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쓰오일은 대규모 투자계획을 앞둔 상황에서 1분기 막대한 적자를 냈다. 알 카타니 CEO는 재무 개선에 1년 남짓의 여유가 있지만 눈앞의 정유업황이 부진해 대책 마련이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 후세인 알 카타니 에쓰오일 CEO.
28일 에쓰오일에 따르면 1분기 잠정집계된 영업손실 1조73억, 순손실 8806억 원은 창사 이래 최악의 실적이다.
막대한 적자는 현금 창출력의 감소로 이어져 재무구조를 악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에쓰오일은 2015년 5조 원에 이르는 슈퍼 프로젝트(SUPER Project, S-oil Upgrading Program of Existing Refinery 의 앞글자를 딴 것)의 투자를 진행하기 전까지만 해도 부채비율이 105%로 매우 안정적 재무구조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1분기 말 기준 에쓰오일의 부채비율은 192.2%로 집계됐다. 창사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알 카타니 CEO도 에쓰오일의 재무구조 악화라는 난제에 직면했다.
에쓰오일은 앞서 27일 열린 2020년 1분기 콘퍼런스콜에서 중질유 수첨탈황설비(RHDS)의 증설 투자를 놓고 업황을 관망하겠다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이 증설은 2021년 초 설비 가동이 애초 목표였다.
알 카타니 CEO의 고민이 더 깊어질 수 밖에 없게 됐다. 지난해 에쓰오일이 슈퍼 프로젝트의 2단계 투자계획까지 세워뒀기 때문이다.
2단계 슈퍼 프로젝트는 나프타와 부생가스를 투입해 연 150만 톤의 에틸렌을 생산하는 스팀 분해설비(스팀크래커)와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등 고부가 화학제품을 만드는 올레핀 다운스트림설비를 짓는 계획이다.
5조 원이 투입됐던 1단계 계획은 당시 ‘단군 이래 최대의 석유화학 투자’로 불렸다. 그런데 2단계 계획의 예상 투자비용은 7조 원이다.
에쓰오일은 콘퍼런스콜에서 이 투자의 의사결정시기를 2021년 초로 밝혔다. 알 카타니 CEO에게 재무구조 개선의 여유가 1년 남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알 카타니 CEO가 앞으로 에쓰오일의 1분기 적자를 만회하며 재무구조를 개선할 수 있을지를 장담할 수 없다. 정유업황이 말 그대로 사상 최악의 시기를 지나고 있어서다.
에쓰오일의 1분기 적자 1조73억 원 가운데 원유재고의 평가손실분이 7210억 원이다. 정유업계는 에쓰오일이 2분기에도 재고 평가손실에 시달릴 것이라고 본다.
3월 말까지만 해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배럴당 20달러를 오가고 있었다. 그런데 앞서 20일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는 배럴당 –37.63달러에 거래월을 마쳤다.
선물 투자자들이 실물 인도를 극도로 꺼린 탓에 국제유가의 집계가 시작된 이후 최초의 마이너스 유가로 거래월을 끝냈다.
다음 월물 인도분의 서부텍사스산 원유도 거래상황이 좋지 않다. 6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는 이미 배럴당 10달러선을 위협받고 있으며 7월 인도분도 20달러선을 내주고 27일 18.2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정유제품의 수익성도 나빠 재고 평가손실을 상쇄할 수조차 없다.
4월 넷째 주(20~24일) 정제마진은 배럴당 –0.9달러로 집계됐다. 정제마진은 3월 셋째 주(3월16일~3월20일) 이후로 6주째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정유사들의 손익분기점으로 알려진 4달러는커녕 정제설비를 가동하는 것만으로도 정유사들이 손실을 보는 수준이다.
올해 하반기부터 코로나19의 확산세가 진정될 것이라는 기대가 업계 전반에 퍼져 있다. 그러나 이것이 곧바로 정제마진의 개선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승재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정유제품은 수요의 충격과 비교해 공급 감소분이 충분하지 않아 재고가 쌓이고 있다”며 “하반기 시황 반등에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내다봤다.
에쓰오일도 콘퍼런스콜을 통해 코로나19 탓에 쌓인 정유제품 재고가 모두 소진된 뒤부터 정제마진이 개선될 것으로 예상했다. 항공유나 디젤유는 비교적 빠른 시기에 시황이 반등할 것이나 휘발유는 재고가 많이 쌓여 있어 수요 회복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알 카타니 CEO는 앞으로 집행할 대규모 투자금의 상당 부분을 외부에서 차입한다는 선택을 고려하기도 쉽지 않다.
1분기 말 기준으로 에쓰오일의 자기자본 대비 순차입금 비율은 122.3%다. 2016년 7.9%에서 꾸준히 늘었다.
일반적으로 이 지표가 50% 미만이어야 차입 여력이 충분하다고 본다. 그러나 에쓰오일은 차입 여력은커녕 이미 남의 돈으로 굴러가는 회사가 됐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