감소를 겪고 나서는 생각을 바꿨다.
롯데칠성음료 음료부문은 2020년 매출 1조5523억 원, 영업이익 1232억 원을 내면서 2019년보다 매출은 5.6%, 영업이익은 26.6% 줄었다.
이에 2021년 칠성사이다제로와 펩시제로라임맛을 내놓고 제로칼로리 탄산음료시장에 다시 뛰어들었다.
칠성사이다제로는 기존 칠성사이다의 맛을 잘 구현했다는 평가를, 펩시제로라임맛은 기존 펩시는 물론 코카콜라, 코카콜라 제로슈거보다 맛있다는 평가까지 받으며 시장에 안착했다.
롯데칠성음료 음료부문은 2021년 매출 1조6729억 원, 영업이익은 1500억 원 내면서 2020년보다 매출은 7.8%, 영업이익은 21.8% 늘었다.
롯데칠성음료측는 특히 제로칼로리 탄산음료 매출이 875억 원 늘면서 실적을 견인한 점을 강조한다.
롯데칠성음료는 2022년 제로칼로리 탄산음료 열풍을 이어가려 관련 브랜드를 기존 2개에서 5개로 늘린다는 계획을 내놨다. 밀키스와 같이 소비자에게 익숙한 맛들을 제로칼로리로도 선보인다.
제로칼로리 탄산음료라는 구원투수가 나타나면서 탄산음료시장은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잡았다. 이것을 물 대신 마셔도 되는지 여부는 논란의 대상이지만 중요한 사실은 더 이상 탄산음료시장의 성장을 가로막을 장애물이 없다는 점이다.
탄산음료가 정말로 물의 지위를 엿보기 시작했다. 조충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