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희헌 기자 gypsies87@businesspost.co.kr2019-10-24 15:5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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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자동차가 24일 공개한 '더 뉴 그랜저' 티저 이미지. <현대자동차>
그랜저였지만 그랜저가 아니었다.
디자인만 놓고 보면 누가 그랜저라고 불러주지 않으면 그랜저임을 알기 어려웠다.
현대자동차의 혁신적 디자인을 두르고 새롭게 탄생한 ‘더 뉴 그랜저’는 여태껏 어느 완성차기업에서도 보기 힘들었던 과감한 '변신'을 선보였다.
이상엽 현대디자인센터장이 그랜저를 두고 '현대차 디자인 진보’의 시작이라고 언급한 만큼 앞으로 선보일 현대차에서 그의 '도전'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벌써부터 궁금해졌다.
24일 경기 화성에 있는 현대기아차 남양연구소에서 현대차 출입기자단을 대상으로 6세대 그랜저의 부분변경(페이스리프트)모델인 ‘더 뉴 그랜저’의 내외장 디자인을 살펴볼 수 있는 디자인 프리뷰(미리보기) 행사가 열렸다. 프리뷰 행사인 만큼 사진이나 동영상 촬영은 모두 금지됐다.
공식 출시를 앞두고 디자인을 미리 살펴볼 수 있는 행사가 열리는 것은 이례적이다. 통상 현대차와 기아차는 제네시스 G90 등 최상위 모델을 제외하고는 모두 시승회와 함께 디자인 공개 행사를 진행했다.
그랜저 디자인을 소개한 이상엽 현대디자인센터장의 표정에는 여유로움과 긴장감이 동시에 묻어났다.
이 센터장이 “과거의 방식을 답습하는 것이 아닌, 성공의 대명사였던 과거의 그랜저가 쌓아온 틀에서 스스로 한 단계 진보하는데 초점을 뒀다”며 “우리 시대 성공의 방정식을 새롭게 정의할 ‘더 뉴 그랜저’를 소개한다”고 말하자 베일에 싸였던 더 뉴 그랜저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현장은 정적에 휩싸였다. 통상적으로 디자인이 처음 공개되면 박수소리가 조금이나마 터져나오기 마련이지만 더 뉴 그랜저가 공개된 직후 짧게 들린 박수소리를 빼면 행사장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그랜저 사진이 유출된 탓에 대부분 디자인에 익숙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물을 통해 본 그랜저의 디자인은 너무나 새로운 느낌을 줬다. 낯설기까지 했다.
가까운 자리에 앉아 있던 몇몇 기자들은 “이거 너무 어렵다” “기대했던 것과 너무 다른데...”라는 혼잣말을 내뱉은 뒤 한참 동안 그랜저를 바라보기만 했다. 다들 여태껏 익숙했던 그랜저와 너무 다른 얼굴을 한 새 그랜저를 놓고 어떤 반응도 선뜻 내놓기 어려운 듯이 보였다.
▲ '더 뉴 그랜저' 전면부 티저 이미지. <현대자동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졌던 마름모꼴 모양의 전면부 디자인은 파격이라는 말로도 설명이 어려웠다.
현대차는 ‘파라메트릭 쥬얼’ 패턴을 적용한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 8세대 쏘나타에서 처음 선보였던 ‘히든라이팅 램프’가 주간주행등으로 적용되면서 시동이 켜 있지 않을 때는 그릴의 일부로 보이지만 시동을 걸면 차량 전면부 양쪽에 마치 ‘별이 떠 있는 듯한 모습’처럼 보이는 것을 구현했다고 한다.
특히 헤드램프와 그릴, 후드와 범퍼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 전면부 모습은 자동차 디자인 역사에 새롭게 기록될 과감한 시도임에는 분명했다.
이 센터장은 행사장에 정적이 감돌자 “말문이 막히시나요”라는 말로 분위기를 띄우며 그랜저 디자인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는 “다소 과격하다고 말씀을 드린다”며 “후드와 그릴, 램프, 범퍼를 한 면에 구현했는데 새로운 감각에 적응하기 힘드실거다”면서도 이러한 경계 없는 심리스(Seamless) 디자인이 그랜저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결과적으로 볼륨감이 있는 하나의 커다란 면에서 어떤 단절도 없이 모든 기능이 통합된 ‘인터그레이티드 아키텍처(통합된 구조)’를 구현함으로써 과감한 도전의 결과물을 내놓았다는 것이다.
이 센터장 역시 이런 혁신이 일부 고객들에게 생소하게 다가갈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현대차의 도전이 글로벌 완성차기업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트렌드를 선도할 것이라는 점을 자신했다.
현대차가 세계 최초로 선보인 히든라이팅 램프가 그런 역할을 하는 디자인 요소라는 점도 덧붙이면서 이런 변곡점들이 현대차 디자인의 가치를 높여줄 것으로 확신한다고도 했다.
현대차가 더 뉴 그랜저를 통해 선보인 디자인 혁신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점도 예고했다.
이 센터장은 “현대차는 틀과 규정에 갇힌 디자인이 아니라 새로운 도전과 모험을 감수하며 디자이너와 엔지니어의 완벽한 혁신을 통해 디자인 진보의 길을 앞으로도 걷고자 한다”며 “더 뉴 그랜저의 과감한 디자인 혁신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말했다.
▲ 이상엽 현대디자인센터장 전무.
그는 “앞으로 더 놀라실 일이 많기 때문에 미리 준비를 좀 하셔야 한다”며 “현대차는 전 세계 어떤 브랜드보다도 기능과 디자인이 결합된 논리적 디자인의 진화를 계속 보여드릴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더 뉴 그랜저와 같은 디자인을 현대차만이 할 수 있는 디자인이라며 이와 관련한 특허를 현대차가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귀띔하기도 했다.
이 센터장의 설명을 모두 듣고 난 뒤 30분가량 행사장에 전시된 두 대의 그랜저를 꼼꼼히 살펴볼 수 있었다.
불과 수십분 전에 생소하게 느껴졌던 디자인 요소들이 점차 눈에 익어가면서 그동안 보수적 분위기의 현대차에서 시도하지 못할 것이라 여겨졌던 여러 부분에 과감하게 손을 댄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현대차의 새 그랜저 디자인이 고객의 관심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지만 이 센터장이 자동차 디자인에서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과감히 선택했다는 점은 확실해 보였다.
이상엽 센터장은 한국 출신의 자동차 디자이너 가운데 글로벌 자동차시장에서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았다.
포르쉐와 제너럴모터스(GM), 폴크스바겐, 아우디, 람보르기니 등을 거쳤고 벤틀리의 외장과 선행디자인 총괄 역할도 역임했다. 2015년 현대차에 합류한 뒤 현대차의 모든 자동차 디자인을 총괄하고 있다.
대표작은 영화 트랜스포머의 범블비로 알려진 GM 쉐보레 브랜드의 카마로다. 그는 자동차 디자인에서 클래식함과 트렌디함을 넘나들 수 있는 몇 안되는 디자이너로도 유명하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