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에서 증권이나 카드, 보험회사들은 은행보다 성과주의가 비교적 폭넓게 도입돼 있다. 직원의 실적을 은행보다 명확하게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증권이나 카드, 보험회사들은 성과급 임금체계를 앞세워 실적을 올려줄 직원을 영입하기도 한다.
그러나 불법적 자기매매나 불완전판매 등 성과주의의 부작용도 자리잡고 있다.
◆ 증권업계, 성과주의 ‘양날의 칼’
증권업계는 성과주의가 비교적 보편화해 있다. 주식위탁매매(브로커리지)나 투자금융(IB) 등 주요사업에서 직원들의 실적을 확실하게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
|
|
▲ 최희문 메리츠종금증권 사장. |
증권사들은 직원의 역량을 평가하는 성과지표를 임금체계에 반영하고 있다. 증권사 임직원들은 높은 수익률을 낼수록 많은 임금을 받게 된다.
메리츠종금증권 직원들은 지난해 상반기 기준으로 성과금을 포함해 1인당 급여로 7216만 원을 받았다. 업계 1위인 NH투자증권의 6천만 원을 뛰어넘는다.
메리츠종금증권이 업계 선두권의 순이익을 냈고 성과급의 비중도 높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증권사 직원들은 일반적으로 전체 수익의 10~20%를 성과급으로 받는데 일부 증권사는 거래 종류와 실적에 따라 40% 이상을 지급하기도 한다”며 “증권사 직원들 가운데 일부는 기본급의 몇배 이상을 성과급으로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증권회사들이 성과주의를 더욱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래야 생산성을 끌어올려 전반적 수익개선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 회장은 “증권업계에도 부가가치를 내지 못하는 인력 등이 쌓이면서 구조조정이 이어지고 있는 만큼 성과주의를 더욱 정착시켜야 한다”며 “성과주의 도입은 금융 선진화를 위해 넘어가야 할 과정”이라고 밝혔다.
전병조 KB투자증권 사장도 올해 신년사에서 “지속가능한 성장과 생존을 하려면 증권사의 모든 부문이 지금 이상의 성과를 내야 한다”며 “올해 그 어느 때보다도 성과주의 문화를 정착시키고 성과에 기초한 경영활동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증권사들의 성과주의가 낳는 폐해도 만만치 않다. 대표적 사례가 불법 자기매매다.
자기매매는 증권사 직원이 그 직원 명의의 계좌로 주식을 사고팔아 수익을 올리는 것을 말한다. 증권사 직원은 자본시장법에 따라 본인 명의로 된 계좌 1개로만 자기매매를 할 수 있고 정기적으로 매매내역을 회사에 알려야 한다.
하지만 신고하지 않는 계좌를 소유하거나 차명계좌로 주식을 사고파는 경우가 잦다. 증권사들은 수수료 수익이 늘기 때문에 이를 눈감아 주기도 한다.
주진형 한화투자증권 사장이 SNS에 “증권업계는 과다한 성과주의에 물들어 있다”며 “소매금융(리테일)의 경우 떳떳하지 못하게 번 돈을 회사와 직원들이 나눠먹는 형국이 진행 중”이라고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 보험기업과 카드기업 성과주의도 명암 엇갈려
보험기업들은 보험설계사 위주로 성과수수료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생명보험업계에서 장기상품 판매수수료를 보험설계사에게 몇 년 동안 분할해 지급하는 방식이 보편화했다. 손해보험은 단기상품을 판매한 뒤 한꺼번에 수수료를 내주는 방식을 주로 채택하고 있다.
|
|
|
▲ 정태영 현대카드 겸 현대캐피탈 부회장. |
카드업계도 카드모집인을 대상으로 성과급 비중을 높이고 있다. 카드모집인이 고객을 유치하면 수당을 지급하고 모집실적에 따라 성과급을 주는 방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보험사와 카드사들은 상품영업 부문에서 성과급의 비중을 크게 높인 반면 일반 사무직을 놓고 회사마다 차이를 보인다”며 “2010년대 초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기업들도 있는 반면 호봉제를 여전히 적용하는 회사도 많다”고 말했다.
보험업계와 카드업계는 성과연봉제를 통해 영업실적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본다. 보험상품이나 카드상품은 보험설계사나 카드모집인의 역량에 의해 판매가 이뤄진다. 이 때문에 성과급의 비중이 높을수록 판매실적이 높은 보험설계사나 카드모집인을 모을 수 있다.
현대카드는 2014년 3월 카드모집인에 대한 인센티브제를 도입한 뒤 다른 부서로도 확대하고 있다. 현대카드는 당시 실제 이용률이 높은 카드를 많이 발급한 카드모집인에게 성과급을 높여 순이익 확대 효과를 냈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카드모집인 외에도 부서별로 다양한 인센티브제를 계속 도입하고 있다”며 “성과급체계를 잘 설계하면 실적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보험회사나 카드회사가 성과급 비중을 키울수록 보험상품이나 카드상품의 불완전판매율이 높아질 수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성과급 비중이 증가하면 보험설계사나 카드모집인이 상품판매에 치중하면서 약관 등 상품내용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거나 왜곡할 가능성도 커진다”며 “이는 고스란히 고객의 피해로 돌아오게 된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으로 금융업계의 민원 1만8456건 가운데 1만1129건(61.2%)을 보험 민원이 차지했다.
카드사를 포함한 비은행권 민원이 3966건(21.5%)으로 보험업계의 뒤를 이었다. 전체 비은행권 민원 가운데 신용카드 관련 민원이 34.2%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