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다시 가동하며 임기 말 남북관계를 정상궤도에 올려놓을 가능성이 생겼지만 핵심과제인 북한과 미국 대화 재개까지는 시간이 빠듯하다.
▲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9월18일 평양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를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7일 오전 10시 한국과 북한을 잇는 직통 연락선이 복원됐다. 지난해 6월9일 북한의 일방적 조처로 통신 연락선이 단절된 지 13개월 만이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비서관은 이날 “남북 양 정상은 지난 4월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친서를 교환하며 남북관계 회복문제를 소통해 왔다”며 “이 과정에서 우선 끊어진 통신 연락선을 복원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꾸준히 소통을 이어온 데다 연락선 회복이라는 실질적 성과를 냈다는 점에서 남북관계 개선의 모멘텀이 마련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역대 전직 대통령들은 임기 말이면 남북관계가 답보 상태에 빠지기 일쑤였다. 북한이 임기가 끝나는 남한 대통령을 상대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 컸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의외로' 임기 말에도 남·북·미 삼각관계를 풀기 위해 바삐 움직일 기반을 마련한 셈이다.
이번 연락선 복원으로 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 역할도 다시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남북 정상회담이 이뤄질 가능성도 벌써부터 제기된다.
물론 청와대는 정상회담 가능성에는 거리를 두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서면 질의응답에서 “남북 정상 사이 대면 접촉이나 화상 회담에 관해 논의한 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의 경제‧방역 지원이 절실한 북한 측 사정을 고려하면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은 꽤 높게 점쳐진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남북 통신선 연결은 남북 정상회담의 전 단계로 볼 수도 있다. 북한이 코로나19로 국경을 폐쇄한 상황이라 대면 정상회담은 어렵더라도 화상 정상회담은 가능하다”고 봤다.
정 수석연구원은 “백신 지원 측면에서 보더라도 한국이 내년 중순쯤이면 백신 물량이 넉넉해질 것으로 보이는데 북한도 백신 지원이 절실한 만큼 그 전에 남북관계를 정상궤도에 올려 놓은 뒤 한국 쪽 지원을 받는 명분을 마련하고 대화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북미 대화 재개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애초 남북관계이 단절은 이른바 ‘하노이 노딜’이 결정적이었다.
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은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정상회담을 하며 북한의 비핵화와 대북제재 완화 수준을 놓고 협상을 진행했지만 끝내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그 뒤로 북미관계에서 뚜렷한 돌파구가 마련되지 못했고 북한의 발사체 발사 등 군사적 도발도 이어졌다. 한국 정부나 문 대통령을 향한 북한의 메시지도 급격히 험악해졌다.
외교가에서는 북한이 미국에 '적개심'을 품고 있어 북미 사이 접점을 찾기 쉽지 않다고 보고 있다. 문 대통령의 북미 사이 중재 역할이 험난할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하지만 북한으로서도 코로나19 장기화와 고질적 경제난의 2중고를 극복하려면 미국의 대북제재 완화가 절실한 형편이라 문 대통령이 중재에 나설 틈이 없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김 위원장도 조 바이든 대통령이 새로운 대화 상대가 된 만큼 문 대통령의 중재 역할에 어느 정도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번 남북 연락선이 복원된 배경에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기조 변화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당시 대북정책기조가 매우 강경한 편이었는데 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의 정상회담 등을 계기로 미국의 대북정책기조가 유연해진 점을 북한이 긍정적으로 봤다는 얘기다.
정 수석연구위원은 “북미가 양자대화에 나설 가능성은 높아 보이진 않으나 한국과 미국, 중국이 참여하는 4자회담을 추진하는 상황이 된다면 한국과 중국의 중재 역할을 기대해 볼 수 있다”며 “북한이 마지못해 회담장에 나오는 장면이 연출될 수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