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순호 HDC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 사장(왼쪽)이 10일 오전 광주광역시 서구 광주시청 브리핑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그에 앞서 사과인사를 한 정몽규 HDC그룹 회장(오른쪽)이 뒤에 서 있다. <연합뉴스> |
권순호 HDC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 사장이 광주광역시에서 발생한 대규모 사망사고에 원청업체로서 책임을 짊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고와 관련해 국토교통부의 조사와 경찰수사가 진행되고 있어 책임소재 등이 밝혀졌을 때 권 사장의 부담이 더 커질 수도 있다.
10일 HDC현대산업개발에 따르면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4구역 재개발 사업현장에서 발생한 철거건물 붕괴사고와 관련해 재발방지대책을 내놓기로 했다.
이번 사고는 HDC현대산업개발이 시공을 맡고 있는 광주 학동 4구역 재개발 현장에서 지상 5층짜리 건물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철거 중이던 상가건물이 통째로 무너지면서 건물 앞 도로의 정류장에 정차한 시내버스 1대가 매몰됐다. 버스 안에 갇힌 17명 가운데 9명이 숨지고 8명은 중상을 입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이번 철거사업을 광주지역의 철거업체인 한솔기업에 하청을 맡겼다.
HDC현대산업개발이 직접 철거작업을 한 것은 아니지만 사업을 발주한 원청업체로서 전체 사업 진행과 관련한 책임은 져야할 것으로 보인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지난해 단 한 건의 사망사고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에 2020년 12월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공공 건설공사 안전관리 우수 시공업체’에 선정되기도 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올해 1분기에도 사망사고가 발생하지 않으면서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대규모 인명사고가 발생하면서 그동안의 공든 탑이 무너진 셈이다.
특히 이번 사고의 원인을 두고 현장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탓에 발생한 ‘인재’라는 시선이 커지고 있어 사고의 원인과 책임 등이 밝혀질 때 권 사장의 부담이 더 커질 수도 있다.
10일 새벽 사고현장을 찾은 권 사장과 현장소장이 사고 과정과 책임소재 등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소극적 태도 보이자 HDC현대산업개발이 제대로 현장을 관리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한 것 아니냐는 시선이 나왔다.
권 사장과 현장소장은 사고와 관련해 어떤 작업을 하고 있었는지를 묻자 명확하게 답변하지 못했으며 철거 작업자들이 이상 징후를 발견한 뒤 사고가 발생할 때까지 관련 보고를 받지 못했다고도 말했다.
재하도급으로 철거공사가 이뤄진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기도 했다.
재하도급은 원청으로부터 하청을 받은 기업이 다시 하청을 주는 형태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소재가 불분명하고 관리소홀 등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해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권 사장은 재하도급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지만 현장관계자들이 하도급 업체 소속이 아니라는 말이 나오면서 재하도급과 관련한 의혹은 커지고 있다.
권 사장은 재하도급과 관련해 10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철거를 맡은 한솔기업과 계약 이외의 재하도급은 주지 않았다"며 "법에 위배되기 때문에 재하도급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건물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도로차량을 제대로 통제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 10일 오전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구역 철거 건물 붕괴사고가 발생한 현장. <연합뉴스> |
권 사장은 기자회견에서 "철거 잔재가 외부로 떨어질 수 있어서 현장 외부에 신호수를 2명 배치한 걸로 알고있으며 사고 당시에도 2명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면서도 “적정하게 대피 신호를 줬는지는 공사 관계자들이 조사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번 사고와 관련해 진상규명을 철저하게 하고 책임자를 엄벌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10일 사고현장을 찾아 “정부는 국토부 조사와 경찰수사를 통해 사고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이에 따라 후속조치와 근원적 재발방지대책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사전 허가 과정이 적법했는지, 건물해체 공사 주변의 안전조치는 제대로 취해졌는지, 작업 중에 안전관리 규정·절차가 준수됐는지를 확인하라"고 지시했다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경찰은 광주경찰청 전담 수사팀을 수사본부로 격상하고 이번 사고원인이 업무상 과실인지 수사에 들어갔다.
이번 사고의 원인이 인재로 드러나면 권 사장이 자리에서 물러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권 사장은 2019년 말 정기 임원인사에서 건설부문의 전문성과 경쟁력을 인정받으며 전무에서 각자대표이사 사장으로 파격 승진했다. 이후 2020년 말 임원인사에서 연임됐다.
최근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사고를 두고 안전관리가 미흡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사회적으로 관심이 커지고 있는 점도 권 사장에게는 부담이다.
올해 1월에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국회에서 통과되기도 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노동자가 사망하는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형에 처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다. 이 법안은 내년 1월부터 시행된다.
HDC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유가족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며 “사고원인 규명에는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지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