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0조 원이 넘는 금액을 들여 인텔 메모리사업을 품으면서 반도체사업을 향한 의지를 다시 확인했다.
20일 SK하이닉스는 인텔의 낸드사업 전체를 10조3천억 원에 인수한다고 밝혀 국내 기업 인수합병 사상 최대 규모 거래라는 기록을 세웠다.
최 회장이 이전에 진행한 SK하이닉스 인수(3조4천억 원), 키옥시아 지분투자(4조 원)는 물론 기존 국내 최대 인수합병 거래였던 삼성전자의 하만 인수(9조3천억 원)을 뛰어넘는 초대형 인수합병이다.
이런 초대형 인수합병이 단순히 계열사 차원에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닌 만큼 최 회장의 의지가 담겼다고 보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SK그룹 전체 연간 영업이익(9조9천억 원)을 넘는 규모의 자금 투입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반도체사업을 키우겠다는 최 회장의 의지가 강한 것으로 해석된다.
최 회장은 2011년 주변의 부정적 시선을 무릅쓰고 SK하이닉스를 인수한 뒤 반도체사업을 그룹의 중심에 놓고 있다.
SK하이닉스 인수 이후 SK그룹은 석유화학회사에서 정보기술(IT)회사로, 내수기업에서 수출기업으로 체질을 완전히 탈바꿈하는데 성공했다. 최근에는 배터리, 바이오 등 신사업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이번 인텔 메모리사업 인수로 SK그룹의 주력이 반도체임을 재확인했다.
최 회장은 반도체 소재사업을 키워 SK하이닉스를 축으로 한 반도체사업 수직계열화도 진행하고 있다. 2015년 이후 SK머티리얼즈, SK에어가스, SK트리켐, SK실트론, SK쇼와덴코 등을 인수하거나 합작설립해 반도체 소재사업을 강화했다.
2020년 들어서도 SKC의 SKC솔믹스 완전자회사 편입, SK머티리얼즈의 포토레지스트사업 진출, SK실트론 실리콘카바이드 웨이퍼 사업 인수 마무리 등으로 수직계열화를 가속화했다.
코로나19로 경영환경이 악화하고 낸드 등 메모리반도체업황이 부진한 가운데 최 회장이 인수 결단을 내린 것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최 회장이 SK하이닉스 인수 때와 마찬가지로 승부사 기질을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은 4월 최종건·최종현 선대회장을 추모하는 메모리얼데이 행사에서 창업정신을 강조하며 ‘근본적 변화(딥체인지)’를 요구했다. 그는 구성원들에게 “치열한 저력으로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한 번 도약하는 새역사를 써내려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6월 확대경영회의 때는 그룹 경영진들과 기업가치를 높이는 방안을 논의하면서 “기업 성장을 가로막는 구조적 한계를 ‘주어진 환경이 아닌 ’극복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딥체인지가 가능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SK하이닉스 낸드사업은 적자에 놓여 있는데 불리한 경영환경에서 오히려 대규모 인수를 진행하면서 최 회장이 추구하는 ‘딥체인지’를 구현했다는 시각도 나온다.
다만 최 회장이 인텔 메모리사업 인수 이후 풀어야 하는 과제도 상당하다. 당장 10조 원이 넘는 자금조달은 물론 현안으로 남아있는 지배구조 개편 문제도 더욱 부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2분기 말 기준 SK하이닉스의 현금성자산은 3조9천억 원인데 차입금은 12조 원을 넘어 재무부담이 작지 않다. 그룹 차원의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하지만 SK그룹 전체의 현금성자산도 7조5천억 원 수준으로 넉넉한 편은 아니다.
SK-SK텔레콤-SK하이닉스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도 문제다. 지주회사 SK의 손자회사인 SK하이닉스의 국내 투자활동에 제약이 있어 SK하이닉스를 지주회사의 자회사로 두는 지배구조 개편 필요성이 제기된다.
인텔 메모리사업부 인수 이후 SK하이닉스 기업가치가 커지면 지배구조 개편에서 지주회사가 SK하이닉스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소요되는 자금이 많아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최 회장이 SK하이닉스의 인텔 메모리사업부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모회사인 SK·SK텔레콤의 출자와 지배구조 개편을 동반해 진행할 가능성도 떠오른다.
최 회장이 인텔 메모리사업부 인수와 관련해서 직접 메시지를 낼지도 주목된다. 최 회장은 21일부터 제주도에서 SK그룹 CEO 세미나를 열고 경영전략을 점검한다. 이 자리에서 관련 내용을 꺼낼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