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법조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법무부는 한 전 총리사건의 진상조사를 놓고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법무부는 구체적 진상조사 방안이 마련되면 이를 발표한다는 방침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추 장관이 실효성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쉽지 않다는 시선이 법조계에 자리잡고 있다.
추 장관이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진상조사 방법은 확정된 재판의 대표적 구제수단인 ‘재심’이다.
하지만 한 전 총리사건이 형사소송법 제420조가 규정한 재심요건에 해당되지 않을 수 있다.
한 전 총리사건의 진상조사 요구를 불러온 고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의 비망록은 당시 재판에 증거로 제출됐기 때문에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5호의 ‘형의 면제 또는 원판결이 인정한 죄보다 경한 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당시 수사 검사의 진술 강요를 같은 조 제2호 ‘원판결의 증거된 증언, 감정, 통역 또는 번역이 확정판결에 의하여 허위인 것이 증명된 때’로 볼 수 있으나 이는 당시 수사 검사의 모해위증 교사 유죄판결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에서 맞지 않다.
출범을 준비하고 있는 공수처를 활용하는 방법 역시 추 장관이 고려해 볼만한 선택지다.
공수처 수사를 통해 당시 한 전 총리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불법이 있었는지 직접 살펴 볼 수 있는데다 그 과정에서 수사 검사의 모해위증 교사 혐의를 밝혀낼 수도 있다.
하지만 공수처는 민주당과 통합당 사이 의견 차이가 큰 만큼 출범시기가 언제가 될지 장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추 장관이 뽑아들기 쉽지 않은 카드로 보인다.
당시 수사 검사의 행위가 10년 전인 2010년에 벌어진 일이라는 점도 변수가 될 수 있다. 모해위증죄의 공소시효는 10년이지만 공수처의 수사 대상인 검사의 직권남용 등의 공소시효는 7년이다.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이 운영했던 과거사위원회 형식의 독립기구를 활용하는 방안도 나오지만 한 전 총리 관련 개별 사건 하나를 놓고 위원회를 꾸리는 것은 추 장관에게 정치적 부담이 크다.
통합당의 거센 반대가 예상된다는 점도 진상조사의 큰 걸림돌 가운데 하나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24일 민주당의 한 전 총리사건 진상조사 요구에 "대한민국의 사법체계를 무시하는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주 원내대표는 2017년 바른정당 원내대표 시절에도 이와 관련해 "여당의 태도는 헌정 질서를 무시하고 우리 사법제도를 전면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결국 현실적으로 추 장관이 시도해 볼 수 있는 방법은 법무부 자체 진상조사를 실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법무부의 자체 진상조사는 법적으로 강제수사 권한이 없어 한계가 명확하다.
하지만 이를 통해 당시 검찰수사의 강압성과 부당함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추 장관이 법무부 자체 조사를 통해 검찰개혁의 정치적 명분을 쌓는 일에 주력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도 나온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법무부 자체 진상조사가 지닌 한계에도 한 전 총리의 명예를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법무부 조사 결과 한 전 총리를 향한 긍정적 여론이 우세해 지면 재심 같은 직접적 구제절차가 아니더라도 복권을 통한 명예회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당대표를 맡았던 때 한 전 총리사건을 놓고 “정치적으로 억울한 사건”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한 전 총리사건 진상조사 요구는 고 한 전 대표의 옥중 비망록이 14일 뉴스타파를 통해 보도되면서 촉발됐다. 고 한 전 대표는 한 전 총리의 정치자금법 위반 재판에서 핵심증인이었다.
고 한 전 대표의 비방록은 2010년부터 2011년 사이에 작성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비망록에는 “검사의 강요로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줬다고 진술했다” “당시 6억 원이 한나라당 친박계에 제공됐는데 검찰이 알고 있으면서 덮어버리고 한 전 총리 쪽으로 조작한 것”이라는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비즈니스포스트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