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의 경영권 승계 수단으로 시스템통합(SI)업체가 단골로 활용되고 있다.
삼성그룹, SK그룹 등은 오너 일가가 SI업체를 세우거나 인수한 뒤 내부 일감몰아주기로 회사를 키워 경영권 승계의 발판으로 삼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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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이렇게 주요 그룹들이 성공하자 SI회사를 경영권 승계에 활용하는 사례는 재계 전반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과거 건설회사를 통해 승계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했는데 이제 SI회사가 그 역할을 떠맡고 있다.
SI회사는 진입장벽이 낮고 적은 자본으로 회사를 설립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계열사의 내부 일감몰아주기로 쉽게 성장할 수 있다.
이러다 보니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너무나 매력적인 SI회사
28일 재계에 따르면 주진우 사조그룹 회장의 장남 주지홍 사조대림 총괄본부장이 경영권 승계를 마무리하는데 SI회사를 활용하면서 SI회사를 경영권 승계의 발판으로 삼는 일이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주 회장은 최근 사조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사조산업 지분 10%를 사조시스템즈에 넘겼다. 사조시스템즈는 사조산업 주식 11.97%를 보유해 사조산업의 2대 주주로 떠올랐다.
사조시스템즈의 최대주주는 주 본부장이다. 주 본부장은 사조시스템즈 지분 51%를 보유하고 있다.
사조시스템즈는 사조그룹의 SI업체로 내부 일감에 의존해 성장했다.
사조시스템즈는 지난해 전체매출의 56.5%를 사조산업 등 사조그룹 계열사를 통한 내부거래에서 올렸다. 사조시스템즈의 내부매출 비중은 2011년 66%, 2012년 91.39%, 2013년 91.95%에 이른다.
삼성그룹 SK그룹 대림그룹 등은 SI회사를 경영권 승계에 활용한 대표적 성공 사례다.
SK그룹은 SI업체인 SKC&C를 SK그룹 지주사인 SK와 합병해 최태원 회장의 SK그룹 지배력을 확보했다. 최태원 회장을 비롯한 일가는 SKC&C 지분 43.42%를 통해 통합 SK 지분 30.6%를 손에 넣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지난해 말 SI업체인 삼성SDS를 상장해 경영승계자금 확보에 성공했다. 이 부회장은 삼성SDS 지분 11.25%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삼성SDS는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하는 데 활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화그룹과 CJ그룹도 삼성그룹과 SK그룹의 뒤를 밟고 있다.
한화그룹은 SI회사인 한화S&C를 키우고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아들인 김동관 한화큐셀 상무, 김동원 한화그룹 디지털팀장, 김동선 한화건설 매니저는 한화S&C 지분을 각각 50%, 25%, 25%씩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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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관 한화큐셀 상무. |
한화S&C의 내부거래 비중은 지난해 52.0%에 이른다. 한화S&C는 2020년까지 매출 3천억 원과 영업이익 300억 원을 올린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한화S&C는 한화에너지를 자회사로 편입한 데 이어 한화에너지를 통해 한화종합화학으로 이름이 바뀐 삼성종합화학 인수에 참여하는 등 몸집을 키우고 있다.
CJ그룹은 지난해 말 SI계열사인 CJ시스템즈와 CJ올리브영을 합병해 CJ올리브네트웍스라는 회사를 출범했다.
이재현 회장의 아들인 이선호씨는 합병 직전에 이 회장으로부터 CJ시스템즈 지분 15.91%를 증여받아 CJ올리브네트웍스 지분 11.3%를 보유하게 됐다.
CJ올리브네트웍스는 몸집을 키워 향후 CJ그룹 경영승계의 자금원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
◆ 일감 몰아주기로 쉽게 키울 수 있는 SI회사
재벌들이 SI회사를 경영권 승계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이유는 내부거래를 통해 일감을 몰아주기로 쉽게 회사를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SI업체는 그룹 내부거래만으로 손쉽게 성장할 수 있다.. 전산시스템과 보안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면서 그룹 안에서 SI회사의 사업영역도 넓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그룹이 커가면서 SI회사도 덩달아 커지게 된다.
SI회사는 기업 전산실에서 분리하거나 법인을 신설할 때 드는 초기비용이 크지 않은 점도 매력적이다.
SI회사는 업무 특성상 사람이 중심이기 때문에 적은 자본금으로 회사를 설립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총수 일가가 적은 돈으로 지분을 확보하고 회사규모가 커졌을 때 막대한 차익을 쉽게 얻을 수 있다.
또 계열사의 보안유지 등을 고려할 때 외부회사에 시스템통합 업무를 맡기기 어렵다는 명분을 쌓기에도 유리하다.
◆ 일감몰아주기 규제강화 목소리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실시되고 있지만 그룹 SI업체들은 총수 일가가 지분율을 낮추는 등의 방법으로 규제에서 빠져나가고 있다.
현행법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을 상장사의 경우 총수일가의 지분율이 30%를 넘는 회사, 비상장사의 경우 지분율이 20%를 넘는 회사로 규정하고 있다. 총수일가의 간접지배를 받고 있는 회사는 포함하고 있지 않다. 내부 거래액이 200억 원을 넘거나 연매출의 12% 이상인 회사만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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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지홍 사조대림 총괄본부장. |
일부는 SI회사를 다른 계열사와 합병해 지분율을 낮추는 방법으로 법망을 피했다. 이를 통해 총수일가의 지분율은 낮아졌지만 기업가치는 더욱 커져 경영권 승계에 활용할 수 있는 폭을 더욱 넓혔다.
또 총수일가의 지분을 줄여 일감 몰아주기의 규제에서 벗어나기도 했다. 그 대신 내부거래 비중을 더욱 늘려 지분가치를 예전보다 훨씬 높이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SI업체인 현대오토에버의 경우 정몽구 회장이 지난 7월 보유지분 9.68%를 모두 매각했다. 이에 따라 현대오토에버의 총수일가 지분은 정의선 부회장이 소유한 19.46%로 줄어들어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벗어나게 됐다.
현대오토에버는 지난해까지 6년 동안 내부거래 비중을 꾸준히 늘려왔다. 현대오토에버 내부거래 비중은 2014년 88.6%를 기록했다.
이 때문에 일감몰아주기 규제의 기준을 훨씬 강화해 실효성을 높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기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25일 일감몰아주기 규제 기준을 강화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은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을 총수일가가 지분율 30% 이상인 회사에서 20% 이상인 회사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존에 비상장회사에만 해당하는 기준을 상장회사까지 확대하는 것이다. 규제대상에 총수일가의 간접지배를 받고 있는 회사를 포함하는 내용도 들어갔다.
김 의원은 “개정안은 종이호랑이로 전락한 일감몰아주기 규제에 숨을 불어넣어 편법적 부의 이전을 막자는 법의 취지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오대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