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SK 관계자는 “말만 바꾸자 바꾸자 해서는 바뀌지 않기 때문에 ‘딥체인지’의 실행을 위해 ‘공유오피스’ 등 일하는 방식에서 혁신적 제도들을 도입한 것”이라며 “기업이 실질적으로 변화하려면 일하는 환경을 바꾸든가 인사평가제도 등이 달라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태원 회장에게 일하는 방식의 혁신은 그룹의 경영전략인 ‘딥체인지(근본적 변화)’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딥체인지를 위한 수단이다.
최 회장은 아무도 가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가기 위해서는 ‘패기’ 있는 아이디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고 바라봤다.
구성원들이 새로운 시도, 엉뚱한 아이디어도 내놓을 수 있는 조직문화와 업무시스템, 업무방식이 급변하는 시장상황에서 기업의 지속생존을 이끄는 핵심 열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SK그룹 내에서는 미국 필름기업 코닥의 사례가 반면교사로 자주 거론된다.
코닥의 신사업팀은 1975년 세계 최초로 디지털카메라를 개발했다. 1981년 사내 보고서를 통해 디지털카메라의 시대가 다가올 것이라고 예견까지 했다. 하지만 코닥의 디지털카메라는 사내 의사결정 과정에서 주력 사업부문인 필름부문에 밀려 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그대로 사장됐다.
코닥은 조직 내부에 디지털카메라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아이디어와 실질적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는데도 스스로 그 기회를 내버렸던 셈이다.
SK그룹에 따르면 최 회장은 일하는 방식부터 기존의 틀을 벗어나야 기업의 미래를 도모할 수 있다는 신념을 최근 수년 동안 그룹 경영진과 임직원들에게 강조했다.
최 회장은 2016년 그룹 각 계열사 최고경영진들과 함께 한 ‘CEO세미나’에서 ‘패기’를 SK그룹 조직원의 핵심 자질로 규정했다. 구성원들의 ‘패기’가 SK그룹의 딥체인지 방향을 제시하고 실행해갈 원동력이라고 봤다.
최 회장은 2017년 신년사에서 “패기있는 구성원이 더 많은 인정과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빠른 시일 안에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2018년에는 신입사원과 대화에서 “기준과 규칙으로 굴러가지 않는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다”며 “새 시대의 인재는 패기와 함께 삶과 일을 스스로 디자인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일하는 방식의 혁신’을 위해 가장 먼저 일하는 공간에 변화를 줬다.
정해진 조직과 공간에서 정해진 시간을 들여야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라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협업과 소통을 활성화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SK그룹은 최 회장의 주문에 따라 2018년 11월 19년 만에 서린동 사옥을 리모델링해 SKE&S, SK종합화학, SK루브리컨츠 등 그룹의 에너지 계열사 사무실을 ‘공유오피스’ 형태로 만들었다.
공유오피스는 직원들이 정해진 자리가 없는 사무실이다. 소속 회사와 부서 등에 얽매이지 않고 당시 진행하는 업무에 필요한 부서, 필요한 게열사의 구성원들과 함께 일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지주회사 SK,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SK하이닉스 등 SK그룹의 주력 계열사들은 현재 모두 이 공유오피스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최 회장은 낡은 직급문화도 바꾸고 있다.
SK그룹은 최근 직급별 차종 제한이 없는 공용기사제도를 도입했다. 상무는 그랜저, 전무는 제네시스 등 임원 직급별로 정해져 있던 전용 차량을 없애고 직급별 포인트로 스스로 차량을 선택할 수 있게 했다.
SK그룹은 수평적 조직문화 구축을 위해 2019년 8월1일부터 부사장, 전무, 상무로 구분하던 임원 직급체계를 폐지하고 본부장, 그룹장 등 직책 중심으로 바꿨다.
또 일하는 방식의 혁신이란 단순히 근무형태나 업무체계의 변화 등 회사 업무시스템과 조직문화를 바꾸는 것에 국한한 개념이 아닌 인공지능 기술 등을 업무현장에 적용하는 것을 포함한다.
예를 들어 SK그룹의 계열사 SK매직은 올해 7월 워크숍에서 ‘매직아이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는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해 실수나 고의로 렌털계약이 잘못 체결되는 것을 잡아내는 시스템부문의 혁신이다. SK매직은 매직아이 시스템으로 고객 신뢰도와 만족도를 높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본다.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 공정의 불량사례를 디지털 이미지로 축적한 뒤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해 불량률를 낮추는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최 회장은 코로나19가 발생한 올해 3월 직접 한 달 넘게 재택근무를 하면서 느낀 점을 공유하고 체계적 워크시스템으로 정착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SK그룹은 재택근무 경험을 활용한 상시 유연근무제, 화상면접을 통한 비대면 채용 등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며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SK그룹이 새로운 근무형태 등을 발빠르게 도입하는 기업이기는 하지만 다른 기업들과 특별나게 차별화된 업무환경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연근무제, 지정좌석을 없앤 업무환경, 디지털기술의 업무현장 도입 등은 다른 기업들도 대부분 도입하고 있는 제도들이라는 것이다. [비즈니스포스트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