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과 조종사노조의 갈등이 감정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대한항공과 조종사노조의 갈등은 임금인상을 두고 통상적으로 벌어지는 단순한 노사갈등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 감정싸움으로 번져
17일 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 조종사 사이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을 비난하는 문구가 담긴 스티커를 더욱 열심히 붙이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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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
스티커를 붙였다는 이유로 조종사들이 무더기 징계를 받자 이에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조 회장이 최근 조종사를 깎아내리며 ‘개가 웃어요’라는 표현을 쓴 데 대해 이를 비꼬는 문구도 등장했다.
대한항공의 한 조종사는 가방에 개가 웃는 사진을 붙인 뒤 “내 직업이 당신에게 웃음거리라 하더라도 비행안전을 대하는 내 자세는 언제나 진지하다”라고 적었다.
대한항공 조종사노조는 지난달부터 출퇴근시 사용하는 가방에 ‘회사는 적자, 회장만 흑자’ ‘일은 직원 몫, 돈은 회장 몫’이라고 크게 적힌 스티커를 부착했다.
조 회장에게 망신을 주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다. 조종사들 사이에서 이 문구를 외국인도 읽을 수 있게 영어로 써넣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이에 앞서 조 회장은 “비행기 조종이 자동차 운전보다 쉽다”고 깎아내렸다.
대한항공과 조종사노조가 조 회장을 놓고 감정싸움으로 번지며서 대한항공의 이미지만 하락하고 있다.
◆ 조종사노조 불만, 터질 게 터졌나
조 회장과 조종사노조의 갈등은 얼핏 보면 임금을 37% 올려달라는 조종사노조와 절대 안 된다는 대한항공의 갈등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에 더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기싸움이 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한 발 물러설 경우 앞으로 노사관계에서 주도권을 쥘 수 없다는 판단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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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항공 조종사노조가 가방에 부착한 스티커. |
조 회장이 강한 발언을 쏟아내고 조종사노조가 회사의 중징계에도 더욱 강하게 나오는 이유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이번 사태를 놓고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도 나온다.
조종사노조는 몇년 전부터 회사 측에 근무여건이 너무 열악하다고 불만을 제기해 왔다. 체류 호텔과 식사문제, 휴식시간 보장 등 기본적 처우를 개선해달라는 것이다.
조종사노조는 특히 외국 항공사에 비해 조종사의 휴식시간이 너무 짧다며 조종사들의 충분한 휴식은 안전문제와 직결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회사 측은 조종사 수급문제 등 현실적 어려움을 들어 조종사노조의 요구를 모두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 기업문화에 대한 반발도 작용했나
대한항공의 기업문화가 지나치게 경직돼 있다는 지적도 조종사들 사이에서 제기된다. 조종사들은 그 문화가 조양호 회장으로부터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대한항공의 한 조종사는 지난해 사내게시판에 글을 올려 대한항공이 철저히 조 회장의 말 한마디에 움직이는 조직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조양호 회장의 한마디에 직원들의 월급이 오르지 않고, 안전장려금이 삭감된다”고 주장했다.
조종사노조는 몇년 사이 조종사의 이직이 부쩍 늘어난 데 대해서도 그 원인을 단순히 임금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염진수 전 대한항공 조종사노조 위원장은 지난해 조종사 유출 문제에 대해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는 2∼3배 차이 나는 임금이지만 그것보다는 잘못된 기업문화 등 항공사에 대한 실망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지난해 아시아나항공에서 수염을 길렀다는 이유로 한 조종사가 징계를 받았을 만큼 국내 항공사 문화는 보수적인 편이다.
대한항공은 2014년 승무원들이 공공장소를 다닐 때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고 이동 중 커피 등 음료수도 마시지 못하게 해 논란을 낳기도 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