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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석용 LG생활건강 대표이사 부회장 |
LG생활건강이 차석용 부회장의 지분 매각으로 촉발된 ‘차석용 CEO 리스크’에 직면했다. 차 부회장이 사임설을 일축하고 나섰지만 크게 떨어진 주가가 회복되지 않고 있다.
9일 LG생활건강 주가는 전 거래일인 5일보다 0.74% 오른 47만6천원에 마감했다. 장 초반 3.17% 오른 48만7500원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이후 상승세가 꺾이며 전일 대비 3500원 오르는 데 그쳤다.
LG생활건강 주가는 지난 5일 12.01%나 급락했다. 3일까지 54만3천원이던 주가는 하루 동안 7만원 넘게 떨어져 5일 47만250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LG생활건강의 시가총액은 단 하루만에 1조 원 넘게 증발했다. 이에 따라 LG생활건강은 시총순위 30위권 밖으로 밀려나게 됐고 화장품 업계 경쟁사인 아모레퍼시픽과 격차도 크게 벌어졌다.
LG생활건강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진 원인은 차 부회장의 지분매각 소식이었다. 차 부회장은 지난 3일 보유하던 LG생활건강 보통주 전량을 매각했다고 밝혔다. 차 부회장이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3일까지 주식 2만2천 주를 팔아 손에 쥔 돈은 109억 원 정도다. 매각 후 차 부회장의 주식은 우선주 1만 주밖에 없다.
차 부회장이 자사주를 전량 매각하자 시장에선 차 부회장이 LG생활건강 대표에서 물러난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특히 차 부회장이 지난 3월 주력 계열사인 코카콜라와 더페이스샵 대표이사에서 물러난 데 이어 이번에 지분을 전량 매각함에 따라 사퇴설이 더 힘을 얻었다.
차 부회장은 급히 진화에 나섰다. 그는 9일 “남은 임기를 채우는데 아무런 변동사항이 없다”며 사퇴설을 일축했다.
차 부회장은 “그룹에서 나가라고 해야 대표이사에서 물러날 수 있을 것”이라며 “심지어 구본무 회장님께서 지난해 말 내게 65세까지 회사에 뼈를 묻어야 한다고 하셨다”고 해명했다. 차 부회장은 올해 62세이다. 적어도 2017년까지 LG생활건강의 대표이사를 맡을 것이라는 얘기다.
차 부회장은 “이번에 사퇴설이 불거진 것은 오해 살 만한 일이 우연히 겹쳐 일어난 결과”라며 “사실 여부는 지켜보면 알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차 부회장은 지난해 말 LG생활건강 지분을 매각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매각대금을 모교인 미국 코넬대 등에 장학금으로 기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차 부회장은 지난해 12월10일부터 16일까지 보통주 1만7888주와 우선주 3888주 등 약 110억 원 가량의 주식을 매각했다. 당시에도 차 부회장은 매각 대금 전액을 국내외 대학생들의 학비나 연구사업에 쓰겠다고 말했다.
LG생활건강도 차 부회장의 이번 지분 매각과 사퇴를 연관짓는 해석을 경계했다. LG생활건강의 한 관계자는 “차 회장이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일에 쓰려고 매각한 것”이라며 “회사 업무와 관계없다”고 해명했다.
차 부회장이 직접 사퇴 뜻이 없다고 밝혔지만 업계에서 그의 거취를 두고 여러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번 지분매각 탓도 있지만 최근 LG생활건강의 성장세가 주춤하자 차 부회장이 실적에 부담을 느끼고 발을 빼는 게 아니냐는 추측도 제기된다.
차 부회장이 물러날 수 있다는 추측은 LG생활건강이 올해 1분기 만족스럽지 못한 실적을 거둔 데 뿌리를 둔다. LG생활건강의 1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2.1% 줄어든 1283억 원이었다. 분기 영업이익이 줄어든 것은 차 부회장이 2005년 취임한 이후 37분기 만에 처음이다.
국내 한 증권사 연구원은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은 보통 자신의 임기 동안 주가를 높이기 위해 자사주 매각을 잘 하지 않는 편”이라며 “차 부회장이 CEO를 맡은 지 10년째가 되고 있고 최근 실적도 좋지 않은 만큼 정황상 물러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차 부회장은 그동안 LG생활건강의 눈부신 성장을 이끌어왔다. 지난해 LG생활건강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4조3263억 원에 4964억 원으로 취임 첫해인 2005년보다 각각 4.5배와 7배 증가했다. 4287억 원에 불과하던 시가총액은 지분 매각 직전인 3일 8조3800억 원까지 불어났다. 업계에선 이를 두고 ‘차석용 효과’라고 말했다.
차 부회장이 사실상 오너와 같은 역할을 하다 보니 이번처럼 차 부회장을 둘러싼 리스크가 터질 때마다 LG생활건강 주가가 후퇴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차 부회장이 지난 3월 계열사 대표이사에서 물러났을 때도 LG생활건강 주가는 하루만에 5% 넘게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사퇴설을 진정시켜 떨어진 주가를 회복하려면 더욱 명확한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확한 설명 없이 CEO가 자사주 매각에 나서게 되면 투자자들의 신뢰가 계속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박현진 동부증권 연구원은 9일 보고서에서 “차 부회장은 2005년 이후 굵직한 인수합병을 성공시키며 주도적 역할을 해온 CEO”라며 “차 부회장의 자사주 매도로 향후 거취에 대한 루머가 주가에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경영진 체계에 대한 회사의 명확한 입장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