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중공업은 6년 연속 적자가 거의 확실한 상태인 만큼 최대 과제는 적자 탈출이다. 재고로 보유한 드릴십(심해용 원유 시추선) 5기의 처분에 달렸다.
▲ 정진택 삼성중공업 대표이사 사장 내정자.
8일 삼성그룹의 중공업계열사 사장단인사에서 정진택 삼성중공업 조선소장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해 새 대표이사에 내정됐다.
남준우 삼성중공업 대표이사 사장의 임기가 2021년 1월25일 종료되는 데 따른 교체인사다.
삼성중공업의 만성적 적자를 끊어내고자 하는 그룹 차원의 쇄신 의지가 반영된 인사로 해석된다.
삼성중공업은 2015~2019년 5년 연속으로 영업손실을 봤는데 이 기간 누적 적자가 3조1991억 원이다. 올해도 3분기까지 영업손실 7690억 원을 만큼 6년 연속 적자를 볼 가능성이 높다.
정 신임 사장의 최대 과제는 삼성중공업의 흑자전환 달성이다.
정 사장은 1961년 8월5일 태어나 부산대학교 조선공학과를 나왔다.
1984년 삼성중공업 선장설계부에 입사한 엔지니어 출신이지만 일찌감치 사장후보군에 든 것으로 보인다. 1995년 파견의 형태로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대학원에 입학해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삼성중공업에서 영업팀장 상무, RM(리스크매니지먼트)팀장 전무, 기술개발본부장 부사장, 조선소장 등을 차례로 거쳤다. 설계와 영업, 생산, 경영지원 등 조선소의 모든 업무를 두루 경험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정 사장이 팀장을 지냈던 RM팀은 삼성중공업에서 해양플랜트 등 리스크 발생 가능성이 높은 일감의 위험도를 따지고 관리하는 조직이다.
삼성중공업이 흑자전환을 위해 드릴십 문제를 해결하고 해양플랜트 수주에 더욱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만큼 정 사장이 축적한 리스크 관리의 경험이 앞으로 더욱 요구될 수밖에 없다.
정 사장이 우선 삼성중공업의 재고 드릴십 문제를 풀어내는 데 매달릴 것으로 보인다.
삼성중공업은 2013년 미국 퍼시픽드릴링(PDC)에서 수주한 드릴십 1기를 시작으로 노르웨이 시드릴(Seadrill)에서 수주한 2기, 그리스 오션리그(현 트랜스오션)에서 수주한 2기 등 모두 5기의 드릴십을 재고자산으로 보유하고 있다.
재고 드릴십 5기의 계약가격은 29억9천만 달러(3조2400억 원가량)인데 삼성중공업은 이 가운데 10억1천만 달러의 선수금을 받았을 뿐이다.
올해 코로나19로 원유 수요가 줄어 해양 시추시장도 큰 타격을 입었다. 이에 따라 삼성중공업은 드릴십의 자산가치 하락분을 2분기 실적에 반영했고 2분기 영업손실 7077억 원을 봤다.
정 사장이 드릴십을 빠르게 처분하는 일은 현재로서는 매우 어려워 보인다.
시추시장 분석기관 인필드리그(Infield Rigs)에 따르면 글로벌 드릴십 가동률은 올해 초만 해도 80%에 육박했으나 12월 첫째 주(11월29일~12월5일) 65%까지 하락했다.
가장 중요한 원유의 수요도 문제다.
석유수출국기구와 기타 산유국 모임(OPEC+)은 앞서 3일 회의를 열고 2021년 1월부터 산유량을 하루 50만 배럴을 늘리기로 합의했다. 현재 산유국들이 원유 생산량을 하루 770만 배럴 축소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질적으로 하루 720만 배럴의 감산 기조가 유지되는 것이다.
조선업계 일각에서는 정 사장이 재고 드릴십을 판매하는 것뿐 아니라 시추시장이 회복될 때까지 드릴십을 활용한 수익 창출도 염두에 두고 드릴십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시선이 나온다.
삼성중공업도 재고 드릴십의 판매를 포함해 용선계약도 추진하는 등 다각도로 현금 회수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수주 측면에서는 정 사장이 삼성중공업을 흑자로 돌려놓을 기반이 어느 정도 마련됐다.
전임 남준우 사장은 일회성비용의 리스크가 큰 해양플랜트의 의존도를 줄이고 LNG(액화천연가스)운반선, 초대형 컨테이너선, 셔틀탱커(해양플랜트와 육상 원유 저장기지의 왕복 운항에 특화된 원유운반선) 등 고부가 선박 중심의 수주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삼성중공업 수주잔고의 질을 개선해왔다.
이미 삼성중공업의 매출에서 해양부문의 비중은 2017년 57%에서 2019년 38%까지 줄어 있다. 수주잔고를 고려했을 때 해양부문의 매출비중은 올해 30% 안팎까지 더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조선소의 실적은 수주실적에서 나오는 만큼 정 사장도 수주에서 전임 남준우 사장의 전략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정 사장은 조선업과 관련한 폭넓은 지식과 글로벌 역량을 보유한 전문가”라며 “삼성중공업이 당면한 조선해양사업의 위기 극복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갈 것이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