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민의당과 국민의힘의 합당 논의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두 당 모두 큰 틀에서 합당이 필요하다는 전제에 공감하고 있지만 이를 위한 세부사항을 놓고 결론을 맺지 못하고 있다.
당장 국민의당 내부 논의에서 결론을 맺지 못했지만 국민의힘 쪽도 원내대표와 당대표 선출을 앞둔 만큼 지도부가 완전히 구성된 뒤 당 대 당 협의를 거쳐야 할 수도 있다. 합당 시기는 더 늦어질 수 있는 셈이다.
정치권에서는 안 대표가 합당에 뜸을 들이고 있다는 시각이 많다. 안 대표가 '당내 여론 수렴'을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마음만 먹으면 속도는 내는 게 불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고위원회에서 먼저 의결한 뒤 당원을 설득해 나갈 수도 있다.
안 대표의 이런 행보를 두고 야권재편 과정에서 가치를 키우려 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현재 안 대표는 대통령선거주자 지지도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 크게 뒤지고 있다. 여기에 4·7재보궐선거에서 서울시장 도전에 실패하며 과거 누렸던 대선주자 위상을 많이 잃어버렸다.
안 대표의 정치적 능력이나 역할에 회의적 시각도 많아진 만큼 과거의 대선주자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은 야권재편에서 기회를 포착하는 것이다. 아직 힘의 균형이 어느 한 쪽으로 완전히 쏠리지 않은 상황이라 인지도와 보궐선거에서 백의종군했다는 명분을 지렛대로 삼을 수 있다.
다만 안 대표가 보수야권에서 새로 위치 선정을 하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안 대표에게 대선주자 위상을 안겨다 준 중도·실용노선의 대표 인물이란 상징성을 유지한 채 보수야권에 정착하는 게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보수 정치인으로 변신하며 자칫 중도라는 상징성을 놓칠 수 있다는 뜻이다.
국민의당도 합당의 전제조건으로 안 대표가 고유의 정치적 브랜드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안혜진 국민의당 대변인은 26일 최고위원회 회의 뒤 기자들과 만나 “흡수합병은 일고의 가치가 없으며 우리가 추구했던 중도나 실용이 반영돼야 하고 혁신, 공정, 개혁이 전제된 합당이 돼야 한다는 조건들이 많았다”고 덧붙였다.
만약 안 대표가 새 통합정당의 기치에 중도·실용의 가치를 반영하는 데 성공한다면 야권의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공적을 내세울 수 있게 된다. 대선주자 위상도 어느 정도 회복할 가능성이 열린다.
특히 국민의힘에서 ‘좌클릭’을 주도했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떠난 만큼 안 대표가 과거 김 전 위원장이 맡았던 중도외연 확장의 역할을 수행할 여지도 커졌다. 사사건건 안 대표의 의견을 묵살했던 김 전 위원장이 사라지며 안 대표가 야권 안에서 움직일 공간도 넓어졌다.
하지만 최근 안 대표가 보여온 행보는 '합리적 중도'의 길과 많이 멀어진 게 문제다. 안 대표는 서울시장선거에 도전하면서 연일 문재인 정부를 거칠게 공격하면서 '우클릭'을 해왔다. 때로 국민의힘 쪽보다 더 거칠고, 더 선명한 모습을 보였다.
시간은 안 대표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결단을 내리지 못하면 기회가 없어질 수도 있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결단을 내리지 못해 기회를 놓쳤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은 20일 공개된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안 대표가 1월에 사무실에 찾아왔을 때 국민의힘에 입당해 단일후보가 되라고 제안했는데 안 대표가 안 한다고 했다”며 “안 대표가 입당했으면 오세훈 후보를 이기고 서울시장이 됐을 것이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