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삼구 전 금호그룹 회장이 거의 유일한 알짜계열사인 금호산업을 지키기 위해 아시아나항공 구주 매각가격을 낮추는 선택을 할까?
박 전 회장은 아시아나항공 매각 무산으로 차입금을 갚지 못하면 금호산업 지배력을 잃을 수도 있다.
▲ (왼쪽부터) 박삼구 전 금호그룹 회장과 박세창 아시아나IDT 대표이사 사장. |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 인수포기 가능성을 열어두고 구주 가격 인하를 요구하면 난처한 상황에 놓일 수 밖에 없는 셈이다.
11일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KDB산업은행 등 아시아나항공 채권단과 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조건 재협상 과정에서 박 전 회장은 현대산업개발이 내놓을 구주 가격 조정 요구에 촉각을 세울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박 전 회장은 아시아나항공 구주 매각을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금호고속과 금호산업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신사업을 펼치겠다는 계획을 세워뒀다.
박 전 회장의 아들인
박세창 아시아나IDT 대표이사 사장은 지난해 7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아시아나항공의 매각대금은 차입금 상환을 비롯한 그룹의 중장기 미래를 위해 사용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조건 재협상에서 구주 가격을 낮춰야 한다고 요구한다면 이런 계획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
현대산업개발이 재협상에서 금호산업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구주 가격 인하를 요구할 가능성은 높게 점쳐진다.
현대산업개발이 바라봤을 때 금호산업으로부터 아시아나항공 구주를 매입하는데 들어가는 3228억 원은 전체 인수비용 2조5천억 원 가운데 유일하게 유상증자 등 아시아나항공 재건에 쓰이지 않고 외부로 빠져나가는 돈이다.
현대산업개발로서는 아시아나항공 인수비용을 낮추는 데 구주 가격을 깎는 것이 최우선 과제일 수 있는 셈이다.
아시아나항공 구주는 1주당 가격이 4700원으로 책정돼 있다. 아시아나항공 주가는 최근 크게 올라 4300원대를 오르내리고 있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3월 한때 2200원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현대산업개발이 상당히 큰 폭의 구주 가격 인하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금호산업은 구주 매각 계약의 당사자인 만큼 구주 가격 유지를 주장할 권리를 보유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현대산업개발이 구주 가격이 만족할 만큼 낮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포기하면 박 전 회장은 금호산업 지배력을 완전히 잃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고심이 클 수 밖에 없다.
박 전 회장은 금호산업의 최대주주인 금호고속의 지분을 보유함으로써 금호산업을 지배하고 있다.
금호고속은 산업은행에 1300억 원을 차입하며 보유하고 있던 금호산업 지분 45%를 모두 담보로 제공했다.
박 전 회장은 금호산업에 아시아나항공 매각대금이 들어오면 배당 등을 활용해 금호고속으로 자금을 옮겨 차입금을 상환할 것으로 업계는 바라봤다.
하지만 아시아나항공 매각이 무산되면 이런 계획을 실행할 수 없게 되면서 산업은행이 금호산업 지분에 담보권을 실행하는 방안이 현실화할 수 있다.
금호고속은 보유자산 대부분을 이미 금융기관에 담보로 제공한 데다 코로나19로 경영 악화까지 겹쳐 2021년 1월이 만기인 차입금을 자체적으로 갚을 능력이 없는 것으로 분석된다.
금호고속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현금성 자산을 219억 원 보유했다. 목포터미널, 대전터미널 등 주요 자산은 SC제일은행, 광주은행, 신한은행 등에 이미 담보로 잡혀 있다.
금호그룹이 사실상 금호고속과 금호산업만 남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시아나항공 매각 무산으로 박 전 회장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마지막 회사까지 잃을 수 있는 셈이다.
금호산업은 지난해 기준 시공능력평가 순위 20위에 오른 건설사다. 1분기 매출 3570억 원, 영업이익 166억 원을 거뒀고 올해 전체 600억 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비즈니스포스트 감병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