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재 기자 piekielny@businesspost.co.kr2020-09-22 15:3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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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헬기 수리온이 국내 지방자치단체의 소방헬기 도입사업에서 둘쭉날쭉한 기준 탓에 입찰 단계부터 참가를 제한당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항공업계에서는 국내 항공산업 발전을 위해서라도 각 지역 소방본부뿐 아니라 국내 관공서들이 국내 기술로 만들어진 수리온 도입과 관련해 전향적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제주소방본부가 운용하고 있는 수리온 소방헬기.
22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만드는 수리온 기반의 소방헬기는 전북소방본부와 광주소방본부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헬기 도입사업에서 입찰기회를 얻지 못했다.
전북소방본부와 광주소방본부는 소방헬기의 최대 항속거리로 수리온이 보유한 680km보다 20km 많은 700km 이상을 요구했다.
올해 수리온 도입을 결정한 경남소방본부와 현재 소방헬기 입찰을 진행 중인 소방청 중앙119구조본부가 최대 항속거리로 500km 이상을 요구한 기준을 훌쩍 뛰어 넘는다.
전북소방본부와 광주소방본부는 입찰에 참여하는 소방헬기의 주요 장비조건으로 주회전익 거리측정장비를 갖출 것도 조건으로 내걸었다.
주회전익 거리측정장비는 장애물이 가까이 있으면 신호를 주는 충돌방지장치의 일종인데 이 장비는 독자적으로 기술을 개발한 이탈리아 업체 레오나르도만 보유하고 있다.
수리온은 주회전익 거리측정장비는 갖추고 있지 않지만 한국형 3차원 전자지도 등 첨단 항공전자시스템을 탑재해 도서 산간지역에서도 안전한 임무 수행을 지원하고 있지만 이런 부분은 고려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전북소방본부와 광주소방본부가 최대 항속거리와 주요 임무장비 등에서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어 입찰 단계부터 사실상 수리온을 배제했다는 말이 나온다.
수리온이 국내 소방헬기 도입사업에서 입찰 단계부터 기회를 얻지 못한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전국 지자체는 2014년부터 지금까지 모두 8건의 소방헬기 입찰을 진행했는데 수리온이 조건을 충족해 입찰에 참여한 것은 2015년 제주소방본부와 2020년 경남소방본부 등 단 2건에 그친다.
산림청이나 경찰청이 중앙에서 조달조건을 관리하는 동시에 수리온에도 동일한 경쟁 기회를 제공하는데 비해 소방청은 각 지자체별로 별도의 기준을 적용하다보니 운용기종도 12종에 이른다.
소방청은 국내 정부기관 가운데 산림청에 이어 2번째로 많은 31대의 관용헬기를 보유하고 있는데 48대 헬기를 운용하는 산림청보다 운용기종이 2배 많다.
항공업계에 따르면 운용기종이 많으면 자연스럽게 유지보수비용, 훈련사 교육비용 등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와 달리 수리온은 이미 국내에 헬기전문 훈련센터를 갖추고 있어 해외업체 제품을 선택했을 때와 비교해 교육 훈련비도 3분의 1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하영제 국민의힘 의원이 8월 말 소방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수리온은 1대당 1년 외주검사 비용이 1억6500만 원에 그치지만 수리온의 경쟁모델인 이탈리아의 AW-139는 4억4600만 원에 이른다.
수리온은 육군 기동헬기(KUH-1)로 개발된 뒤 상륙기동, 의무후송전용, 경찰, 소방, 산림, 해경 등 모두 7개 기종으로 파생됐다.
2012년 민관 합작으로 개발비 1조3천억 원을 들여 국내 자체 기술로 개발한 헬기인 만큼 소방청을 비롯해 국내 관공서들이 수리온 도입에 더 적극적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내 항공산업 경쟁력 강화는 물론 해외 수출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국회에서도 수리온의 국내 소방헬기 도입 확대에 지속해서 힘을 싣고 있다.
▲ 하영제 국민의힘 의원.
국내 항공산업의 중심 도시로 꼽히는 경남 사천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하영제 의원은 6월 정문호 소방청장을 직접 만나 수리온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하 의원은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소방청장을 만나 임무수행과 안전운항에 문제가 없다면 국산헬기 도입에 적극 나서달라고 요청했다”며 “수리온을 민수분야인 소방헬기로 확대 보급해 일자리 창출과 함께 국내 항공산업을 활성화하고 국제 경쟁력을 강화해 해외시장 진출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7월 지자체의 물품 조달시 국산제품 도입을 우선 검토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열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홍 의원은 법안 제안이유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미국, 중국 등은 경기침체 장기화에 따라 ‘바이 내셔널(Buy National)’로 불리는 이른바 자국산 우선사용제도를 다양한 형태로 실시하고 있다”며 “우리도 이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헬기는 보통 30년이 넘으면 교체한다. 국내 정부기관에서 운용하고 있는 관용헬기는 모두 121대인데 이 가운데 사용한 지 20년이 넘는 노후헬기는 전체의 46%인 56대에 이른다.
내년에는 경북·인천·강원·부산소방본부 등이 소방헬기 교체를 앞두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