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걸그룹 블랙핑크가 팬사인회를 열었다. 순식간에 4600만 명이라는 엄청난 인파가 모여들었다.
네이버의 손자회사 네이버제트가 운영하는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서 일어난 일이다.
▲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
현실에서 우리나라 전체 인구에 가까운 숫자가 한 가수의 팬사인회에 몰리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메타버스’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다.
네이버는 ‘IT의 미래’라고 불리는 메타버스 시장에서 로블록스, 에픽게임즈 등 글로벌 경쟁사들을 꺾고 선두 주자로 발돋움 할 수 있을까?
메타버스는 가상을 의미하는 ‘메타’와 현실 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를 합쳐 만들어진 합성어다.
가상공간 ‘체험’에 그치는 가상현실(VR)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개념으로 가상세계 안에서 이용자들끼리 만나 서로 교류하며 여러 가지 활동을 즐기는 것을 의미한다.
◆ 5년 안에 세계 게임시장 규모와 비슷, 메타버스 시대가 온다
메타버스라는 개념은 무려 30년 전인 1992년 닐 스티븐슨의 소설 ‘스노 크래시’에서 처음 등장했다. 닐 스티븐슨은 스노 크래시에 등장하는 가상세계에 메타버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로부터 10년이 지난 2003년, 린든랩이 개발한 웹 기반의 소셜 플랫폼 세컨드라이프가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메타버스가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컨드라이프 이후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던 수많은 가상세계 플랫폼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사라지면서 메타버스와 관련된 관심도 시들해졌다.
이런 메타버스가 다시 세계 IT업계를 뒤흔들고 있다.
2021년 3월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신규 상장한 로블록스가 상장 첫날 54.44% 급등하는 등 ‘대박’을 터트리면서 메타버스는 다시 한 번 화려하게 등장했다. 이제는 메타버스를 놓고 ‘IT의 미래’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글로벌시장조 사기관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는 현재 460억 달러(약 51조4천억 원)에 이르는 메타버스시장 규모가 2025년에는 2800억 달러(약 312조8천억 원)까지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2021년 세계 전체 게임시장 규모는 2219억 달러로 예상된다. 게임시장 규모의 성장률이 지금의 8%선을 유지하다면 2025년에는 게임과 메타버스의 시장규모가 비슷해지는 셈이다.
◆ 미국 기업이 주도하는 메타버스, 네이버는 ‘제페토’로 IT강국 체면 살릴까
현재 메타버스시장은 미국 기업, 그 가운데서도 미국 게임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 로블록스에서 즐길 수 있는 게임 '테마 파크 타이쿤' <로블록스 공식 유튜브 영상 갈무리>
세계 IT업계에 메타버스 바람을 불러온 로블록스의 메타버스 플랫폼 ‘로블록스’는 하루 평균 3260만 명이 이용한다. 한 달 평균 이용자 수는 한 무려 1억6600만 명에 이른다.
게임 플랫폼이라는 특성상 하루 평균 이용시간(156분)은 유튜브의 3배, 페이스북의 7배에 이른다.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1인칭 총싸움게임(FPS) 가운데 하나인 ‘포트나이트’를 개발하고 운영하는 에픽게임즈 역시 메타버스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회사다.
에픽게임즈는 지난해 포트나이트에 ‘파티로얄’이라는 메타버스 모드를 공개했는데 이후 에픽게임즈의 기업가치는 9개월 만에 178억6천만 달러(약 20조 원)에서 287억 달러(약 32조 원)로 무려 60% 상승했다.
국내 IT회사들 역시 메타버스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지만 메타버스시장에서 아직 존재감을 드러내지는 못하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올해 1월 메타버스서비스인 ‘유니버스’를 공개했다. 유니버스는 3월23일 기준 글로벌 누적 내려받기 500만 건을 돌파했다. 넥슨은 3월12일 9개의 신작 프로젝트를 공개했는데 이 가운데 MOD, 페이스플레이 등 2개의 프로젝트가 메타버스와 관련된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기업 가운데 가장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곳은 바로 네이버다. 네이버는 ‘제페토’라는 이름의 메타버스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데, 올해 2월 기준으로 글로벌 누적 이용자 수 2억 명을 돌파했다.
로블록스 안에서 서비스되는 여러 게임 가운데 하나인 ‘타워 오브 헬’의 누적 이용자 수가 106억 명에 이른다는 것을 살피면 매우 적은 숫자이다. 하지만 제페토의 이용자의 90%가 해외 이용자라는 것을 살피면 고무적 수치라는 평가도 나온다.
◆ 네이버 ‘플랫폼’과 ‘케이팝’ 앞세워 세계 메타버스시장 선점할 수 있을까
로블록스, 에픽게임즈와 달리 네이버는 플랫폼 기업이라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이를 활용하면 제페토의 성장성이 매우 높다는 의견도 한쪽에서 나온다.
▲ 제페토를 통해 공개한 블랙핑크 안무영상. <블랙핑크 공식 유튜브 영상 갈무리>
메타버스는 현실을 일정 부분 대체하는 가상세계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플랫폼 비즈니스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현재 대부분의 이용자들은 메타버스 안에서 단순히 게임을 즐기는 데 그치고 있지만, 메타버스사업이 계속해서 성장한다면 쇼핑, 레저 등 여러 가지 활동들을 가상세계에서 즐기게 될 가능성이 높다.
김대욱 네이버제트 공동대표는 최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메타버스의 확장성을 놓고 “스포츠, 게임, 패션, 만화, 그리고 나중엔 교육까지 메타버스가 포괄하는 영역은 넓고 깊다”고 말하기도 했다.
네이버는 커머스사업, 콘텐츠사업 등을 네이버라는 플랫폼 안에 넣어 함께 운영하고 있는 플랫폼 사업자다. 메타버스의 시작 단계에서는 게임회사인 로블록스, 에픽게임즈에 밀리고 있지만 네이버는 이 두 회사보다 훨씬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수익모델의 개발 역시 상대적으로 쉬울 수 있다.
세계적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케이팝’을 등에 업을 수 있다는 점 역시 네이버의 장점이다.
케이팝 열풍을 주도하고 있는 JYP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 하이브 등 국내 엔터테인먼트회사들은 지난해 말 제페토를 운영하는 네이버의 손자회사 네이버제트의 170억 원 규모 유상증자에 일제히 투자했다.
네이버는 세 회사에게 투자를 받는 과정에서 기업공개에 따른 수익을 보장해주는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버가 제페토의 성장을 놓고 자신감을 크다는 방증이다.
네이버는 이런 장점들을 활용해 앞으로 계속 커질 메타버스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수익보다는 확장에 방점을 찍고 있다. 메타버스가 플랫폼 비즈니스의 성격을 띄고 있는 만큼 시장 초반 이용자를 확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네이버는 구찌, 나이키, 노스페이스 등 글로벌 패션 브랜드와 협력해 제페토 안에 가상매장을 차렸다. 국내 뿐 아니라 세계의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끌어올 수 있는 콘텐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글로벌 웹소설 플랫폼 ‘왓패드’에 투자하는 등의 행보도 이어가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