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이 제일모직 합병을 놓고 벌이고 있는 법적 공방에서 완승을 거두지는 못했다.
법원은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제기한 삼성물산 주주총회 소집통지 및 결의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나 법원은 삼성물산이 KCC에게 자사주를 처분한 데 대한 판단은 보류했다. 삼성물산은 자사주 매각을 통해 어렵게 의결권을 확보했지만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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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서울중앙법원 민사50부(수석부장판사 김용대)는 1일 삼성물산 자사주 처분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판단을 유보했다. 재판부는 임시 주주총회가 열리는 17일 이전까지 결론을 내기로 했다.
삼성물산은 지난달 11일 KCC에 자사주 899만557주(지분률 5.76%)를 매각했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기 때문에 주주총회에서 우호지분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삼성물산은 자사주 처분으로 든든한 아군을 얻게 됐다.
삼성물산은 자사주 처분 전 삼성물산 특수 관계인 지분이 13.59%로 엘리엇매니지먼트(7.12%)의 두 배가 채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제일모직 주주인 KCC에게 자사주를 매각해 아군으로 확보했다.
하지만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자사주 처분이 불법이라고 주장하며 처분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삼성물산이 보유하고 있던 자기주식을 제휴사에 매각한 것은 합병과 관련해 절박한 상황에서 우호지분 확보를 위한 불법적 시도”라고 규정했다.
삼성물산이 합병안을 통과시키려면 주주총회 참석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확보해야 한다. 반면 엘리엇매니지먼트는 3분의 1 이상만 얻으면 합병안을 저지할 수 있다. 현재는 어느 한 쪽이 확실히 표대결에서 승산을 굳히지 못했다.
이 때문에 KCC가 확보한 지분에 대한 법원의 판결은 더욱 주목을 받는다.
KCC가 확보한 삼성물산의 자사주 지분은 단일 주주로만 따지면 국민연금과 삼성SDI, 엘리엇매니지먼트에 이어 네 번째로 많다. KCC가 백기사역할을 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합병의 성패가 갈린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법원이 자사주 처분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 것은 그만큼 법적으로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상법 제342조에 따르면 자사주 처분은 정관에 따르되 규정이 없을 경우 이사회가 결정하도록 돼 있다. 삼성물산의 자사주 처분이 적법하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2003년 SK와 소버린이 경영권 분쟁을 벌일 때도 SK가 자사주 9.7%를 하나은행에 매각한 적이 있다. 당시 대법원은 적절한 경영권 방어행위로 보고 소버린이 제기한 가처분신청을 기각했다.
그러나 자사주 처분이 언제나 정당한 것으로 인정받지는 않았다. 서울 서부법원은 2006년 경영권분쟁에 휘말린 대림통상이 이재우 회장에게 자사주를 매각한 데 대해 처분무효 판결을 내렸다.
당시 재판부는 “자기주식을 일방적으로 특정주주에게 매각하면 기존 주주의 이해관계에 영향을 미쳐 신주를 발행한 것과 유사하다”며 “특정주주에게 일방적으로 매도한 것은 주주평등의 원칙에 반하고 주주의 회사지배에 대한 비례적 이익과 주식의 경제적 가치를 해한다”고 판단했다.
특히 신주 발행의 경우 신기술의 도입이나 재무구조 개선과 같은 경영상 목적이 아니면 기존주주가 보유한 지분에 따라 배정하도록 돼있다.
이번 자사주 처분을 신주 발행과 같은 결과로 해석한다면 삼성물산은 기존 주주의 신주인수권을 침해한 것이 된다. 이에 따라 자사주 처분이 무효라는 결정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이번 자사주 처분이 경영진과 최대주주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체 주주의 이익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면 경영상 목적에 따른 적법한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서울남부지방법원은 2004년 자사주 처분에 대해 “회사의 경영상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것으로 현재나 장래의 회사, 주주의 이익에 부합해야 할 것”이라고 판결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