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이 벌크전용선사업부 매각을 추진하면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채권단에 내놓을 현대상선 자구안이 주목되고 있다.
현대상선은 21일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보유자산의 매각 등을 포함하여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그 일환으로 벌크전용선사업부의 매각과 관련해 에이치라인해운과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
|
|
▲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
현대상선은 벌크전용선사업부 자산 등을 담보로 영구채를 발행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영구채 발행이 여의치 않자 매각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매각이 성사되면 현대상선은 1천억 원의 현금을 손에 넣을 수 있다. 5천억 원 규모의 부채도 에이치라인해운에 넘기게 된다.
현대상선이 800%에 이르는 부채비율을 소폭이나마 낮출 수 있게 되는 셈이다.
현대그룹은 조만간 현대상선 자구안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와 채권단은 이 자구안에 따라 현대상선에 대한 추가지원을 결정한다. 이번 자구안마저 채권단으로부터 거부당할 경우 현대상선은 법정관리에 들어갈 수도 있다.
정부는 현대상선의 부채비율을 400%대로 낮춰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현대상선이 이 수준까지 부채비율을 낮추려면 7천억 원 가량을 확보해야 한다.
현대그룹이 영구채 발행, 유상증자, 현대증권 재매각뿐 아니라 알짜 사업부 매각, 대주주 사재출연 등 고강도의 자구안을 내놓을 것으로 업계는 바라본다.
문제는 현대상선이 이제는 매각할 만한 자산을 거의 소유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벌크전용선 사업부를 떼내고 나면 현대상선은 사실상 컨테이너 사업부만 남게 된다.
현대상선이 현대부산신항만 지분을 매각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현대상선은 현대부산신항만 지분의 50%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지분을 매각해도 현대상선이 손에 넣을 수 있는 현금은 100억 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상선이 현대아산 지분을 추가로 매각할 가능성도 있다. 현대상선은 지난해 말 보유하고 있는 현대아산 지분 67.58% 가운데 33.79%를 현대엘리베이터에 매각해 358억 원을 확보했다.
현대증권 재매각은 지난해 10월 불발된 뒤 시장 신뢰를 잃은 상황이라 당장 추진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8.7%를 내놓는 방안도 거론된다. 그러나 이 경우 현대그룹 경영권이 흔들릴 수 있어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
또 다른 방법은 유상증자다.
대주주와 오너 일가 등을 대상으로 한 3자 배정 방식의 유상증자가 현재로서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업계는 보고 있다. 일반공모 방식의 유상증자는 현재 현대상선 주가를 고려할 때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현대상선은 올해 4월 말과 7월 말 각각 2208억 원, 2992억 원의 채권 만기가 돌아온다. 이 가운데 기간 내 반드시 갚아야 하는 공모채 규모는 각각 1200억 원, 2400억 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상선은 4월에 갚아야 하는 자금을 조달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현대그룹은 2013년 말 3조3천억 원대의 자구안을 발표한 뒤 이를 순조롭게 이행했다. 그러나 현대증권 매각이 불발되고 현대상선 실적도 악화되면서 유동성 위기를 다시 맞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