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는 진정한 블랙스완.”
미국 CNBC는 코로나19에 따른 동시다발적 경제위기를 이렇게 진단했다.
블랙스완이란 ‘검은 백조’라는 의미로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뜻한다. 미국의 투자전문가인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가 그의 저서 검은 백조(The black swan)를 통해 2008년 금융위기를 예측하면서 유명해졌다.
지금이 진정한 블랙스완이라는 CNBC의 진단은 코로나19에 따른 금융위기가 2008년보다 심각해질 수 있으며 예측이 어려운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지금은 2008년보다 더 심각한 상황일까.
19일 오석태 SG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비즈니스포스트와 전화통화에서 “더 심각하다, 덜 심각하다를 떠나 우리가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본질적으로는 부동산시장에서 비롯된 금융위기라는 건 항상 있었고 결국은 금융시스템이 만든 것이지만 이번 문제는 바이러스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통제불능”이라고 진단했다.
실제 각국 중앙정부의 정책공조에도 글로벌 금융시장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있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다 싶었지만 주식은 바닥을 모르고 곤두박질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2008년과 지금은 위기 발생의 구조부터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2008년에는 금융위기가 먼저 터지고 실물경제가 위축됐다면 지금은 코로나19로 실물경제에서 비롯된 위기가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치면서 양 쪽이 동시에 충격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위기가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데다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제한되면서 위기가 더욱 커졌다.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되고 소비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경제활동 자체가 급속도로 마비되고 있는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는 미국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에서 비롯됐다. 금융시장이 붕괴되면서 주택 가격이 급락했고 자산도 줄면서 소비자들의 자금력이 줄어들며 시작된 ‘수요 충격’이다.
그러나 코로나19에서 시작된 이번 위기는 이전과는 다르다. 우선 현재의 금융시장은 당시와 다르게 안정적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번 위기에는 또 금융시장과 전혀 무관한 ‘방역’의 문제가 얽혀있다. 언제 안정될지 모른다는 코로나19 자체의 불확실성은 이번 위기의 가장 큰 뇌관으로 꼽힌다. 코로나19의 지속 여부에 따라 경제적 파장이 잠재적으로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여기에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의 대응여력이 많지 않다는 점은 불안을 더욱 키우는 요인이다. 이미 기준금리가 충분히 낮아 통화정책의 여지가 크게 줄었다.
2008년 당시의 해법은 비교적 간단했다. 원인이 명확한 만큼 금융시장의 부실을 거둬내 위기의 불씨가 실물경제로 옮겨가지 못하도록 하면 됐다.
중앙은행이 구원투수로 나섰다.
당시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기준금리 인하와 양적 완화(QE)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장기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을 직접 사들여 시중에 돈을 풀었고 이를 통해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린다는 의미의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연준은 1년3개월 사이 기준금리를 0.25%까지 5%포인트나 내렸다. 양적 완화를 통해 시장에 돈을 푼 결과 2007년 5조 달러대였던 글로벌 유동성은 2013년 9조~10조 달러 수준까지 늘었다. 이 달러들이 수익률이 높은 신흥국시장으로 주로 흘러들어가 위기 진화에 한몫했다.
영국, 일본, 유럽 등 주요국의 중앙은행들도 기준금리를 일제히 낮추는 정책공조를 통해 유동성을 확대했다.
오석태 이코노미스트는 “금융위기는 당시에는 끔찍하지만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보면 해법을 다 안다”며 “바이러스는 당장 오늘 밤에 이탈리아에서 몇 명의 확진자가 나오고 몇 명이 사망할 지 우리가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도 금융시장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각국의 정책공조에도 별다른 효과가 없는 이유를 놓고는 “진짜 리스크에 대한 대응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결국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과거의 매뉴얼대로 할 수 있는 방안을 모두 쏟아낸 뒤 바이러스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실제 지금은 세계 금융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연준이 꺼내든 카드가 전혀 먹혀들지 않고 있다. 연준은 최근 보름 사이에 기준금리를 1.5%포인트나 내렸다. 유동성 공급을 위해 7천억 달러 규모의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도 매입하기로 했다. 그러나 증시가 반등하기는커녕 오히려 급락했다.
미국 정부도 연일 경제부양책을 쏟아내고 있다. 급기야 국민에게 직접 현금을 쥐여주는 방안도 등장했다.
각국 중앙은행과 정부도 정책공조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금융시장의 불안감은 높아지고만 있다. 3월 들어서만 26개국이 기준금리 인하에 동참한 것으로 파악됐다. 대부분이 한 번에 금리를 0.50%포인트 이상 인하하는 이른바 ‘빅 컷’이다.
그럼에도 시장은 더 얼어붙고 있다. 어떠한 처방도 먹히지 않는 초유의 사태라는 비관론도 이미 나오고 있다.
오석태 이코노미스트는 “그냥 금융시장을 한 달 문 닫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한다”라며 “소셜 디스턴스(사회적 거리두기)뿐만 아니라 ‘파이낸셜 디스턴스’(금융 거리두기)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2000포인트를 오가던 코스피지수가 1400포인트대로 무너지는 데 걸린 시간은 단 9영업일에 그친다.
코스피지수가 처음 2000포인트를 돌파한 건 2007년 7월25일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2008년 10월 1000포인트대가 무너졌고 다시 2000포인트를 회복하기까지는 2년2개월이 걸렸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